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배보다 배꼽이 2배 더 커진 ‘유류세’ 논란

정승원 기자 입력 : 2015.12.26 20:42 ㅣ 수정 : 2015.12.26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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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이진설경제전문기자) 요즘 주유소에 가보면 주유기마다 큼지막한 스티커가 하나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티커에는 "휘발유 5만원 주유시 세금이 3만50원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한국주유소협회가 유류세의 실상을 국민들에게 바로 알리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운동의 일환이다.

주유소협회는 그러면서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하겠다고 경고했다. 주유소협회의 핵심요구조건은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이다. 주유세금이 60%인데, 고스란히 매출로 잡혀 주유소들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유류세

주유소협회는 ‘유류세에 대한 신용카드 수수료 특별세액공제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기름값에 붙은 유류세가 60%에 달해 주유소들이 내는 카드수수료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김문식 주유소협회장은 "주유소가 정부의 세금을 대신 거둬주면서 카드 수수료까지 내고 있는 실정”이라며 “주유소 경영난을 덜어주기 위해 특별세액 공제 항목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주유소당 카드가맹점 수수료는 한해 약 3000만원선이다. 주유소협회는 또 매출액 10억원 이상 사업자는 카드 매출세액 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부가가치세법’ 개정안에 대한 철회와, 매출액 10억원 이상 가맹점을 제외한 카드수수료 인하 정책 수정, 유류세 인하를 주장하고 있다.

현재 국내 정유사의 휘발유 세전 공급가격은 12월 현재 447원으로 생수가격(삼다수500ml)의 반값이다. 그런데도 실제 소비자가격은 리터당 평균 1434.9원으로 집계됐다. 휘발유 가격 가운데 유류세 비중은 주유소협회 주장대로 60%를 넘어섰다.

유류세가 국제유가 변동에 따라 탄력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거의 고정으로 붙어있기 때문이다. 리터당 교통·교육·주행세 등 745.89원은 무조건 내야하고, 원유에 부과하는 관세, 제품가격에 따라 변하는 부가세가 별도로 붙는다. 이같은 고정유류세 때문에 설령 국제유가를 공짜로 수입해도 리터당 745.89원은 무조건 내야 하는 구조다.


한국주유소협회가 제작한 유류세 바로알리기 운동 스티커에는 휘발유 1리터에는 교통에너지환경세 529원, 주행세 137.54원, 교육세 79.35원 외에 부가세 133.61원이 세금이라고 적혀있다. 물론 여기에 원유에 부과하는 관세까지 합하면 유류세는 900원을 훌쩍 넘긴다.

정유소 공급가격의 2배 이상을 세금으로 내고 있다는 계산이다. 휘발유가격이 리터당 2000원에 육박했을 때는 유류세비중이 50%를 넘지 않았으나 지금은 유가하락으로 세금비중이 60%대로 커진 것이다. 이는 지난 2009년 유류세제 개편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유류세 비중이 도드라지게 높아지다 보니 소비자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는 연일 바닥을 치고 있는데,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휘발유값은 그다지 내려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정으로 붙어있는 세금이 휘발유값의 절반을 넘다보니 빚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정부는 아직까지 유류세 인하와 관련하여 전혀 움직임이 없다. 휘발유값이 리터당 2000원에 가까웠던 지난 2008년 한시적으로 교통세, 주행세를 인하한 전례가 있지만 당시 소비자 체감인하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 오히려 원유가격 하락으로 인한 관세와 부가세수입 축소가 전체 세수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인다.

정부가 올해들어 LPG와 나프타 제조용 원유 등에 2%의 할당관세를 매기기 시작한 것도 세수부족을 우려해서다. 정부는 2011년 5월 서민물가 안정을 위해 이들 원유에 대해 3%였던 기본관세를 없애고 지난해까지 한정적으로 무관세 정책을 펼쳐왔다.

LPG업계는 지난 6월 한시적 할당관세 적용이 끝나 올 하반기부터 0% 관세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했지만, 기재부 측은 할당관세 '유지'로 가닥을 잡아 지금까지 관세를 매기고 있어 업계의 불만을 사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올 3분기 LPG수요는 전년동기대비 5% 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휘발유세 세계 최고수준으로 껑충 뛰어올라

최근 석유공사가 낸 ‘휘발유와 경유 세금 체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유류세는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보다 낮은 편이라고 주장한다. 올해 2분기 기준 휘발유 유류세가 리터당 881원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 조사대상 32개국 중 19위로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특히 경유 유류세는 648원으로 25위 수준이라고 석유공사는 덧붙였다. 네덜란드, 영국, 터키,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의 유류세가 높은 편이고 미국과 캐나다, 호주는 낮은 편이다. 다만 구매력을 반영하면 한국 소비자 유류세 부담이 다른 나라에 비해 작지 않다고 석유공사는 분석했다.

▲ 붉은 색이 세금비율이다. [자료출처=OPEC]


단순히 소비자 가격만 놓고 보면 한국의 휘발유값은 꽤 높은 편이다. 글로벌페트로프라이시즈닷컴 조사에 따르면 12월21일 현재 전세계 휘발유 소비자 평균가격은 0.99달러(1188원)다. 한국은 1.21달러(1452원)로 평균 대비 22% 높다.

한국보다 높은 휘발유가격은 스페인(1.27달러), 스위스(1.33달러), 벨기에(1.35달러), 프랑스(1.36달러), 독일(1.38달러), 핀란드(1.47달러), 영국(1.54달러), 네덜란드(1.67달러) 등이며 홍콩은 1.84달러(2208원)로 조사대상국가중 가장 높다.

반면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리터당 2센트(24원)로 가장 저렴했고, 리비아(13센트), 사우디아라비아(15센트), 쿠웨이트(21센트), 오만(37센트) 등도 리터당 500원에 못미쳤다. 전체적으로 보면 산유국을 제외하고 가난한 국가들은 기름값이 싼 반면 부유한 국가들은 높은 기름값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미국은 리터당 60센트(720원)로 선진국 가운데 가장 가격이 낮았다. 미국의 경우 유류세가 갤런(3.78리터)당 평균 48센트로 리터로 환산하면 12.6센트(151원)에 불과하다. 한국의 5분의1 밖에 안되는 셈이다.

국제석유기구(OPEC)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G7 국가중 유류세가 가장 높은 나라는 영국으로 60.1%에 달한다. 이탈리아가 57.1%로 그 뒤를 잇고 있으며 독일 51.5%, 프랑스 51.4%, 일본 33.5%, 캐나다 29.7%, 미국 14.8% 순으로 나타났다. G7 평균은 46.7%, OECD 평균은 이보다 1%포인트 낮은 45.7%다. 2015년에 어떻게 달라졌는지가 변수지만 2014년 수치만 놓고 보면 한국의 유류세 비율(12월 현재 60.1%)은 영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이다.

간접세 논란으로 번지는 유류세 논란

유류세를 둘러싼 논란은 결국 또다시 간접세 논란으로 번질 수 밖에 없다. 담뱃값에 이은 소주값 인상, 이번에 터진 유류세 모두 소득차이와 상관없는 간접세 품목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때 증세를 고려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최근의 추세만 보면 거꾸로 가고 있다는 인상을 지을 수 없다. 정부가 증세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뒤로는 간접세를 올려 대규모 세수증대를 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 때문이다.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른 담배세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윤호중 국회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보고받은 담배협회의 ‘월별 판매량’ 자료를 토대로 추산한 결과, 정부는 올해 11월까지 담배세를 통해 11조489억원을 거둬들인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전년대비 무려 63.9%나 증가한 수치다. 한국납세자연맹 김선택 회장은 “정부가 2015년부터 담배 값을 올리면 2014년 대비 2조7800억 원의 담배세수가 증가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실제 세수 증가분은 4조3064억 원으로 정부 발표보다 무려 1.6배가 더 증가했다”고 꼬집었다.

한국납세자연맹 조사에 따르면 내년에 정부가 흡연자들로부터 거둬들일 담배세 규모는 12조 6084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전체 근로소득자의 98%인 연봉이 1억원 이하인 직장인들이 내는 근로소득세(12조7206억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또 2013년 정부가 징수한 부동산 보유세 9조5000억원, 이자·배당 소득에 대한 금융소득세 7조6639억원보다 훨씬 많다. 한 마디로 흡연자를 상대로 부족한 세수를 메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실제로 담배를 하루 1갑 피는 흡연자의 경우 답배에 붙는 세금 3318원을 계산하면 연간 담배세로만 내는 돈이 120만원이 넘는다. 이는 상가 월세 217만원에 대한 임대소득세, 시가 9억 원인 아파트 재산세와 각각 맞먹는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 9억원대 아파트 1채를 보유하는 것과 맞먹는 세금을 내고 있다는 얘기다.

서민들이 주로 애용하는 소주값도 최근 업체들 사이에 도미노처럼 인상러시를 보이고 있다. 업계 1위 참이슬을 시작으로 지방소주들이 5% 이상 출고가를 인상했다. 소주값에 붙는 세율이 높아지지 않았음에도 출고가격 인상으로 정부는 추가적인 세수증대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거꾸로 서민들은 소주 출고가격이 50원 정도 올랐음에도 음식점 등에서는 1000원가량 오른 가격에 사먹을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한국납세자연맹 김선택 회장은 “복지재원을 간접세 위주로 증세하고 정작 혜택에서는 소외되는 경우가 있다”고 비판했다. 김회장은 오는 29일 오후7시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212호실에서 ‘세금을 통해본 한국사회의 문제’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개최하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간접세 등 다양한 세금문제를 짚어나갈 예정이다.

<이진설>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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