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이야기] ‘메르스 공포’에 얼어붙은 대한민국 경제

정부의 엉성한 대처가 경제 혼란 키워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평소 잘 들어보지도 못했던 전염병 때문에 대한민국 경제가 얼어붙고 있다.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전염병에 대한 사람들의 막연한 공포가 경제활동에까지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으로 알려진 메르스(MERS) 얘기다. 메르스로 인해 소비활동이 멈추고 소비심리까지 얼어붙어 모처럼 살아나고 있던 경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정부의 엉성한 초기 대처가 국민들 불신 키우면서 경제활동도 위축시켜
메르스의 첫 확진자가 나왔던 것은 지난 5월 20일. 그로부터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메르스로 인한 공포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당초 초기진압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정부의 공언과 달리 확진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시민들은 불안감에 사로잡혀 외부활동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당장 유통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소비자들이 다중 밀집지역 노출을 꺼리면서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증권업계는 메르스의 확산으로 화장품, 면세점, 항공운송, 호텔 및 레저업종이 타격을 입게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무엇보다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게 문제다. 국민들이 메르스 공포에 못이겨 스스로 바깥활동을 자제하다 보니 휴일이면 사람들로 북적이던 백화점 등 유통업계가 30%이상 고객이 감소한 상태이다. 특히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한 서울 강남과 경기 수원, 평택 등은 절반이상 줄어든 것으로 알려져 그 피해가 더 커질 전망이다. 소비심리가 이렇게 얼어붙게된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엉성한 초기대응 때문이다. 정부당국은 지역사회 감염이 아니라 병원내 감염이기 때문에 대유행의 가능성은 적다고 밝혔지만 시간이 갈수록 3차 감염자와 발생지역이 불어나면서 국민들의 반응은 공포로 바뀌고 있다. 실제 첫 환자가 발생한 지난달 20일부터 지금까지 사망자는 5명, 확진 환자는 64명으로 늘어났다. 지역도 수도권을 벗어나 지금은 충남과 대전, 순창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메르스가 국내 경제에 미칠 파장은 가늠하기 조차 어려워
메르스의 확산으로 국내경제가 얼마나 악영향을 받을지 현재로선 가늠키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당장 메르스 때문에 한국입국을 포기한 해외관광객수가 2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관광객 1인당 한국에서 1백만원 정도를 소비한다고 가정했을 때 관광객 수입만 200억원을 날렸다는 계산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중국관광객 소비가 10% 감소하면 국내 수요는 약 1조5000억원이 줄어든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유통업계의 경우 시민들의 외출자제로 벌써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걱정하고 있다. 이마트등 주요 유통업체들은 최근 한달간 매출감소가 20~30%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메르스의 영향이 얼마나 될지는 과거 유사한 전염병의 사례를 보면 어느정도 추정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경제에 가장 큰 악영향을 미쳤던 전염병은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으로 알려졌다. 2002~2003년 중국과 홍콩을 덮쳤던 사스는 당시 7082명의 감염자수와 648명에 달하는 사망자수를 기록, 엄청난 공포를 몰고왔다. 경제성장률은 5분의 1토막이 났고 홍콩 관광업계는 도산위기에 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인 관광객이 60%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세계은행은 사스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500억달러(55조원) 정도로 추정했다.
2001년 영국의 구제역 파동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구제역이 단순 가축 전염병이 아니라 국민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전역을 휩쓴 9개월간의 구제역으로 인해 살처분 된 가축은 모두 600만~700만 마리에 이른다. 축산업이 붕괴된 것은 물론 관광산업의 피해도 막중했다. 구제역이 발생하자 각 지역정부는 관광객들의 진입을 차단했고 소각.매장 등 살처분 장면과 살처분을 기다리는 가축들의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관광객 유입이 급격히 감소했다. 살처분 등에 투입된 정부의 직접 비용 지출은 30억 파운드가 넘었고 민간부문의 비용 지출은 50억 파운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밖에 1998년 영국 등을 중심으로 번졌던 일명 광우병으로 불리는 소해면상뇌증(BSE)은 130억달러의 손실을 가져온 것으로 추정됐고, 지난해 서아프리카 지역을 휩쓸었던 에볼라 바이러스는 최대 10억달러의 지역경제 손실을 초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추가적인 경기부양 나서야 할 판
최근 수년째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메르스라는 폭탄까지 떠안게된 정부로선 추가적인 경기부양에 나서야할 입장이다. 당장 11일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내려야 하는게 아니냐는 조심스런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상 최대치인 가계부채와 미국의 연내 기준금리 인상 등을 고려하면 금통위가 추가적인 금리인하에 나서는 것은 어렵겠지만 메르스사태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과 최근의 수출부진을 고려하면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 금리인하를 단행해야 하는게 아니냐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받고 있다. 많은 경제전문연구소들이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을 3%대 초반으로 예측했으나 메르스 사태로 2%대로 주저앉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특히 소비심리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성장률 하락은 피할 수 없게될 것이 뻔하다. 정부는 당장 추경편성에 대한 확답을 피하고 있다. 우선 지켜보자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하지만 소비심리가 계속 위축될 경우 정부로서는 추경편성이라는 대응책을 내놓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추경외에 메르스로 인해 직격탄을 맞고 있는 관광산업을 살리기 위한 대책 등 경기부양책도 추가로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메르스관련 해외 연지동향’에 따르면 지난 4일 하루에만 8800명이 방한 예약을 취소했다. 최근 한국관광의 핵심으로 떠오른 중국인이 4400명, 대만인이 2900명, 홍콩인이 200명 등 중화권 국적자가 7500명에 달하는 것이 더 우려스런 대목이다.
메르스로 인해 한국의 대외이미지에 먹칠을 가한 점도 문제다. 중국 네티즌들이 많이 이용하는 바이두에는 메르스와 연계지어 한국을 폄훼하는 내용들이 심심치않게 목격되고 있다. 자칫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져 한류수출과 공산품 수출 모두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중화권 최대 미이어사이트인 홍콩 봉황망(鳳凰網)이 실시한 네티즌 대상 긴급 설문조사에서는 93.37%(11만 7438명)가 “자신의 질병 상태를 숨기고 중국에 입국한 것은 매우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판했고 ‘한국인 감염자가 방중을 강행하고 또 감염환자와 밀접하게 접촉한 한국인들이 격리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런 점이 한국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79.11%가 “그렇다. 한국 국민의 전체적 이미지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해 한국이 자칫 왕따국가로 전락할 수도 있음을 우려케 했다.
최근 수년간 한류 등으로 애써 쌓아온 한국의 긍정적 국가이미지가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음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이진설 경제전문기자 water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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