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이야기] 같은 듯 다른 ‘세월호와 메르스’의 충격파

정승원 기자 입력 : 2015.06.15 10:02 ㅣ 수정 : 2015.06.15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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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한국은행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충격에 얼어붙은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 금리인하라는 칼을 빼들었다. 11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의 위험보다는 당장의 경기침체를 막는게 다급했던 모양이다. 정부도 추가경정예산(추경)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메르스 충격이 예상보다 심각해지면서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 커질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메르스 초기대응에 미숙했던 정부가 경기부양에는 비교적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자도 낮추고, 돈도 풀고, 규제도 풀고. 정부로선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하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던진 셈이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1년전 한국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었던 세월호 참사보다 지금의 메르스 공포가 훨씬 더 심각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세월호가 낳은 사회적 불안감, 메르스가 기름을 부운 꼴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은 웃음을 잃었다. 술자리는 사라지고, 꽃놀이며 봄나들이도 자취를 감췄다. 전국적인 애도 분위기 속에 체육행사나 지역 축제가 줄줄이 취소됐다. 백화점, 상점에도 고객들의 발길이 끊겼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세월호 참사로 지난해 1조 8000억원의 소비감소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연구위원은 신용카드 승인액 분석을 통해 "여가 오락과 음식 숙박, 도소매 부문 등에서 대략 5%p의 소비감소 효과가 있었고 이는 전체 민간소비를 1%p 끌어내리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 메르스로 인해 내외국인의 발길이 뚝 끈긴 시내중심 지하상가 모습 [사진=이동환 기자]


세월호 참사 충격이 지속되면서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아버렸다. 꽁꽁 얼어붙었던 소비심리는 작년 3분기에서야 비로소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정부는 돈을 풀고, 부동산 규제도 대폭 풀어 소비심리 살리기에 팔을 걷어 붙였다. 그러나 정부의 기대와 달리, 민간소비는 작년 4분기에 다시 나빠지기 시작했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0.5%로 둔화됐고, 설비투자도 부진해지면서 내수회복세는 고꾸라졌다. 돈도 풀고, 규제도 풀었지만 정부의 예상과 달리, 소비자들은 좀체로 지갑을 열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세월호 1주년을 맞이하여 온라인설문조사기관인 마이크로밀엠브레인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상적 불안감을 경험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77.7%를 차지했다. 가장 불안감이 높은 분야는 경제상황 악화에 대한 불안감으로 지난해 69.9%가 불안을 느낀다고 대답한 것이 이번에는 79.7%로 치솟았다. 또 국가기관이 나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도 45.9%에서 58%로 급등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고 특히나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소비자들의 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불안감을 느낀다고 응답한 사람의 절반은 소비를 줄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외식과 각종 여가활동, 여행 등에서 소비가 줄어든 것이 세월호 참사로 증가한 불안감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메르스 충격까지 가세했으니 국민들의 불안감은 세월호때 보다 훨씬 더 커졌음은 굳이 조사를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듯 다른 세월호와 메르스의 충격파

세월호 참사가 1조 8000억원의 소비감소를 불러왔다면 메르스의 소비감소 효과는 얼마나 될까. 메르스가 현재진행형인 관계로 아직은 정확한 규모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신용카드 사용액을 보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은 어렵지 않다. 6월 첫째주 음식점 카드 사용액은 지난 5월 첫째주 대비 12.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백화점과 대형마트도 영향이 있었다. 6월 첫째주 백화점 매출액은 지난 5월 첫째주 대비 25%, 대형마트 매출액도 7.2% 감소했다. 외식업계에서 느끼는 체감지수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584개 회원사들은 매출감소가 30%에 달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대부분이 메르스가 장기화될 경우 세월호때보다 메르스로 인한 여파가 더 클 것이라는 암울한 예상을 내놨다. 세월호의 경우 소비를 자제하려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메르스는 감염에 대한 실질적인 우려로 인해 사람이 많은 곳이나 야외활동을 아예 꺼려하는 경향이 있어 그 여파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세월호 참사때는 국내 소비자들이 주로 지갑을 닫은 반면, 이번 메르스는 해외관광객들까지 가세해 그 충격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 외국인 관광객으로 항상 북적거리던 광화문에 외국인들이 확연히 줄어들어 한산하다. [사진=이동환 기자]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올 1~5월 인천공항 평균 출입국자수는 전년 대비 17.2% 증가했지만 6월(1~10일) 들어서는 1.09% 증가에 그쳤다. 메르스 확산에 따른 불안감이 커지면서 내국인 출입국자 수와 외국인 수가 동시에 줄어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메르스 사태로 국내 여행을 포기하는 외국인 관광객 수는 이달들어 8만4450명으로 집계됐다. 한국관광의 큰손으로 불리는 중국, 대만, 홍콩 등 중화권 관광객들이 집중 취소했다.

관광업계에서는 메르스가 조기에 잡히지 않을 경우 올해 전체적으로 작년 대비 약 15% 정도의 관광객 감소가 예상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관광수입이 181억달러(약 20조1400억원)에 달한 점을 고려하면 3조원 가량의 손실이 나올 것이란 추산이다. 관광업계 손실만 따져도 세월호 참사로 인한 소비감소보다 훨씬 더 큰 악영향이 예상된다.


전반적 경기침체 속에 부동산만 꿈틀

메르스 충격으로 인한 소비심리를 악화를 막기 위해 정부가 이자를 내리고 돈도 풀고, 규제를 풀었지만 정작 소비심리가 살아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금리인하로 부동산시장만 특수를 누릴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금리인하로 금융권에서 있던 돈들이 부동산으로 흘러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은행권 조사에 따르면 청약경쟁률은 올 상반기 평균 8.73대 1로 지난 상반기보다 2배 가량 높아졌는데, 분양가 상한제가 풀리고 이자까지 낮아졌으니 청약 수요는 지금보다 더 올라갈 것이 뻔하다. 특히 이자소득으로 살아가던 퇴직자들이 은행이자로는 더 이상 수익을 올릴 수가 없게 되면 자연스럽게 부동산시장을 기웃거릴 수 밖에 없어 부동산 수요는 지금보다 더 늘 것으로 예상된다.

▲ 외국인 관광객들로 항상 북적거리던 시내 중심가에 외국인 발길이 뚝 끝겨 한산하다. [사진=이동환 기자]


문제는 미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들이 하반기에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고한 점이다. 선진국들이 앞다퉈 금리를 올리면 우리나라 역시 금리를 따라 올릴 수 밖에 없는데, 이 경우 빚을 얻어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이미 자본시장에서는 이달들어 중국, 인도, 동남아등에서 선진국으로 빠져나간 자금이 93억달러(10조 4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이는 최근 15년만의 최고치로 향후 선진국의 금리인상이 단행되면 자금이탈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가 메르스로 인한 소비심리 악화를 막는데 주력하고 있지만, 주변 경제여건이 급변한다면 이같은 조치들은 자칫 부메랑이 되어 우리경제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1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며, 시중에 풀린 돈이 선순환되지 않고 부동산쪽으로만 흐를 경우 또다른 버블경제 현상을 일으킬지 모른다. 과거 부동산거품이 우리경제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쳤으며 그것을 극복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음은 굳이 예를 들 필요가 없다.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것도 부동산 거품 때문인데, 우리라고 그같은 가시밭 길을 가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지 않고는 백약이 무효

경제는 심리싸움이라는 말이 있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지 1년도 안되어 또다시 메르스 공포에 휩싸여 있는 지금,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불안감 해소이다. 방문규 기획재정부 2차관은 지난 주말 청량리 전통시장을 방문해 “평소와 같은 정상적인 경제활동과 소비생활을 해달라”고 호소했지만 정부당국자의 호소만으로 얼어붙은 국민의 마음이 열릴 것으로 본다면 이는 지극히 순진한 발상이다. 세월호와 메르스 같은 일들이 결코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란 믿음, 그리고 설령 그런 일들이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대응을 잘 할 것이란 믿음이 없는 한, 이미 꽁꽁 닫혀버린 국민의 마음은 열리지 않을 것이며 소비심리 역시 살아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는 진짜 시험대에 올라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예비고사였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메르스는 본고사에 해당한다. 이미 시험시간은 상당부분 흘러갔다. 1, 2 고시를 망쳤다면, 남은 3, 4 고시 만이라도 제대로 잘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이진설 경제전문기자 <
water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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