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사행산업 뜨고 비싸야 잘 팔리는 ‘불황의 역설’

정승원 기자 입력 : 2015.09.03 10:12 ㅣ 수정 : 2015.09.0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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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카지노, 복권, 경마 등 사행산업이 지난 10년간 8조원 이상 증가해 올해 사상 처음으로 20조원을 돌파할 것이 확실시된다. 불황에도 5만원대 디저트와 1만원짜리 고급 차(茶)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추석선물 예약 판매는 소비자들이 몰려 전화기에 불이 날 지경이고, 각종 경제지표는 급격히 호전되고 있다.

수십년간 구인난에 허덕이던 중소기업들은 인력이 몰려 모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이 모든 현상들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경기회복을 의미하는 시그널이라면 좋겠지만 그만큼 경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불황의 역설’(paradox of depression) 현상들이다. 최근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우리사회 곳곳에서는 이같은 ‘불황의 역설’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사행산업 사상 첫 20조원 돌파 초읽기-불황에 따른 ‘한방’ 심리 반영

경제 불황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국내 사행산업 규모는 무려 67.6%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금액으로는 8조원 이상이 늘어 올해 사상 처음으로 2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박광온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 따르면 사행산업으로 분류되는 카지노·경마·경륜·경정·복권 등의 2014년 총 매출액이 19조8933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5년 매출액 11조8677억원에 비해 지난 10년간 67.6% 이상 급증한 것으로, 비정상적으로 사행산업이 급성장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 경기침체가 길어지는 것과는 반대로 사행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사진=한국마사회]


10년간의 변화를 사행산업 업종별로 보면, 경마매출이 2005년 5조1548억원에서 2014년 7조6895억원으로 49% 증가했으며, 경륜은 1조7555억원에서 2조2019억원으로 25.4% 늘어났다. 경정은 같은기간 65%(2681억원) 증가했다.

카지노의 경우 매출액이 2005년 1조2437억원에서 2014년 2조7992억원으로 무려 125%(1조5555억원) 증가했다. 특히 국내 내국인 출입이 허용되는 강원랜드의 경우 2005년 8091억원에서 2014년 1조4220억원으로 매출액이 75.8% 증가했다. 입장객 수도 급증해 2005년 188만2000천명에서 2014년 300만7000명으로 112만5000명 늘었다.

로또복권 등 복권산업의 매출은 지난 10년간 2조8438억원에서 3조2827억원으로 16% 증가했으며 스포츠토토는 같은 기간 매출액이 무려 618% (4573억원→3조2813억원)나 폭증했다.

일반적으로 사행산업은 경기가 불황일 때 오히려 매출이 늘어나는 속성을 보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때도 사행산업의 총매출액이 전년대비 9.9%가 증가한 15조9699억원을 기록한 것이 이같은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추석선물 예약판매 불티-불황으로 예약할인 상품에 고객 몰린 까닭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의 추석선물 예약 판매는 불티가 날 정도이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지난 17일부터 시작한 추석선물 예약 판매 매출이 지난달 30일 기준으로 작년보다 28.6% 늘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예약 판매와 본 판매를 통틀어 올해 전체 추석 선물세트 매출이 지난해보다 약 15%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해 물량도 넉넉하게 갖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21일부터 추석 선물세트 예약을 받는 현대백화점도 30일까지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31.4%나 늘었다. 품목별로는 한우가 35.1% 증가했고, 생선은 33.9%로, 청과는 무려 68.3%나 증가했다. 신세계 역시 18~30일 추석 선물 예약을 접수한 결과 매출이 작년 동기대비 66%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대형마트의 사전예약 판매도 크게 증가했다. 이마트의 경우 17~27일 추석 선물세트 사전예약 판매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추석 기점)의 무려 4.3배로 불었다. 주요 품목별 증가율은 한우 32.6%, 수산 25.4%, 청과 29.7%, 건강식품 27% 등의 순이었다.

소비경기 침체 속에서도 백화점과 대형마트들이 최근 일제히 높은 추석 선물세트 예약판매 실적을 올린 이면에는 중저가와 예약할인 상품으로 고객이 몰리는 ‘불황형 소비심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해에도 이마트는 추석 선물세트 사전예약 행사를 통해 매출이 그 전년보다 19.7% 성장해 명절 행사 사상 최대치를 갱신했었다. 특히 사전예약 매출이 명절 선물세트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사상 최고치가 될 전망이다. 이 비중은 2012년 설에는 1.2%에 불과했으나 2014년 설에는 10.3%로 늘었고, 지난해 추석에는 15%를 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번 ‘예약판매 호황’에 대해 특정 신용카드를 이용해 구매할 경우 큰 할인혜택을 주는 등의 판매 조건 때문에 고객들이 몰린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매출의 상당 부분이 1만∼3만 원대의 중저가 선물세트에서 발생한 것도 불황형 소비의 증거로 꼽힌다.


중소기업들 만성 구인난 해소-일감 줄자 중소기업에 사람 몰려

중소기업들은 경기침체 덕분에 만성 구인난이 최근 크게 개선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력이 없다"며 정부에 SOS를 쳤던 중소기업들이 이제는 "일손이 충분하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중소기업의 구인난이 해소되고 있는 것은 내외수 동반 부진으로 중소기업들의 일감 자체가 줄어든 것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우리 고용시장의 고질병인 중소기업의 만성적인 구인난이 경기침체 덕분에 줄어드는, ‘역설’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 경기침체로 일감 자체가 줄어들면서 중소기업들의 구인난이 해소되고 있다. [사진출처=방송화면 캡처]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 5월 중기(제조업) 인력 경기실사지수(BSI)는 95포인트로 3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7월(97포인트) 이후 5년10개월 만에 최고치다. 이 지표는 한은이 900여개의 중소기업에 "현재 인력이 부족·적정·충분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지수화한 것이다. 100포인트를 기준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인력이 충분하다는 의미다.

올 들어 중소기업들의 구인난이 이처럼 급격히 줄어든 것은 경기악화로 일감이 줄어 일자리 자체가 감소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불황이 중기 구인난을 해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중기 종합 BSI는 2011년 87.3포인트에서 올해 1~5월 평균 71.6포인트로 4년 새 15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올 5월에는 68포인트로 전월보다 5포인트 하락, 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표상으로는 중기의 만성 구인난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경기 악화에 따른 착시현상이라는 것이다.


비싸야 더 잘 팔린다(?)-불황에 ‘작은 사치’ 즐기려는 소비심리 반영

불황 속에 전반적으로 소비가 크게 위축됐지만, 값이 비싼 고급 디저트·커피·초콜릿 등은 오히려 더 잘 팔리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팍팍한 사회·경제 환경 탓에 큰 사치는 누리지 못하더라도, 먹을 것만큼은 프리미엄급을 제대로 맛 보겠다는 이른바 '작은 사치' 추세가 뚜렷해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표적인 것이 호텔 디저트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JW메리어트 호텔 서울·쉐라톤 그랜드 워커힐·르네상스 서울 등 서울시내 주요 특급호텔들은 대부분 '딸기 디저트 뷔페'를 운영하고 있다. 제철 과일 딸기로 만든 수 십가지의 고급 디저트를 한 자리에서 맛 볼 수 있는 이들 상품의 가격은 4만~5만원대이다. 그런데도 예약을 못받을 정도로 인기가 넘쳐나고 있다.

호텔들이 영국 귀족 사교문화를 본 떠 내놓은 '애프터눈 티' 메뉴도 마찬가지다. 고급 수입 차와 간단한 디저트로 구성된 세트의 가격은 3만~9만원대에 달한다. 꽤 비싼 가격임에도 지난해 매출은 2013년보다 2.5배나 될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다.

젊은층이 즐겨 찾는 커피 역시 이른바 고급·프리미엄 제품인 '스페셜티 커피'의 수요만 급증하고 있다. 스타벅스가 지난해 처음 선보인 스페셜티 커피 전문 매장 '스타벅스 리저브'는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커피 가운데 상위 7% 내 프리미엄급만 사용하고, 특수 진공압착 추출기로 커피를 만들어 가격도 최고 1만2000원으로 비싼 편이다.


그런데도 손님이 몰려들어 스타벅스 서울 소공동점의 리저브 커피는 작년 3월 개장 초기 하루 평균 30여잔이 팔렸지만, 최근에는 판매량이 두 배인 60여잔 이상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11월 개장한 엔제리너스커피 '스페셜티 세종로점'에서도 전체 매출 가운데 17%를 세 가지 종류의 고급 스페셜티(7000~1만원)가 차지하고 있다.

유통업계는 이 같은 고가·고급 식음료 선호 현상에 대해 자기 자신을 위한 ‘작은 사치’로 해석하고 있다. 이는 명품구매처럼 남에게 보여주는 사치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불황시기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란 지적이다.


신설법인 수 월별 최대치 경신-취업난, 조기은퇴에 창업 내몰려

신설법인수는 지난 6월에 이어 7월에도 연달아 월별 최대치를 경신했다. 중소기업청의 신설법인 동향에 따르면 7월중 새로 생긴 법인은 8936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9%(807개) 증가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2056개·23.0%)이 가장 많았고, 도소매업(1899개·21.3%)과 건설업(964개·10.8%), 부동산임대업(948개·10.6%) 순으로 증가율이 높았다. 신설법인 대표자 연령대는 40대(37.7%)가 가장 많았고 50대(26.9%)의 비율도 높게 나타났다.

올해 새로 생긴 법인은 모두 5만5354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6%(5740개) 늘었다. 신설법인 수가 이처럼 크게 늘고 있는 것은 경기가 좋아서 늘어났다기 보다는 불황에 따른 취업난과 베이비부머의 은퇴 증가가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취업이 잘 안되는 젊은층과 중년층이 ‘먹고 살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자영업을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더 큰 문제는 새로 진입하는 자영업자 수보다 불황으로 사업을 접는 퇴출 자영업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자영업자의 추이를 살펴본 결과 퇴출자 수가 진입자 수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과 2012년은 자영업 진입자가 퇴출자보다 많았지만, 2013년 들어 퇴출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진입자를 초과한 것이다. 2013년 자영업자 중 66만명이 퇴출됐고, 58만명이 새롭게 진입했다.

연령별로는 40대 퇴출자가 전체의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자영업자는 2000년 779.5만명에서 2014년 688.9만명으로 감소됐다. 총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도 2000년 36.8%에서 2014년 26.9%로 하락했다.

이런 가운데 ‘제2의 가계부채’로 알려진 자영업자 대출은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미 600조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전체 가계빚(1130조원)의 절반이 넘는 수준이다.


<이진설>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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