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정부 물가지수 따로, 체감지수 따로 → 물가지수 이대로 괜찮나
정승원
입력 : 2016.03.04 14:57
ㅣ 수정 : 2016.03.04 16:28

▲ 정부가 공식 발표한 물가는 1965년 통계집계이래 사상 최저다. 하지만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 물가지수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홈플러스 송도점. [사진=뉴스투데이DB]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소비자물가상승률은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역대 최저치였다.
하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영 딴판이었다. 전세가 미쳤고, 월세는 날았고, 담배, 소주, 식료품값 등 국민들이 실제로 느끼는 체감물가는 정부발표와 너무나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 소주 11.4%, 신선식품 9.7%, 전세 4.1%, 버스요금 9.6% 올라 VS. 2월 물가지수 1.3% 상승
3일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지수(2010년 소비자물가=100 기준)는 110.76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3% 올랐다. 지난해 우리나라 연간 소비자물가가 2014년 보다 0.7% 오른 것을 감안하면 ‘소폭’오른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소폭’이 아니라 ‘2배 가량’ 오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품목의 물가가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소, 과일, 어패류 등 기상조건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 51개 품목을 묶은 신선식품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9.7% 올라 2013년 1월(10.5%) 이후 37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을 나타냈다. 품목별로는 △양파(118.6%) △파(83.8%) △배추(65.5%) 등이 상승세를 이끌었다.
쌀, 전·월세 등 집세, 대중교통 이용요금 등 142개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 역시 작년 같은 달보다 0.9% 상승해 2014년 7월(1.4%) 이후 19개월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 대중교통인 시내버스 요금이 9.6% 올랐고, 전세(4.1%), 월세(0.4%) 등 집세도 올랐다. 소주출고가 인상 탓에 음식점 소주 값은 11.4%나 뛰었다.
■ 담뱃값 인상 없었으면 지난 해 소비자 물가 지수는 하락했을 수도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연간 소비자물가는 전년보다 0.7% 오르는데 그쳤다. 이는 물가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65년 이후 5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물가가 역대 최저상승률을 기록한 것은 기록적인 경기 부진과 국제유가 및 곡물 가격 급락 때문이다. 국제유가는 2014년 3분기까지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으나 지난해 30달러까지 떨어져 3분의 1 토막이 났다.
석유류 가격하락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98% 포인트나 떨어뜨리는 효과를 냈다. 여기에 수출부진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으면서 경제성장률이 2.7%까지 하락해 물가하락을 부채질했다.
그나마 물가가 오른 것은 담뱃값 상승에 힘입은 것이다. 담배세를 대폭 올리면서 한 갑에 2500원 하던 담배가 4500원으로 오르면서 물가상승률을 0.58%포인트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됐다. 담뱃값 상승이 아니었다면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계산이다.
역대 최저라는 정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친 전세값 폭등에, 월세물량을 잡느라 한 해를 보낸 사람들 입장에선 사상 최저 물가상승률이라는 말에 오히려 분노가 치밀지도 모른다.
실제로 KB국민은행의 주택가격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지역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매매가 상승분의 2배 가까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매매값은 3192만원 올랐고, 전셋값은 거의 2배 수준인 5665만원 뛰었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작년 1월말 3억1864만원에서 12월말 3억7800만원으로 무려 17.8%가 올랐다. 전셋값은 관련 통계를 알 수 있는 2011년 이후, 매매가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이래로 가장 많이 올랐다.
■ 공식물가와 체감물가 차이로 정부발표에 대한 불신 커져
일반 소비자들이 물가를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장바구니 물가 역시 정부의 공식 소비자물가와는 괴리가 크다. 지난해 채소와 과일, 생선 등 생필품과 관련된 장바구니 물가는 오히려 2.1%나 올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전국 3312가구를 설문 조사한 결과도 비슷하다. 국민이 체감하는 식품 물가의 수준은 2014년을 100으로 봤을 때 지난해 112.2로 나타났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지난 1년간의 물가상승률이 11.2%에 달한 것이다.
정부발표와 체감지수가 이렇게 다른 이유는 뭘까. 통계청이 조사, 집계하는 소비자물가는 총 481개 품목을 대상으로 한다. 물가품목은 도시소비자들이 많이 소비지출하는 품목으로 품목별 월평균 소비지출비중이 0.01% 이상 되는 품목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식생활과 관련되는 품목으로는 쌀, 쇠고기, 달걀, 배추 등이 들어가 있다.
주거생활과 관련해선 전세와 월세가 포함돼있고, 의생활과 관련되는 품목으로는 신사복, 숙녀복, 각종 내의, 구두 등이 있다. 이 밖에 일상생활에서 소비지출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생수, 이동전화료, 피자, CD음반, 노트북 컴퓨터 등도 두루 물가품목에 들어가 있다.

▲ 소주 출고가 인상으로 음식점에서 파는 소주값들도 크게 올라 서민들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사진=뉴스투데이DB]
하지만 개별가구가 소비하는 부분은 이 중 일부 품목만 해당하기 때문에 지표와 체감 간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공식통계와 체감지수 간에 큰 괴리를 느끼는 것은 481개 물가품목에 대해 기계적으로 평균을 내기 때문이다. 숫자의 함정에 빠져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령 지난해 10월 소비자물가지수에서는 기름 값과 여행 관련 품목 물가는 떨어졌지만, 식재료와 대중교통비 등 소비자들이 매일같이 접하는 품목의 물가 상승폭이 높았다.
일부 품목에 가중치를 두고 있지만 가중치가 가장 높은 20개 품목 중 밥상물가는 돼지고기 하나뿐이라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 실제 체감지수 반영할 수 있는 새 물가지수 절실
통계청은 지난해 10월 공식 물가통계와 체감지수 간에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일자 유경준 통계청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해명하기도 했다.
유 청장은 “소비자물가가 2014년 12월부터 10월 현재까지 0%대 상승률을 기록한 데 반해 일반국민은 체감물가가 높다고 인식하고 있어 소비자 물가통계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문제점을 인정했다.
그는 “소비자물가가 체감물가와 차이가 나는 원인은 크게 측정 상 차이와 심리적 요인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소비자 물가가 ‘가상의 평균가구’를 기준으로 한데 반해 체감물가는 ‘실제 개별가구’여서 불가피하게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역별 차이도 이런 괴리를 부추기고 있다. 소비자물가는 37개 도시 평균물가를 반영하기 때문에 거주지역별 체감물가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서울의 물가가 1.3% 상승했음에도 강원·전남, 경북 등 농가가 많은 지역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경우 전 도시 평균은 0.6%상승으로 계산된다는 해명이다. 높은 물가상승률을 체험한 서울 거주자들은 이런 통계가 잘못됐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통계청은 이처럼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와 동떨어진 소비자물가지수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기존에 구입 빈도와 지출비중이 높은 142개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를 발표해왔다.
하지만 이마저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일자 ‘체감물가시험추계'(임시물가지수)를 시험적으로 선보일 방침이다.
임시물가지수는 소비자물가지표 가운데 가격이 많이 오른 품목에 더 높은 가중치를 적용,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지수에 가장 근접한 통계를 만들어 내겠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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