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에서 주당 40시간 근무해” 머스크를 향한 연기금의 전일제 요구

[뉴스투데이=정승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깊숙이 개입하며 사방에 적을 만들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트럼프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지만, 기관 투자자들은 더 많은 시간을 테슬라 경영에 힘쓸 것을 요구하고 나서 관심이 쏠린다.
투자전문매체 벤징가에 따르면 약 9500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주요 연기금 및 기관 투자자 12곳은 최근 테슬라 이사회에 보낸 서한에서 머스크가 최소 주 40시간 이상 테슬라에 전념할 것을 요구하며, 기업 지배구조의 전면적인 개혁까지 촉구했다. 해당 서한은 뉴욕시 감사관, 미국교사연맹(AFT),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 등 주요 공공 투자기관이 공동 서명한 것으로, 테슬라에 대한 투자자 신뢰가 심각히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한에서 기관 투자자들은 "테슬라의 현재 위기는 CEO의 부재에서 비롯된 장기적인 문제를 뚜렷하게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이는 머스크가 테슬라 외에도 X(구 트위터), 우주 탐사 기업 스페이스X, AI 스타트업 xAI,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업 뉴럴링크 등 다수의 회사를 병행 경영하는 데 따른 시간 분산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다.
코넬대학교 존슨 경영대학원의 기업지배구조 전문가 사라 스탠리 박사는 “머스크는 시대를 대표하는 혁신가지만, 혁신은 언제나 전일제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며 “테슬라처럼 불확실성이 커진 시점에서, 경영 공백은 주주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관 투자자들은 또한 테슬라 이사회가 CEO 승계 계획을 수립하고, 다른 이사회 구성원과 개인적 관계가 없는 ‘독립적 인사’를 새로운 이사로 선임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사실상 ‘머스크 친위 이사회’ 구조를 해체하라는 의미로, 미국 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준을 중시하는 기관 투자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압박 전략으로 꼽히고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스콧 케플러 교수는 “테슬라 이사회는 오랫동안 머스크의 영향력 아래 있었기 때문에 독립성과 견제 기능이 약화된 이사회로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며 “이사회 재구성은 테슬라의 ESG 등급 회복에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머스크는 지난주 X에 “나는 하루종일 일에 매진하고 있으며, 회의실과 공장에서 자고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테슬라에 몇 시간을 쓰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일각에서는 최근 그가 ‘정부 효율성 부서(DOGE)’의 특별 정부 직원 역할을 중단한 점을 주목하고 있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이를 테슬라에 보다 집중하겠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으며, 실제로 테슬라 주가는 머스크의 거리두기 이후 주가가 50% 이상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여전히 테슬라 주가는 지난해 12월 최고치 대비 약 26% 하락한 상태다. 테슬라의 경쟁력 문제보다 머스크의 정치적 발언, X 경영에 대한 논란, 그리고 자사에 대한 집중도 부족이 주가 하락의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머스크는 최근까지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밀한 관계, 우파 성향의 발언 등으로 논란을 빚었다. 뉴욕대학교 스턴경영대학원의 크리스틴 윌버 교수는 “머스크의 정치적 입장이 테슬라라는 상장 기업의 이미지에까지 악영향을 주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CEO의 시간 문제뿐 아니라 이미지 리스크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기관 투자자들의 이번 주당 40시간 이상 전일제 근무 요구는 단기적 성과 압박 이상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ESG 경영을 중시하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테슬라에도 ‘정상적인 거버넌스’를 요구하고 있다는 신호로, 머스크의 개인 역량이 아닌 조직 차원의 리더십 체계를 마련하라는 뜻이다.
미국 연기금 전문가 리처드 플래너리는 “지금까지 테슬라는 머스크 개인의 카리스마로 이끌려왔지만, 기업이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도화된 리더십과 책임 있는 이사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테슬라가 연기금들의 요구에 어느 정도 응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머스크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더 이상 테슬라를 지탱할 수 없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