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2 뷰] 정부, 불황의 늪 빠진 석화업계에 '산소호흡기' 댄다

유한일 기자 입력 : 2025.04.30 05:00 ㅣ 수정 : 2025.04.30 05:00

정부, 상반기 중 추가 지원 방안 발표
업계, 전기료 인하·세액 공제 지원 요청
시장 지형 변화로 스페셜티 전환 시급
“사업 재편, 정부 지원 필요” 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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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대산석유화학산업단지 전경. [사진=연합뉴스]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전례 없는 ‘불황의 늪’에 빠진 국내 석유화학(석화)업계가 돌파구 마련에 분주한 가운데 정부 지원 대책이 업계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을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석화 업계는 전기료 지원과 세액 공제 등이 시행되면 당장 재무적 부담을 다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다만 정부 정책이 한국 석화 산업의 ‘구조적 경쟁력 향상’을 이끌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급변하는 산업 생태계 속에서 기업이 체질 개선을 유연하게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제도적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 정부 “업계 목소리 반영” 추가 지원책 곧 윤곽...조기 대선에도 가속페달

 

30일 정부 부처와 업계 등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최근 한국화학산업협회가 글로벌 경영전략 컨설팅 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용역으로 마련해 제출한 ‘사업 재편 컨설팅 결과 보고서’를 토대로 올해 상반기 석화 업계 후속 지원 방안을 곧 발표할 계획이다. 

 

산업부는 지난해 12월 3조원 규모의 정책금융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석화 업계 지원책을 발표했는데 업황이 갈수록 악화되자 추가 지원 카드를 내놓기로 했다. 이번에 발표될 최종안에는 한국화학산업협회를 통해 전달된 업계 목소리가 적극 반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보고서에는 석화 기업에 대한 산업용 전기료 감면 요청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단체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 따르면 석화 산업은 생산비 가운데 전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3.2% 수준이다. 

 

한국전력공사 통계를 보면 산업용 전기료는 지난 2021년 말 킬로와트시(kWh)당 105.5원에서 지난해 말 185.5원으로 3년 만에 80원(75.3%) 올랐다. 공장 가동률을 떨어뜨리지 않는 이상 고정비 부담은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또한 보고서는 친환경·고부가 전환 지원 과정의 연구개발(R&D)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도 담았다. 이와 함께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 등도 반영됐다.

 

당초 석화 업계는 정부가 예고한 후속 지원 방안 발표와 조기 대통령 선거(6월 3일) 일정이 맞물려 정책 추진 동력이 약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시장 불확실성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어 머지않아 결과가 도출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석화 업계는 컨설팅 보고서 내용을 봤을 때 실제 시행되면 비용 부담이 다소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을 살펴보면 정부가 석화업계에 측면 지원을 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비용적인 관점에서는 정부 정책이 긍정적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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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공사 현장. [사진=에쓰오일] 

 

■ 중국·중동의 공습...韓 석화업계 ‘구조적 경쟁력 향상’ 시험대 

 

최근 석화 업계가 당면한 최대 위기는 중국산 제품 급증에 따른 '국산 제품 수요 감소’다.

 

국내 석화 기업들은 수입한 원유에서 나프타를 분리한 뒤 ‘석화 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을 생산하는 데 주력해 왔다. 에틸렌은 석화 기초 원료다. 이 연료는 플라스틱·비닐·고무·합성섬유 등을 만들 때 쓰이는 기초유분이다.

 

이제 질세라 중국은 연간 에틸렌 생산능력을 2018년 2565만톤(t)에서 2023년 5174만톤으로 2배 가량 증가했다.  중국이 석화 공장을 야심차게 건설한 결과물이다.  문제는 중국에서 과잉 생산된 잉여 물량이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시아로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석화업계 관계자는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을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특히 한국 석화업종의 최대 수출국이었던 중국이 자급자족을 시작하면서 한국은 석화 부문에서 내수·수출 모두 부진을 겪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은 과거에는 아주 큰 바이어(Buyer)였지만 지금은 셀러(Seller)가 됐다”라고 설명했다. 

 

중동 산유국이 석화 시장에서 몸집을 키워가고 있는 점도 우리로서는 부담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가 대주주로 있는 정유사 에쓰오일(S-Oil)이 울산에 정유·석유화학 통합공정(COTC)을 짓는 ‘샤힌 프로젝트’에 나선 점도 국내 석화 기업에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에쓰오일은 내년 COTC 완공 후 연간 에틸렌 생산능력을 국내 4위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특히 '정유→석유화학 제품'으로 이어지는 밸류체인(가치사슬)을 갖춘 에쓰오일의 에틸렌 생산분이 국내 시장에 쏟아지면 관련 업체간 피 튀기는 경쟁을 펼치는 치킨게임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동안 국내 석화 업계는 원유 등 원자재 가격 등락에 따라 업황 민감도를 느껴왔지만 이제는 구조적 위기에 봉착했다. 이에 따라 국내 석화 업체들은 범용 제품을 넘어 경쟁국과 차별화를 둘 수 있는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공감대가 강하게 형성돼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도 체질 개선에 보폭을 넓히고 있다.  에틸렌을 가공해 만든 고성능 제품을 주력으로 내세워 활로를 찾겠다는 얘기다.  기존 생산 설비 라인을 스페셜티 중심으로 재편하고 비핵심 자산 매각을 통한 경영효율화 작업도 속도를 낸다.

 

다만 각 석화기업의 '각자도생'으로 현재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업황 악화가 뚜렷한 상황에서 설비 매각이 제때 이뤄질 지도 불투명하다. 이에 따라 업계는 공정거래법상 기업결합 예외조항 신설이나 국가전략기술 지정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빅딜’이라고 하면 한화그룹이 삼성토탈(현 한화토탈)을 인수한 사례가 있는데 당시에는 석화 업황이 호황을 누렸다”라며 “기업마다 처한 상황이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업계 목소리를 다양하게 듣는 장(場)을 만들고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해주길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국내 석화 기업은 글로벌 공급과잉으로 범용 제품 중심의 수출 의존형 성장 전략이 한계에 도달했다”라며 “석유화학 산업의 생존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 재편이 시급해 정부가 이와 관련된 지원책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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