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원 기자 입력 : 2025.04.22 01:37 ㅣ 수정 : 2025.04.22 16:35
금 1온스를 사는데 필요한 은의 양이 100온스 돌파하며 금은비 100대1에 달해, 지난 1991년 걸프전 및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때와 유사한 현상 발생
금값과 은값의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투데이=정승원 기자]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금과 은의 가격 격차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벌어지면서 귀금속 투자자들과 애널리스트들의 시선이 은 시장에 쏠리고 있다. 금과 은의 상대적 가치 비율을 뜻하는 ‘금은비(Gold-to-Silver Ratio)’가 100대 1을 돌파한 것은 역사적으로 드문 일이다. 지난 1991년 걸프전 직후,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금은비가 100을 넘었다는 것은 금 1온스를 사는 데 필요한 은의 양이 100온스를 넘었다는 의미다. 이는 은값이 금값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됐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21일(현지시간) 기준 미국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6월물 금 선물은 온스당 340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반면, 5월물 은 선물은 온스당 32.94달러에 머물렀다. 금값은 올해 들어 30% 이상 상승했지만, 은값은 이보다 훨씬 낮은 상승률에 그친 셈이다.
이 같은 가격 괴리는 무엇보다 금과 은의 수요 구조 차이에서 기인한다. 금은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며,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경기 침체 우려가 확대될수록 투자 수요가 급증한다. 이번 금값 급등 역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미중 무역 관세 전쟁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 해고 위협과 같은 인사 불안정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투자자들의 금 수요를 자극한 결과다.
반면, 은은 귀금속이라는 성격 외에도 산업용 소재로서의 비중이 높다. 태양광 패널, 전기차, 반도체, 전력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며, 세계 경기의 흐름에 민감하다. 특히 중국은 세계 최대 은 소비국으로, 최근 미국의 고율 관세 정책은 은의 산업적 수요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캐피털닷컴의 수석 시장 애널리스트 다니엘라 하손은 “은은 산업재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경기 둔화나 무역 마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미국의 관세 압박은 중국의 제조업 수요를 위축시켜 은 가격을 눌러온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은의 반등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CNBC는 “금은비가 극단적으로 벌어진 상황은 역사적으로 은값 반등의 전조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현재의 금은비는 은에 대한 장기 투자 기회를 나타낸다”고 밝혔다.
한화투자증권 박세연 연구원도 “은의 산업용 수요는 줄어들지 않았다”며 “오히려 데이터센터, 전기차, 태양광 등 신산업 중심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2023년 은의 산업용 수요는 사상 최고치인 6억8050만 온스를 기록했으며, 올해도 이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최근 은 시장에는 긍정적 신호도 포착된다. 우선 미중 간 관세 협상이 재개될 경우, 산업용 은 수요가 반등하면서 은값에도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글로벌 탈탄소화 정책과 재생에너지 확대는 은의 주요 수요처인 태양광 산업에 직접적인 긍정 효과를 줄 수 있다.
영국 런던의 시장조사업체 메탈즈포커스도 최근 보고서에서 “전 세계적으로 은의 공급은 제한적인 반면,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 전환 흐름은 장기적으로 은 수요를 견인할 것”이라며 “2025년까지 은 가격이 온스당 40달러를 돌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금보다 약 30% 가량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무역 갈등이라는 변수가 은값 상승을 제한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산업용 수요의 회복과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구조적 변화가 은값의 반등을 이끌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