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끝나지 않는 ‘최저임금’ 전쟁

정승원 기자 입력 : 2015.07.20 09:08 ㅣ 수정 : 2015.07.2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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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 9일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8.1% 인상한 시간당 6030원으로 결정한지 10여일이 지났는데도 이를 둘러싼 갈등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공익위원들이 내놓은 조정안에 반발하며 전체회의를 박차고 나왔던 노동계는 최근 내년 최저임금 결정이 절차와 내용상 심각한 위법성을 지니고 있다며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최저임금 재심의를 요구했다.

노동계만 반발하는 게 아니다. 최저임금제에 가장 예민한 영세업체 대표, 소상공인, 프랜차이즈 점주들은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최저임금까지 오르게 되면 사실상 사업을 접을 수 밖에 없다고 울상이다. 양측의 반발에 정부는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제출한 안을 고시한 뒤, 이의신청 기간(10일)을 거쳐 오는 8월5일 최저임금을 고시하게 된다.

민주노총이 지난 15일부터 2차 총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안 재심의에 대한 노동계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 노정갈등은 앞으로 더욱 고조될 공산이 커졌다.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불만인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

▲ 걸그룹 걸스데이의 멤버 혜리를 앞세워 뜨거운 감자인 ‘최저임금’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화제가 됐던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포털 알바몬 광고. 소상공인들은 “악덕 고용주로 오해를 사게 만들었다”면서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지만,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 인식 확산에 기여한 공로로 알바몬과 혜리 등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우리나라는 1988년에 최저임금제를 도입했다. 제도가 처음 시행된 1988년의 최저임금은 462.50원이었고 1989년에는 600원으로 올랐다. 이후 ▲1990년 690원 ▲1991년 820원 ▲1992년 925원 ▲1993년 1005원으로 해마다 8~18% 수준으로 올랐다. 최근에는 ▲2011년 4320원 ▲2012년 4580원 ▲2013년 4860원 ▲2014년 5210원  ▲2015년 5580원 등 연간인상률이 5~7% 수준에 그쳤다. 이번 인상률(8.1%)은 2008년(8.3%)이후 최대상승률이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최저임금제를 도입해 시행한 국가는 많다. 1894년 세계최초로 시행한 뉴질랜드를 비롯해 미국은 1938년, 프랑스는 1950년에 각각 최저임금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영국은 이보다 늦은 1999년에, 독일은 올해 최저임금제를 도입했다.

국가별 시간당 최저임금을 살펴보면 ▲뉴질랜드 약 1만2240원 ▲미국 약 8200원 ▲프랑스 약 1만3000원 ▲영국 약 1만1300원 ▲일본 약 7300원 ▲독일 약 1만2700원 ▲호주 약 1만4000원 수준이다.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단순 금액으로 비교했을 때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5개 국가(총 회원국은 34개국) 중에서 14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간 정도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경영자 측에서는 해마다 7%이상 오르는 최저임금제가 큰 부담이라고 호소한다. 대기업과 달리, 최저임금제에 예민할 수 밖에 없는 영세업체 대표, 소상인공인 등은 경기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임금부담까지 늘어나 사업 자체를 운영하기가 힘들어졌다고 울상이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가 올해 1~3월 429개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25.5%는 최저임금이 크게 오르면 감원하겠다고 밝혔고, 29.9%는 신규채용을 축소하겠다고 답했다. 임금이 오르는 만큼, 일자리 자체를 줄여 수지타산을 맞추겠다는 뜻이다.

▲ 올해초 최저임금 인상론에 불을 지핀 최경환 경제부총리 [사진=기획재정부]


노동계는 노동계 대로 불만이다. 여기에는 정부의 ‘립서비스’가 큰 몫을 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올해 3월부터 소득주도성장을 하려면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때 임기 5년간 최저임금을 40%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때마침 미국, 일본 등에서도 임금을 인상해 경제를 살리자는 바람이 불었고 노동계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인상률을 기대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과 일본이 일으킨 최저임금 인상 바람 전세계로 확산

최경환 부총리가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워 최저임금 대폭 인상론의 불을 지핀 것은 사실 미국과 일본에서 불고있는 최저임금 인상 바람의 영향이 컸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주요 기업들이 앞장서 임금인상을 주도하고 있다. 불경기 타계를 위해선 소득 상승을 통한 경제성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월마트의 경우 이미 지난 2월 올해 4월까지 시간당 임금을 9달러로 올리고 내년 2월부터는 10달러로 인상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의 거대 유통업체인 TJ맥스와 마샬도 미국 내 직원의 시간당 임금을 올해 상반기 중에 9달러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세계적인 판매망을 갖춘 미국의 소매·유통업체인 타겟도 최근 미국내 직원 34만7000명의 시간당 임금을 최소 9달러 이상으로 높이겠다고 밝혀 최저임금 인상 레이스에 동참했다.

특히 미국에서 임금수준이 가장 높은 캘리포니아 주는 현재 9달러인 시간당 최저임금을 내년1월1일을 기해 10달러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캘리포니아 주 가운데서도 LA는 2020년까지 15달러로 끌어올리고, 샌프란시스코는 한술 더떠 시급 15달러 달성을 2018년 7월까지 앞당기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 최저임금 대폭 인상론을 주장하는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왼쪽)과 ‘버니’를 외치며 환호하는 미국의 젊은 유권자들


내년도 대선레이스에 뛰어든 미국 대권후보도 가세했다. 민주당 경선에 나선 버니 샌더스 연방상원의원(73·무소속)은 “주 40시간을 일하는 사람이 빈곤에 처해서는 안된다”며 “연방 최저임금 7.25달러를 15달러까지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샌더스의 구호에 학생등 미국의 젊은 유권자들은 환호했고, “최저임금 15달러 실현을 위해 7월 15일, 15달러 이상을 민주당 경선에 나선 버니 샌더스에게 기부하자”며 모금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15일 자정부터 24시간 동안 온라인 플랫폼 '선더클랩'(thunderclap)을 통해 진행한 모금 운동에는 총 2050명이 참여, 애초 목표 인원 500명을 410% 초과 달성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최저임금을 10.10달러로 올려야 한다며 대기업들의 동참을 촉구했다.

▲ 13년만에 가장 큰 폭의 임금인상을 발표한 토요다 아키오 일본 도요타자동차 사장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대기업들이 임금인상을 통해 경제 회복을 추진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경제정책에 호응하여 임금을 속속 인상하고 있다. 도요타는 2015년도(2015년 4월∼2016년 3월)에 월 기본급을 4000엔(약 3만7000원) 올리기로 했다. 이는 13년만에 가장 큰 폭의 인상이다.

닛산 자동차는 5000엔(약 4만7000원), 혼다는 3400엔(약 3만2000원)씩 월 기본급을 인상키로 했다. 여기에 히타치(日立)제작소, 도시바, 파나소닉, 미쓰비시(三菱), 후지쓰(富士通), NEC 등 전자기기 분야 6개 대기업도 올해 월 기본급을 3000엔(약 2만800원) 올리기로 했다. 이는 1998년 이후 가장 큰 폭이다.

중국의 베이징도 지난 2월 최저임금을 1560위안에서 1720위안으로 10.3% 올렸고, 뒤이어 하이난, 텐진, 후난 등도 최저임금을 10% 안팎으로 인상했다.


당장의 손실과 미래의 이득, 선택의 갈림길에 선 산업계

최저임금 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이 오르면 경제가 활성화되고 궁극적으로 고용이 확대되는 선순환의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저임금 계층은 늘어난 소득을 저축하는 대신 소비하는 비중이 커 내수 경제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홍장표 부경대 교수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노동 소득(실질임금)이 1%p 오르면 0.68~1.09%p의 GDP가 증가하고, 실질노동생산성은 0.45~0.5%p 상승하는 동시에 고용 역시 0.22~0.58%p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최저임금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장 대부분이 영세업체이기 때문에 부정적 효과가 크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이들이 부담해야 하는 인건비가 늘어나고, 일부 사업장은 이를 감당하지 못해 폐업할 것이란 우려가 큰 게 사실이다. 오히려 저임금 근로자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임금이 상대적으로 싼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도 많다.

외국의 경우 영세 상공인이 많지 않고,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대다수 사업장이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장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영세업체와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분석도 경영계가 선뜻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에서도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회안전망 확충의 방안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는 반면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미국의 최저임금이 15달러로 오르면 고용을 크게 줄여 오히려 근로자에게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적 인상러시에 힘을 얻어 최저임금을 더 올려야 한다는 노동계와 지금 수준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차다는 경영계의 갈등은 오는 8월5일 2016년 최저임금 고시를 앞두고 한층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이진설>
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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