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시게미츠(重光) 일족의 난’을 보는 불편한 시각

정승원 기자 입력 : 2015.07.31 14:44 ㅣ 수정 : 2015.07.3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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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제간 경영권 다툼이 한층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분쟁의 당사자인 신동주(장남) 전 일본롯데 부회장과 신동빈(차남) 롯데회장의 일본인 어머니인 시게미츠 하츠코 여사가 30일 한국을 방문해 주목을 끌었다. [사진출처=방송화면 캡처]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29일자 보도에서 롯데 경영권 다툼을 가리켜 “시게미츠(重光) 일족의 난(亂)”으로 묘사했다. 시게미츠는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일본 성이다. 한국에서는 ‘형제의 난’ ‘왕자의 난’ 등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일본 언론은 이번 다툼을 신씨, 아니 시게미츠 일가 전체의 피와 살이 터지는 골육상쟁식 싸움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형제간 경영권 다툼을 계기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롯데 오너일가의 민낯이 하나 둘씩 드러나면서 롯데기업 정체성에 대한 해묵은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롯데는 과연 일본기업인가, 한국기업인가.


일본이름 시게미츠 다케오(重光武雄)를 쓰는 창업주와 일본어로 인터뷰 하는 장남

30일 KBS는 신격호 롯데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단독인터뷰를 내보냈다. 신 전 부회장은 인터뷰에서 신동빈 롯데회장을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서 내려오게 한 것은 부친의 지시였다고 주장하며 신 총괄회장의 서명이 담긴 지시서를 전격 공개했다. 이 보도가 나가자 네티즌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정작 인터뷰 내용이나 지시서의 내용이 아니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한국말이 아닌, 일본말로 인터뷰를 진행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의 모친이 일본인인 것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재계서열 5위에 올라있는 롯데그룹 장남이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게 여론의 반응이다.

▲ 30일 KBS에 공개된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지시서. 네티즌들은 신동빈 롯데회장을 해임하는 것이 창업주의 뜻이었다는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의 일본어 인터뷰도 충격이었지만 신 총괄회장이 한국이름이 아닌, 일본이름 시게미츠 다케오(重光武雄)를 쓴 것이 더 충격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출처=KBS방송화면 캡처]


언론에 공개된 지시서에 적힌 신격호 총괄회장의 이름이 한국이름 신격호가 아니라, 일본이름인 ‘시게미츠 다케오’로 나온 것도 네티즌들은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신 총괄회장이 직접 했다는 서명 역시 시게미츠 다케오를 뜻하는 한자 重光武雄(중광무웅)으로 적혀있다.

사실 신격호 총괄회장의 국적은 한동안 미스테리였다. 결론부터 말해 그는 한국국적과 일본국적을 동시에 가진 이중국적자이다.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인이고 일본에서는 일본인인 기묘한 형태이다. 한때는 편법적 이중국적자가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지만 그가 이중국적자가 된데는 한일관계의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청년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가로 성공한 신 총괄회장은 한일 국교 정상화 이전에 일본으로 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일본이름이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외무대신을 맡았던 시게미츠 마모루(重光葵)와 같은 점이 흥미롭다.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 당시 다리를 다쳤던 시게미츠는 일본이 패망할 당시 미주리 함에서 목발을 짚고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다.

'A급 전범'으로 7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던 그는 곧 가석방으로 풀려났고, 정계에 복귀해 오랫동안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는 신 총괄회장의 둘째부인인 시게미츠 하츠코 여사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신 총괄회장이 당시 명문가 반열에 오른 처가댁 성을 따서 자신의 성으로 쓴게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하다.

어찌됐든 당시 일본과 대사급 외교 관계가 없었던 제1공화국 체제에서는 그의 일본 국적 취득을 알지 못했을 것이며 이 때문에 그의 한국 국적이 유지되었을 것이다. 또한 일본 정부는 1985년까지 이중국적을 허용했으므로 일본 내에서도 그의 한국 국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신격호는 한국인이고, 시게미츠 다케오는 일본인이라는 기묘한 상황이 수 십년간 지속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2011년 대한민국의 국적법 개정으로 그가 합법적인 이중국적 상태가 되면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일본적인, 너무도 일본적인 롯데 오너일가의 색깔

신 총괄회장은 각각 어머니가 다른 4남매를 슬하에 두고 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첫째 부인 노순화 여사와의 사이에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을 낳았다. 그리고 첫째부인 노 여사가 임신중이던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만난 둘째부인 시게미츠 하츠코 여사 사이에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회장 두 아들을 두었으며 1기 미스롯데 출신인 서미경씨와의 사이에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을 낳았다.

주목할 점은 신동빈(일본이름 시게미츠 아키오) 회장의 일본내 혼맥이다. 신 회장은 신동주(일본이름 시게미츠 히로유키) 전 부회장보다 7년 앞서 1985년 6월 결혼했다. 일본 귀족가문 출신인 다이세이건설 오고 요시마사 부회장의 차녀 마나미 씨가 반려자다.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수상이 주례를 하고 나카소네 현직 수상이 축사를 하는 등 그의 결혼식에 일본 정·재계 거물들이 대거 참석해 화제가 됐다.

당시 신 회장은 100억 엔(937억 원) 안팎의 비용을 들여 화려한 결혼식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마나미 여사는 일본 왕세자비 후보로도 이름을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신동빈 회장이 지난달 일본 출장길에 아베 신조 총리와 면담을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처가댁 배경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반면 신 전 부회장은 재미교포 사업가 조덕만 씨의 차녀 조은주 씨와 연애결혼을 했다. 조은주 씨는 대학과 대학원을 모두 UCLA에서 마쳤다. 결혼 직전까지 일본 미쓰비시상사 미국 지사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덕만 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소규모 무역업을 했다.

일본인 아내를 둔 신동빈 회장이 능통하지는 않지만, 한국말을 하는 반면 한국인 아내를 둔 신동주 전 부회장은 한국말을 거의 못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신 회장이 비교적 일찍 한국에서 근무를 하면서 한국어를 배울 기회를 가진 반면, 신 전 부회장은 주로 일본에서 근무해 한국어를 익힐 기회가 없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창업주인 신 총괄회장 역시 일본에서 성공신화를 이룬 배경에는 명문가문 출신인 부인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총괄회장이 재혼이후 사업에서 승승장구 한 것도, 그의 일본이름이 시게미츠 다케오인 것도 잘 나가던 처가댁의 명성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형제싸움이 신동빈 회장 대 일족간 싸움으로 확산

형제간 분쟁으로 시작됐던 롯데가(家)의 경영권 분쟁은 이제 신동빈 회장 대 나머지 가족간 싸움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씨 일가 친척들이 반 신동빈 세력에 속속 집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씨 일가친척들이 반대편에 서게 된 배경에는 신동빈 회장의 일방통행식 경영스타일에 다른 일가 친척들이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신동빈 회장이 지난 15일 일본 롯데그룹의 지주회사인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임명되며 한·일 롯데그룹을 모두 거느리게 되자, 일부 친척들은 후계구도를 두고 신격호 총괄회장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의 이번 ‘신주쿠발 쿠데타’ 시도 때 신 총괄회장의 동생이자 일본식품회사 산사스 사장인 신선호씨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신선호 사장은 한때 일본 롯데에서 일하며 롯데리아를 성장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송사에 휘말린 적 없는 유일한 형제다.

반 신동빈 세력에는 신동인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대행도 동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동주·동빈 형제에게는 6촌 형뻘이다. 신동인 대행은 롯데그룹의 핵심으로 꼽히다가 신동빈 회장이 실권을 잡으면서 좌천한 경험이 있다. 그는 신 총괄회장의 사촌인 신병호(2005년 작고) 전 롯데칠성음료 고문의 장남이다. 1968년 롯데제과에 일반사원으로 입사해 그룹기획조정실 사장, 롯데제과·롯데쇼핑·롯데호텔 사장까지 올랐다. 하지만 롯데그룹이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정책본부를 신설하고 ‘신동빈 본부장’ 체제를 갖추면서 그는 밀려났다. 그뒤 10년 동안 롯데자이언츠 일만 하고 있다.

신 회장의 배다른 누이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1973년 롯데호텔에 입사해 30년 가까이 롯데쇼핑과 함께하다 2006년 롯데쇼핑 등기이사에서 빠졌다. 2012년부터는 경영에서 물러나 복지재단 관련 활동만 벌이고 있다.

신영자 이사장과 딸인 장선윤 호텔롯데 상무 등이 50%의 지분을 보유한 회사는 지난 2013년 롯데와의 거래가 끊기기도 했다. 팝콘·콜라를 유통하는 시네마푸드·시네마통상은 그전까진 롯데시네마에 매점을 운영하면서 수백억대 매출을 올려왔다. 하지만 2013년 2월 롯데시네마가 매점을 직영으로 전환하며 문을 닫았다. 이런 점이 신영자 이사장측을 섭섭하게 만든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대를 이은 형제간 싸움, 2대에 걸친 가족 비극사

사실 신씨 일가의 형제간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5남 5녀를 둔 집안의 장남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형제와 크고 작은 분쟁을 겪었다. 신 총괄회장의 남동생은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신선호 일본 산사스 사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 신준호 푸르밀 회장이다.

우선 바로 아래 동생인 신철호 전 롯데사장은 1958년 신 총괄회장이 국내에 없는 틈을 타 서류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롯데를 인수하려다 발각돼 구속된 적이 있다. 이후 신격호 회장과 틀어진 그는 작은 제과 회사를 차려 독립했고, 지금은 고인이 됐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또 3남 신춘호 농심회장과도 라면사업을 두고 갈등을 벌였다. 신춘호 회장은 롯데 이사로 재직하던 1960년대 신격호 총괄회장의 반대에도 1965년 롯데공업에서 라면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깊어졌고 결국 롯데공업은 회사 이름을 농심으로 바꿨다.

막내 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은 롯데제과ㆍ롯데칠성ㆍ롯데물산 등 주요 계열사의 대표를 두루 거쳤다. 특히 롯데그룹 운영본부의 부회장을 맡아 신격호 총괄회장을 대신해 한국 롯데 경영을 지휘했다. 그러나 지난 1996년 서울 롯데제과 부지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법정 소송을 치르며 감정의 골이 생겼다. 이후 그룹의 주요 자리에서 밀려났고 2007년 롯데그룹에서 분할된 롯데우유 회장으로 취임했다. 롯데우유는 ‘롯데’ 브랜드 사용 금지 요청에 따라 2009년 사명을 푸르밀로 바꾸고 롯데그룹으로부터 독립했다.

신 총괄회장은 24살 차이나는 막내 여동생 부부와도 갈등의 골이 깊다. 막내 매제인 롯데관광 김기병 회장과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 부부를 상대로 샤롯데 엠블럼 사용을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갈등을 겪었다. 특히 롯데그룹이 2007년 롯데JTB를 설립하면서 관광업에 진출해 양측의 갈등은 더 깊어졌다.

청년시절 물불을 가리지 않는 강인함으로 기업을 일궈 이제는 재계서열 5위의 대기업으로 키워온 신격호 총괄회장. 아들간 분쟁의 여파로 70년만에 자신이 세운 롯데그룹에서 강제적으로 2선으로 밀려난 그의 노년은 쓸슬해 보인다. 그리고 온갖 민낯을 드러내며 형제간에 이전투구식 싸움을 벌이고 있는 롯데를 지켜봐야 하는 우리 국민의 마음은 더 불편하다.


<이진설>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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