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풍부한 시중유동성과 저금리 기조에 힘입어 올들어 무섭게 오르던 주택경기에 경고음이 켜졌다. 공급과잉에 미국 금리인상 가능성까지 겹치면서 위험징후가 높아지고 있다. 부동산 파티는 끝난 것일까. 이미 집을 산 사람들은 물론이고, 집을 사려고 대기중인 수요자들까지 부동산경기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1990년이후 25년만에 최대 공급물량 쏟아져
요즘 아파트 건설회사들은 분양을 서두르고 있다. 분양만 하면 완판되던 좋은 시절이 이미 끝물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내년으로 넘어가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어떻게든 연말안에 분양을 끝내려고 물량밀어내기가 한창이다.
분양물량은 이미 정부가 정한 중장기 계획 물량을 초과한지 오래다. 올 연말까지 아파트 공급물량이 70만가구를 웃돌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는 아파트 신도시건설이 한창이던 1990년이래 25년만에 최대물량이다.
이렇게 많아진 물량이 아파트 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분명해 보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3일 “아파트 분양물량이 급증해 부동산과 금융시장 안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송인호 KDI 연구위원은 이날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단기적 주택수요 확대와 분양물량 급증이 중장기적으로 주택 및 금융시장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KDI 분석에 따르면 올해 아파트 분양 물량은 49만호에 달한다. 이는 정부가 세운 중장기 주택공급계획상 (적정)물량인 연평균 27만호를 이미 22만호나 초과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각 건설사마다 분양을 서두르면서 연말까지 쏟아질 주택공급 물량은 70만가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부가 계산한 한국경제의 기초적 주택수요는 35만호 정도. 하지만 실제 분양됐거나 분양될 물량은 적정 주택수요의 2배를 초과한다. 수요와 공급에서 공급이 넘치면 당연히 주택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보통 분양물량이 2~3년의 시차를 두고 입주 시점이 다가오는 점을 고려하면, 2017년말이나 2018년에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 12월중 확실시되는 미국 금리인상도 부동산 경기에 찬물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RB) 이사회 의장이 최근 12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 것도 부동산경기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한국도 자본유출을 막기위해 국내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밖에 없고, 이는 부동산 수요자금을 옥죄는 연쇄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옐런 의장은 지난 2일(현지 시각) 워싱턴DC 이코노믹클럽에서 한 연설에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금리 정책 정상화를 위한 시작을 너무 오래 미룰 경우, 향후 경제 과열을 막기 위해 상대적으로 급작스럽게 긴축 정책을 취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예런 의장의 발언은 오는 15~16일 열리는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2008년이후 지속돼온 ‘제로금리’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 다행스런 점은 최근의 미국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급격한 금리인상 가능성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미국과는 반대로 추가 양적완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이 돈줄을 죄려고 하는 반면, 유럽은 오히려 돈을 더 풀겠다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다른 나라들 역시 양적완화에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어 미국의 ‘나홀로 금리인상’이 큰 폭으로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실제로 미국 뉴욕 증시는 3일(현지시간) 연내 금리인상이 거의 굳어짐에 따라 투자심리가 악화하면서 약세로 장을 마감했지만 예상보다는 소폭하락에 그쳤다. 다우존스 산업 평균지수는 전날 대비 1.42%, 252.01 포인트 떨어진 1만7477.67로 폐장했다. 스탠더드 앤 푸어스(S&P) 500지수는 전날보다 1.44%, 29.89 포인트 내린 2049로 거래를 마감했다.
■ 금융당국도 이미 부동산 관련 돈줄죄기에 나서
금융당국도 미국의 금리인상, 부동산 과열경기 등을 고려하여 선제적인 조치에 들어갔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3일(목) 기자간담회에서 “관계기관들과 함께 은행 여신심사를 상환능력 중심으로 전환하는 ‘가계부채 여신심사 선진화 방안’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할지에 대해 면밀하게 보고 있다”면서 “이달중 은행연합회가 확정안을 발표하면 내년에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대책은 신규 주택담보대출자에게 적용되며, 집단대출이나 기존 대출자, 상환 계획이 미리 수립된 대출, 단기 생활자금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각종 예외조항이 적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지금까지 쉽게 해주던 부동산 관련대출을 보다 까다롭게 심사하겠다는 의미다.
이에앞서 지난 7월 금융위가 발표한 가계부채 종합 관리 방안에는 원금과 이자를 처음부터 나눠 갚는 비거치식·분할상환 방식과 함께 스트레스DTI(변동금리 대출시 금리가 올랐을 때 갚을 여력이 되는지를 감안해 대출 한도를 설정하는 방식), 총체적 상환부담(DSR)을 산출해 은행이 사후관리에 활용하는 내용 등이 담겨있었다.

정부가 돈을 빌려 집을 사라고 했던 기조에서 이제는 돈줄을 죄겠다고 나선 것은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시장에 확실한 경고를 보낸 것으로 해석해야 옳다. 이미 가계대출은 1100조원을 넘어서 연일 사상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가계대출을 방치할 경우 뒷감당이 안될 수도 있다는게 정부의 판단이다.(이미 위기수준을 넘어섰고 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라는 분석도 많다.)
■ 2~3년뒤 터질 부동산 공급과잉의 후유증
올해 대거 쏟아진 아파트 물량은 2~3년 후 입주하게 된다. 하지만 입주시점에서 부동산경기가 고꾸라져 주택가격이 떨어질 경우 분양을 받은 사람들은 입주를 포기하게 된다. 분양자가 입주하지 않거나 준공 후 미분양이 발생하면 이미 수익성이 열악한 건설사의 현금 흐름은 더 나빠져 금융시장에도 충격파가 미칠 수 있다.
KDI는 주택수요의 증가세가 유지되지 않으면 올해 급증한 분양물량이 앞으로 준공후 미분양 물량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와 같이 양호한 주택수요가 유지된다 해도 준공후 미분양이 2018년 2만1000호로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미분양이 3만호까지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부동산을 통해 경기불씨를 살리겠다며 주택공급을 방조하던 정부의 입장에도 완연한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1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주택·부동산시장 상황에 대해 “일부에서 공급 과잉 우려도 있고 분양 과열 양상도 보이는데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27일 열린 주택업계와의 간담회에서도 “주택 인허가가 급증해 시장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적정 수준의 공급이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다. 공급과잉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기조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향후 금리가 올라간다든지 전반적으로 집값이 떨어지면 집주인뿐만 아니라 세입자도 안전하지 않다”며 “경각심을 가지는 게 좋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진설>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