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부실 완충 능력이 1년 전보다 더 탄탄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금리 급등에 연체율 상승과 부실채권 증가 등이 우려된 만큼 선제적 대응으로 건전성 지표를 관리한 결과다.
은행권에선 당장 실적에 영향을 주더라도 부실 방파제를 더 높게 쌓아가겠단 분위기가 강하다. 소상공인·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금융 지원이 종료될 경우 부실 쓰나미가 몰려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5일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실적 발표를 종합한 결과 올 1분기 고정이하여신(NPL)커버리지비율 평균은 237.5%로 전년동기(201.6%) 대비 35.9%포인트(p) 상승했다. 신한은행(191%)을 제외하고 국민은행(263.9%), 하나은행(230.4%), 우리은행(264.7%) 모두 200%를 넘어섰다.
은행은 취급한 여신(대출)을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5단계로 구분해 관리한다. 고정이하여신(NPL)에는 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이 해당하며 통상 부실채권으로 부른다. 전체 여신 중 NPL 비율이 높으면 부실 위험이 커졌다고 평가한다.
NPL커버리지비율은 은행이 NPL 대비 적립한 충당금의 비율로, 높을수록 부실 완충 능력이 갖춰졌다고 본다. 이 비율을 높이려면 NPL을 상각하거나, 충당금을 쌓아야 하는데 최근 은행권 움직임은 후자에 가깝다.
KB·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가 올 1분기 추가로 적립한 충당금 합계는 1조7338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1분기(7256억원)와 비교하면 2배 넘게 늘어난 규모다. 특히 KB금융은 같은 기간 충당금 적립 규모가 약 348% 급증했다.
은행을 포함한 금융지주가 충당금 적립을 늘리는 건 잠재 부실 압박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우상향한 대출금리가 차주들의 연체율 상승이나 부실채권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은행권 충당금 적립 확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4대 시중은행의 1분기 기준 연체율 평균은 0.25%로 전년동기(0.17%) 대비 0.08%p 상승했다. 신한·우리은행이 0.28%고 하나은행 0.23%, 국민은행 0.20%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4대 금융지주 기준 1분기 NPL비율 평균도 0.41%까지 올랐다.
다만 이런 상황을 고려해도 현재 은행권의 부실 대응력은 충분히 갖춰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제적인 충당금 적립 확대로 NPL커버리지비율은 역대급으로 높아졌다. 평시 금융당국의 권고 수준인 100%의 두 배를 웃돌 만큼 높은 방파제를 쌓은 셈이다.
실제 한 시중은행의 분기별 NPL커버리지비율 흐름을 보면 2017년 90%대에서 2018년 110~120%대로 오른 뒤 2020년 120~160%대로 상승했다. 특히 2021년의 경우 2분기 170%대였던 수치가 4분기 220%대로 뛰었고, 지난해부터 계속 200%대 중후반을 유지 중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경기 상황은 매년 변하기 때문에 금융사의 연체율도 이와 함께 오르거나, 내릴 수 있다. 지금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딱 어느 정도가 건전한 수준이라고 명시된 기준은 없지만, 경기 전망이 어둡기 때문에 선제 대응하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은 앞으로 충당금 적립 규모를 계속 늘려가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연체율이나 NPL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지만, 올 하반기 코로나19 금융 지원 종료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은행 건전성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잔존해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는 9월 소상공인·중소기업 대상 대출 상환 유예가 종료될 경우 연체율이 급상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은행권 연체율이 이 정도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건 정부 정책에 따른 ‘착시 효과’라는 분석도 있다.
금융당국은 최대한 연착륙을 유도하겠단 방침이지만, 은행권에선 회수 과정에서 상환이 어려운 대출이 발견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많다. 2020년 4월 금융 지원 시작 이후 3년 넘게 수면 아래 잠들어 있는 잠재 부실 리스크가 터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부실에 대비해 적립하는 충당금은 회계상 비용으로 처리돼 금융사 순이익을 깎아먹는다. 올 2분기부터 은행의 실적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경기 불확실성과 건전성 관리를 고려했을 때 당분간 충당금 적립 규모 확대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지금의 연체율은 진짜 연체율이 아닐 수 있다”며 “정부에서 코로나 금융 지원을 또 연장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종료된다면 하반기부터 부실한 대출이 나타날 거고, 이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