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원 기자 입력 : 2025.04.17 01:11 ㅣ 수정 : 2025.04.17 01:12
도널드 트럼프 발 관세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 고조에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에 대한 수요 급증, 골드만삭스 등 올해 연말까지 금값 최대 370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
국제 금값이 연일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투데이=정승원 기자] 올 들어 금값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과연 올해 얼마까지 오를지를 놓고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금 선물(6월 인도분)은 지난 15일 트로이온스(약 31.1g)당 3240.4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또 한 번 역대 최고가를 새로 썼다. 이는 불과 1년 전과 비교해 약 35% 오른 수준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기존 연말 금값 전망치인 3300달러에서 3700달러로 목표가를 상향 조정했다.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데는 세 가지 요인이 꼽히고 있다. 첫째, 금값 급등의 근본적 배경은 정치적 불확실성과 경제 위기 가능성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급부상한 보호무역주의가 시장을 긴장시키고 있다. 그는 이전 1기 집권때와 마찬가지로 관세 정책을 두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그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RBC 캐피털마켓의 헬리마 크로프트는 “금 가격 상승의 핵심 요인은 관세에 대한 불확실성”이라며 “관세에 진심인 미국이 수입 금에도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소문이 확산되며 금에 대한 선제적 수요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우려는 실물 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주요 은행들은 금의 보관 장소를 옮기고 있으며, JP모건은 이번 달에만 약 40억 달러 상당의 금을 런던에서 뉴욕으로 이송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금 보유에 대한 불안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달러 약세와 글로벌 통화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가 금값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은 전통적으로 미국 달러화의 가치가 하락할 때 강세를 보인다. 최근 미국 내 재정 지출 확대와 금리 인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달러는 약세를 보이고 있다. 상원에서 통과된 2025 회계연도 예산결의안은 향후 10년간 미국 재정적자를 5조8000억 달러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미국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있다. 이는 투자자들이 금으로 자산을 이동시키는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비인크립토는 “금은 정부가 찍어낼 수 없는 자산이며, 인플레이션 위험이 높아질수록 금의 희소성과 가치는 더욱 부각된다”고 분석했다.
셋째, 신흥국 중앙은행과 상장지수펀드(ETF)의 ‘폭풍 매수’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흥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이 금값 상승에 불을 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인민은행은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 연속 금을 매입하며, 2025년 2월 기준 금 보유량을 사상 최대인 2290톤까지 끌어올렸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1기 당시 미중 갈등이 고조되자 중국은 100톤의 금을 추가 매입했는데, 지금도 유사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폴란드, 튀르키예,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도 달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금 비중을 확대하고 있으며, ETF를 통한 자금 유입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월가에선 “현대판 ‘금본위’로 돌아가는 전조”라는 해석까지 나온다.
한국에서도 금에 대한 투자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의 ‘2025 대한민국 웰스 리포트’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고액 자산가 800여 명 중 32.2%가 올해 유망 자산으로 금을 선택했다. 이는 예금(40.4%)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이며, 부동산(20.4%)보다도 높다. 안전 자산으로서 금의 위상이 국내에서도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시장의 관심은 이제 연말까지 과연 금값이 얼마까지 오를까에 쏠려있다. 시장 전망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골드만삭스는 연말까지 금값이 3700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JP모건, HSBC 등도 비슷한 수준의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금값이 단기적으로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어 조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UBS의 수석 애널리스트 마크 해프너는 “현재 금값은 투기적 수요가 일부 반영돼 있으며, 단기적으로는 심리적 저항선에 도달한 상태”라고 지적하면서도, “글로벌 금리 하락, 달러 약세, 지정학 리스크가 동시에 작용하는 상황에선 금값의 구조적 상승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편 금과 비트코인 간의 연동성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어 주목된다. PCM의 CEO 앤서니 파필라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올해 10% 하락했지만 1년 기준으로는 금과 마찬가지로 약 35% 상승했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전략적으로 비트코인을 비축하려는 움직임과 젊은 세대의 장기 투자 선호가 비트코인의 향후 상승을 견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올해 1분기 기관들은 약 9만5400 BTC를 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금값 상승 약 100일 후, 비트코인이 뒤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대표적인 비트코인 회의론자 피터 쉬프는 “지금은 모든 가상화폐를 매도하고 금·은광산주에 투자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며 상반된 견해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