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사상 첫 정부주도 베네수엘라 가상화폐 발행이 불러올 미국의 분노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미션임파서블5:로그네이션’은 로그네이션(rogue nation)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불량국가의 못된 시도를 주인공이 격파하는 뻔한 내용이다.
불량국가를 어떻게 규정할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분히 서방국가, 특히 미국이 세계의 경찰국가 역할을 한다는 할리우드의 시각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최근 가상화폐 시장에서도 불량국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남미 베네수엘라가 사상 처음으로 정부 주도의 가상화폐를 발행하겠다고 나서자 미국에서는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불량국가가 위기를 모면해 보려는 ‘꼼수’라며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가상화폐 발행으로 경제위기를 벗어나려는 베네수엘라의 시도= 22일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최근 자국에 매장된 석유자원을 토대로 가상화폐 페트로(petro)의 사전판매를 통해 7억3500만달러(7900억원)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일국의 대통령이 직접 나서 가상화폐 사전판매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발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하지만 페트로의 발행배경을 살펴보면 수긍이 간다.
좌파정권이 집권 중인 베네수엘라는 지난해 8월부터 미국으로부터 금융제재를 받기 시작했다. 미국정부가 좌파정권을 전복시킬 목적으로 자국 금융기관이나 개인이 베네수엘라와 새로 금융거래하는 것을 제한하는 금융제재를 가한 것이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웠던 베네수엘라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려왔다. 기존 부채 이자 등 상환조건을 갱신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국 통화인 볼리바르는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우리돈 7350원짜리 햄버거 하나 사는데 무려 20만3800볼리바르가 필요할 정도다. 베네수엘라의 대외 부채는 1500억달러(16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두로 대통령은 가상화폐를 위기의 돌파구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자금조달이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보증하는 가상화폐를 발행해서 국제자금을 끌어들이겠다는 노림수다.
베네수엘라가 페트로를 발행하면서 베네수엘라 공식통화인 볼리바르로는 매입을 금지하고 대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달러나 유로 등 경화만 받겠다고 한 것은 페트로의 발행을 통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석유자원과 연계해서 발행하는 ‘페트로’의 미래= 페트로는 베네수엘라에 있는 석유자원과 연계해서 발행되는 가상화폐다. 마두로 대통령은 ‘신개념 가상화폐’라고 주장하지만,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구리, 니켈 등 광물자원과 연계한 가상화폐는 새로운 게 아니라는 시각이다.
특히 수년 전 중국 등에서 광물자원을 활용하여 가상화폐를 발행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대부분 사기로 끝난 경우가 많다는 것이 금융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이번에 발행되는 페트로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보증하고 실제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석유보존량을 고려하면 기존 사기사건과 연결해 해석하기는 무리가 있다.
베네수엘라는 자국산 원유 1배럴 가격을 토대로 할인율을 적용해 1페트로를 결정했다. 최초 판매단가는 60달러로 책정했다. 베네수엘라 원유가격이 달라지면 페트로의 가치도 함께 움직이도록 설계한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원유매장량이 2670억 배럴이라고 주장한다. 이 가운데 50억 배럴을 담보로 페트로를 발행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소지가 전혀 없다고 자신한다.
베네수엘라는 일단 1억 페트로를 발행할 계획이다. 배럴가치로 따지면 60억달러(약 6조4500억원) 규모다.
▶러시아도 가상화폐 발행 움직임 속 북한, IS도 동참?=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러시아 정부가 서방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암호화폐인 ‘크립토루블(cryptoruoble)’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는 베네수엘라의 페트로에 자극을 받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 역시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국가의 경제재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상화폐 발행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이나 IS(이슬람국가) 등 국제적으로 ‘왕따’로 전락한 국가들도 가상화폐 열풍에 동참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6일 가상화폐 문제를 다룬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서 밥 메넨데즈 의원은 북한의 가상화폐 악용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메넨데즈 의원은 “북한이 제재를 피하기 위해 가상화폐를 활용했는지 의회 차원에서 조사 중”이라면서 “민관협력을 통해 북한의 가상화폐 해킹 실태를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테러단체인 IS도 가상화폐를 활용한 자금조달을 꾀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IS 등 이슬람 무장 투쟁 단체들이 사이버상에서 가상화폐 후원금 모집에 노골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가 주도 가상화폐를 바라보는 미국의 불편한 시선=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가상화폐 시장에 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달러 중심의 기존 통화질서를 흔들려는 이들 국가의 시도에 맞서 본격적으로 가상화폐 규제에 나설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와 AFP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는 베네수엘라의 페트로 발행과 관련, 페트로를 구매할 경우 금융제재를 위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정부와 궤를 같이 하는 베네수엘라 우파 야권도 페트로 발행에 반대하고 있다.
미국은 '불량국가'로 지목하는 베네수엘라의 가상화폐 발행이 금융제재를 빠져나가기 위한 ‘꼼수’로 보고 추가적인 제재방안을 심각히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나 북한까지 가상화폐를 발행하거나 활용할 경우 가상화폐에 대한 본격적인 제재방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페트로 발행이 과장됐다고 판단하면서 당분간 페트로 동향을 예의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은 7억3500만달러의 사전판매를 통해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샀는지, 팔린 금액에 대한 아무런 증거자료를 제시하지 않아 실제로 팔린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고 CNBC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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