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약품 윤도준 회장이 고민한 ‘역사경영’, ‘윤인호 비전’ 동반자 되나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동화약품 윤도준(70) 회장이 최근 출간한 저서 ‘푸른 눈썹 같은 봉우리, 아름다운 남산’을 읽어보면 약간 놀라게 된다. ‘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로 창립 125년이 되는 국내 최고(最古)기업 오너 3세가 소일거리로 남산 길을 산책하면서 느낀 상념을 적은 수필집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깨진다. 의외로 무거운 책이다.
'남산 역사지리학'의 가치를 지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전문적 내용이 담겨 있다. 1시간이면 완독할 줄 았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남산 구석구석에 담겨 있는 역사를 세밀하게 설명하는 탓이다. 2017년부터 각계각층 인사와 함께 본격적으로 남산 역사 탐방을 진행했다고 한다. 윤 회장은 “역사의식을 공유하고 전파하는 노력을 지속하다보니 탐방이 31차까지 진행됐다”면서 “관심사와 신념이 결합되다 보니 관련 자료들이 계속해서 눈에 들어왔다”고 밝히고 있다.
■ '아름다운 남산'은 수필 아니라 남산의 역사지리학... 조선왕실 사당에서 일본천왕 신사로 전락하는 과정 눈길 끌어
주제의식도 강하다. 남산의 아름다움은 복원되고 있지만 남산의 역사적 교훈은 훼손되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일제 강점기에 남겨진 침략의 흔적을 보존하지 못하면서 남산의 역사적 교훈이 소실되고 있다는 게 윤 회장의 인식이다.
"남산을 풍광이 아름다웠던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데 일부는 성공을 거뒀다. 발전을 하다못해 내 기준에서는 심하게는 퇴행처럼 보이는 계획도 세운다...(중략)...우리는 모두 각자 앞에 놓인 길을 전진해야 하지만, 아픈 역사를 숨기지 말고 기억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 진정한 성장이 된다고 생각한다"
윤 회장에 따르면, 남산의 옛이름은 목멱산이다. 1394년 태조 이성계는 한양으로 천도하고, 이듬해에 북악산과 남산을 각각 진국백과 목멱대왕으로 봉작하고 '국가주관 제사’를 올리게 했다. 경대부(품계가 높은 벼슬아치)와 사서인(사대부와 서인)은 제사를 올릴 수 없게 했다. 개인제사를 금지한 것이다. 목멱대왕을 모시는 신사는 ‘목멱신사’로 명명됐다. 남산은 북악산과 함께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영산으로 자리매김된 것이다. 조선 후기로 들어오면서 목멱신사는 민간신앙 공간으로 변모한다. 이름도 ‘국사당’으로 바뀐다. 왕실의 권위와 신분질서가 흔들린데 따른 결과로 보인다.
더 큰 변화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 이후 벌어진다. 1900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왜변 때 순국한 장졸들을 기리기 위한 장충단이 건립된다. 하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장충단의 위치가 신라호텔 후문 주차장 자리로 추정될 뿐이다.
일제 강점기인 1919년에 조선총독부는 남산에 조선신궁 창립을 시작한다. 조선신궁을 일본천왕이 폐백을 지원하는 관폐대사이다. 조선왕조의 사당에서 민간의 사당으로 변했다가 일본왕실의 사당으로 전락했던 게 남산 역사의 가장 큰 줄기이다. 이처럼 윤 회장은 남산의 수많은 ‘소멸된 유적들의 역사’를 세심하게 복원해서 설명한다. 그 시대적 범위는 일제 강점기, 광복 후, 군사정권 시대의 남산을 망라한다.

■ 윤 회장이 남산의 역사성에 탐닉한 까닭은?... 동화약품의 21세기 '역사경영' 방향에 대한 고민과정
윤 회장이 남산의 역사성에 탐닉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윤 회장은 서문에서 "과거의 비극적 역사현장을 방문해보고 반성할 것은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에 남산 역사 탐방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더 구체적 신념이 자리잡고 있다. 그건 동화약품의 경영철학이다. 윤 회장은 남산 탐방을 통해서 조부 보당 윤창식(1890~1963)과 선친 가송 윤광열(1924~2010)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고백한다. 조부는 최고경영자(CEO)이면서 독립운동가였다. 일제 강점기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동화약품을 키우고 독립군에게 군자금을 댔다. 선친은 일제 때 학도병으로 강제 징병됐으나 탈출해서 광복군에 입대해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해방을 맞는다.
동화약품 창업자는 민강 사장이다. 그는 1897년 동화약방(동화약품 전신)을 만들어 왕실 비법이었던 생약 비방을 서양의학과 접목해 ‘활명수’를 생산했다. 국산신약 1호이다. 위장병을 많이 앓던 조선 서민들의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약이었다. 동화약품 125년 역사를 상징하는 약품이다. 1931년 민강 사장이 급서하자 동화약품의 사세는 빠르게 기울어갔다. 독립운동 동지이기도 했던 보당 윤창식은 동화약품을 인수, 경영을 정상화시켰다.
윤 회장은 “이런 할아버지 아버지가 계시니 앞으로 나는 나라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고심 속에서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한다. 동화약품이 독립운동을 했던 기업이라는 역사의식을 되새기고 21세기 역사경영 방향을 모색하려는 목표가 윤 회장으로 하여금 ‘아름다운 남산’을 집필하게 만든 것이다.
■ 윤 회장의 책쓰기는 우연 아니라 필연에 가까워
윤 회장의 이 같은 책쓰기는 우연이 아니다. 필연에 가깝다. 동화약품의 역사와 시인 조지훈 선생이 1962년에 작사한 사가에도 명시된 동화약품의 양대 정신 중의 하나이다. 하나는 제약보국(製藥保國)이라는 역사의식이다. 다른 하나는 비즈니스모델(BM)혁신을 통한 미래경영이다. “어두운 시대에 횃불을 들고서 / 겨레의 체질에 맞는 민중의 약을 찾아 그 보람 조국의 발전에 바쳤네”라는 1절과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추어 /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 꾸준히 개선하여 그 보람 인류의 보건에 바쳤네”라는 2절의 가사는 위대한 기업이 추구해야 할 2가지 본질 가치를 담고 있다.
경희대부속병원 정신과 과장으로 일하다가 가업인 동화약품을 맡아 20여년간 경영해 온 윤 회장은 인생 3막을 고민하면서 책을 썼다고 한다. 그 고민의 대상은 동화약품의 미래에 집중될 수 밖에 없다.
■ 오너 4세 체제 구축한 윤인호 부사장, 새BM 구축에 역점...위대한 제약기업 이야기 써내려 가길
흥미로운 것은 동화약품이 오너 4세인 윤인호(38세) 부사장 체제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9월 30일 공시자료에 따르면, DWP홀딩스가 동화약품 최대주주가 됐다. 동화약품 지분 15.22%를 보유한 동화지엔피 투자부문을 인수합병했기 때문이다. 윤인호 부사장은 DWP홀딩스의 최대주주이다.
DWP홀딩스는 사업목적으로 ‘지주사업’을 명시해 2019년 11월 설립한 회사이다. 동화약품그룹의 지주사인 것이다. 따라서 윤 부사장은 개인지분 2.3%에 DWP홀딩스의 15.22%를 합쳐 총 17.52%의 지분을 확보한 최대주주이다. 부친인 윤 회장 지분율은 5.13%이다. 윤 부사장의 동화약품 지배력은 특수관계인을 포함하면 33.67%에 달한다.
윤 회장은 ‘4세 경영체제’의 길을 열어 준 것이다. 윤 부사장은 젊고 추진력이 강해 보인다.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지난 2013년 재경·IT실 과장으로 동화약품에 입사해서 일반의약품(OTC) 영업과 마케팅을 총괄해 왔다.
이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는 새로운 비즈니스모델(BM)구축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진행된 인공지능(AI)기반 디지털 치료제 전문 개발 기업 하이에(HAII) 대한 전략적인 투자, 심플렉스와의 면역질환 치료제 개발, 온코크로스와의 항암제 신규 적응증 발굴 등은 모두 윤 부사장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윤 회장은 기업경영에 있어서 ‘역사의식’을 강조하는 책을 펴내고 아들인 윤 부사장은 미래경영을 주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윤 회장은 사가의 1절을, 윤 부사장은 사가의 2절을 노래하고 있는 셈이다.
동화약품은 이익 극대화를 통한 성장이라는 자본주의 논리에 집착하는 대신에 ‘역사의식’을 기반으로 한 성장전략을 추구해왔다. 윤 회장은 저술을 통해 21세기에도 동화약품이 어떻게 민족과 국가를 위해 기여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화두를 던졌다.
윤인호 부사장이 주도하는 동화약품은 미래를 향해 진화하고 있다. 동화약품은 한국최초의 기업이자 친일로 변절하지 않고 끝까지 독립운동을 지원한 기업이라는 의미가 막중하다. 그 진화의 고비마다 윤도준 회장의 역사의식이 동반자가 됨으로써 위대한 기업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