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임기 반환점 앞둔 박근혜 정부, 결국 경제가 화두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빌 클린턴 민주당후보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 is the economy, stupid)”를 선거구호로 내걸었다. 당시 현직대통령이었던 조지 H. W. 부시는 걸프전 승리를 앞세워 선거전에 임했는데, 빌 클린턴 후보는 미국경제가 대선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음을 정확히 짚어내 대선승리를 이끌어냈다. 23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 구호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여전히 경제가 주요 이슈가 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 임기 반환점 앞둔 박근혜 정부, 담화에서 경제 37회 언급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앞으로 3~4년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공공·노동·교육·금융의 4대 구조개혁을 위한 국민들의 협조와 동의를 강하게 호소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담화내용 중 경제와 개혁이란 단어를 각각 37회, 33회 사용해 집권 후반기 정책의 초점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은 4대 구조개혁 중 노동개혁에 대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한 청년 일자리 확충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공공기관부터 솔선수범할 뜻을 밝혔다. 그는 “노동개혁은 일자리다. 노동개혁 없이는 청년들의 절망도,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통도 해결할 수 없다”며 “고령시대를 앞두고 청년들의 실업문제를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미래에 큰 문제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회 각 분야의 고통분담을 호소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기성세대가 함께 고통을 분담하고, 기득권을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며 “정년 연장을 하되 임금은 조금씩 양보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청년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부문이 앞장서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정부와 공공기관도 노동개혁과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데 솔선수범하겠다. 우선, 금년 중으로 전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도입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또 현재 중단된 노사정 위원회의 재개를 강조하며 “노사가 한발씩 양보해서 국민이 기대하는 대타협을 도출해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 드린다”고 호소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근로자의 사회안정망 확충을 위해 “실업급여를 현재 평균임금 현재 평균임금 50% 수준에서 60%로 올리고, 실업급여 지급기간도 현행(90~240일)보다 30일을 더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교육개혁에 대해서는 ▲자유학기제 전면 확대 ▲수능난이도 안정화를 통한 공교육 정상화 ▲국가직무능력표준의 보급 확대 ▲선취업 후진학 제도 발전 ▲사회수요맞춤형 인력양성 등 6개 개혁과제를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담화는 취임 후 이번이 네 번째다. 지난해 5월 19일 세월호 관련 담화를 발표한 뒤 1년 2개월여 만이다. 박 대통령은 이달 말로 임기 절반을 지나게 된다. 집권 후반기에 노동 개혁 등 4대 개혁 과제의 동력을 되살려 경제 회복 기회를 잡는데 전력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 이번 대국민담화의 핵심으로 보인다.

■ 뛰어가는 아베 정부, 기어가는 박근혜 정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정부는 2012년 12월 출범(제2차 내각)했다. 박근혜 정부는 2개월후인 2013년 2월 들어섰다. 하지만 2년6개월이 지난 현재 아베와 박근혜 정부의 경제성적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본경제는 잔칫집 분위기인 반면 한국경제는 암울한 전망이 지배하고 있다. 일본은 올 1분기 성장률이 2.4%로 당초 전망치 1.5%를 크게 웃돌았다. 도쿄시장의 주가도 15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반면 한국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5%에서 3.0%로 낮췄다. 그나마도 지켜질지 의문부호를 다는 전문가들이 많다. 2%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아쉽게도 우세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5월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구조개혁이 지금처럼 계속 지연되다가는 20년 장기침체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는 일본과 상황이 역전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성장전략 주요내용 및 시사점’과 관련해 “아베노믹스의 세번째 화살인 성장전략은 규제개혁과 대외개방을 두 축으로 하고 있다”며 “특히 농업, 의료, 관광 등의 분야에서 ‘암반규제’(덩어리 규제의 일본식 표현)의 개혁 성과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자칫하다가는 ‘뛰어가는 일본, 기어가는 한국’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성적표는 기업실적에서도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한국기업들은 2분기에 수출과 내수 동반 침체로 부진한 실적을 나타낸 반면 일본기업들은 ‘어닝 서프라이즈’를 내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은 2분기에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을 거뒀다. 반면 일본의 간판기업인 도요타는 사상 최대 이익을 냈고, 소니는 순익이 3배가 늘어났다,
6일 국제금융시장과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코스피에서 2분기 실적을 발표한 89개 기업 가운데 주당순이익(EPS)이 시장의 예상을 웃돈(블룸버그 집계 기준) 기업은 45곳으로 50.56%의 비중을 차지했다. 이에 비해 일본의 닛케이225지수 편입 종목에서는 124개 기업 가운데 87개(70.16%)의 기업이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냈다. 블룸버그는 일본기업들의 실적이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JP모건자산운용의 시게미 요시노리 전략가는 "일본은 (아시아의) 다른 모든 국가를 능가하고 있으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 잇딴 경제회복 처방, 아직까진 백약이 무효
박근혜 정부는 최근들어 경제회복을 위해 많은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양적으론 거의 ‘폭탄’ 수준이다. 하지만 효과는 의문부호만 가득하다. 46조원 재정확대 패키지까지 내놓으며 경기부양 시동을 걸었지만, 내수·수출부진이 겹친데다가 난데없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까지 겪어 기대한 만큼 가시효과는 없었다.
이에 정부에서는 하반기 중 추가경정예산 11조 8000억원을 포함, 정책금융 등을 동원해 22조원의 돈을 풀기로 했는 바 어느 정도 효과가 나타날지 미지수다. 무리수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8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정부는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1조3000억원의 내수진작 효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꽁꽁 얼어붙은 국민들의 소비심리를 얼마나 녹일지는 알 수 없다.
일각에선 한국이 일본이 1990년대 겪은 ‘잃어버린 10년’ 과정을 답습할지 모른다는 끔찍한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모든 병에 처방이 있듯이 경제문제에도 처방은 있다. 문제는 이를 실천할 의지와 실행능력이다. 현 정부가 내세운 노동시장 개혁과 규제 완화를 통한 기업투자 확대 등은 이해집단의 반대 등으로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증세와 복지 문제를 놓고도 이해집단의 갈등으로 뚜렷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결국 과감한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절실한데, 정부출범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준 리더십으로 이같은 어려운 과제를 풀어갈 수 있을지 솔직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게 사실이다.
박 대통령이 이날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관심을 모았던 메르스 사태에 대한 사과도, 최근 논란이 된 국정원 해킹 의혹과 롯데 경영권 분쟁에 대해서도 언급조차 없었던 점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25분간 담화문을 읽어 내려가기만 했을 뿐 취재진들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대통령이 경제와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인다고 해서 경제가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국민이 인정할 수 있는 실적이다.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동안 절치부심하여 얼마나 좋은 경제성적표를 내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빌 클린턴 민주당후보가 내세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슬로건이 왜 유권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는지, 클린턴 대통령이 실제 8년의 재임기간중 어떤 경제실적을 냈는지 박근혜 정부는 새삼 곱씹어야할 대목이다.
<이진설>
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댓글(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