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국민차의 배신’ 폴크스바겐 사기극 일파만파

정승원 기자 입력 : 2015.09.23 10:54 ㅣ 수정 : 2015.09.2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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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78년간 독일의 대표적 ‘국민차’ 이미지를 쌓아온 폴크스바겐이 창사이래 최대 위기에 빠졌다. 미국에서 환경기준을 맞추기 위해 배기가스 배출 소프트웨어를 조작한 사실이 적발됐기 때문이다. 마틴 빈터코른 폴크스바겐 회장은 뒤늦게 공개 사과에 나섰지만,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형사소추를 위한 조사에 착수했고, 독일정부도 별도 조사에 나섰다. 사기극이 밝혀진후 폴크스바겐의 시가총액은 이틀만에 33조원이 날아갔고, 과징금과 보상금, 리콜 등으로 향후 수십조원을 더 물어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도요타와 함께 세계 자동차 판매 1위 기업을 다투던 폴크스바겐은 ‘사기기업’이란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됐다.


소프트웨어 조작으로 美환경기준 통과사실 적발-민간단체 2년간 추적

폴크스바겐은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줄이는 EGR(Exhaust Gas Recirculation·배기가스재순환) 장치에 별도의 소프트웨어를 깔아 배기가스양을 조작, 미국의 환경기준을 통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동차 승인 검사 때 엔진과 바퀴만 구동할 때에는 EGR이 정상 작동하다가 조향장치(핸들)까지 움직이는 실외환경에서는 EGR 장치가 자동으로 꺼지도록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폴크스바겐의 사기극을 적발한후 48만2000여대의 디젤 차량에 대한 리콜 명령을 내렸다. EPA는 향후 최대 180억달러(약 21조2400억원)의 벌금을 부과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EGR이 꺼진 후 배기가스 영향을 조사했더니 각종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대기오염물질인 질소산화물(Nox) 농도가 미국 환경기준보다 많게는 40배를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 폴크스바겐 디젤차의 사기극을 추적해온 비영리 단체 ICCT의 로고


이번 폴크스바겐의 사기극은 민간환경단체의 2년여에 걸친 끈질긴 추적 끝에 공개된 것이다. 비영리 환경단체인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는 ‘최근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는 유럽 디젤차가 정말로 환경에 무해한가’라는 의문을 갖고 조사를 착수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실제 주행 후 배출가스를 측정한 결과, 폴크스바겐 차량이 도로 주행에서 기준치보다 40배 많은 오염물질을 뿜어낸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관련사실을 검찰에 고소했다.

미국 연방정부는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폴크스바겐은 줄곧 혐의를 부인해오다 미국 연방정부가 ‘미국내 폴크스바겐 자동차 판매금지’ 카드를 거론하자 지난달에야 조작사실을 시인하고 마틴 빈터코른 회장이 직접 나서 공개사과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빈터코른 CEO “한없이 죄송” 사과에도 사태파문 일파만파

▲ 사퇴위기에 놓인 마틴 빈터코른 폴크스바겐그룹 CEO


배출가스 조작 파문에 대해 마틴 빈터코른 폴크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는 "한없이 죄송하다"며 재차 사과에 나섰다. 빈터코른 CEO는 22일(현지시간) 발표한 영상 메시지에서 "(폴크스바겐의) 브랜드와 기술, 차량을 신뢰하는 전 세계의 수백만 명에게 신뢰를 저버린데 대해 끝없이 죄송하다"고 밝혔다. 그는 "고객과 당국, 모든 사람에게 잘못된 일에 대해 모든 방법으로 사과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CEO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파문이 번지고 있다. 제품의 결함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조작을 통해 의도적으로 미국 정부와 소비자, 나아가 전세계 소비자들을 속이려했기 때문이다. 미국 법무부가 형사소추를 위한 조사에 착수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앙헬 메르헬 독일총리도 별도 조사를 촉구했다. 폴크스바겐의 속임수로 독일차에 대한 전반적 신뢰하락이 예상되는 가운데 같은 독일차인 메르세데스 벤츠의 지주사인 다임러와 BMW도 사태의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유럽 주식시장에서 폴크스바겐 주가는 연이틀 폭락했다. 폴크스바겐 주가는 21일 18.60% 폭락한 데 이어 22일에도 19.82% 내린 106유로에 마감했다. 폴크스바겐은 이번 사건으로 이틀 간 주가가 35% 떨어지면서 시가총액이 250억 유로(약 33조1200억원)나 증발했다. 다른 독일 자동차 업체인 BMW와 다임러는 22일 각각 6.22%, 7.16% 떨어졌으며 프랑스 자동차 업체인 푸조와 르노도 각각 8.79%, 7.12% 하락했다.

폴크스바겐의 피해는 단순히 주가하락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폴크스바겐은 전 세계적으로 약 1100만 대의 디젤 차량이 '눈속임' 차단장치 소프트웨어를 통해 배출가스 테스트를 조작적으로 통과했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조사 결과에 맞추어 소요될 비용을 고려해 3분기 기준으로 65억 유로(약 8조6108억원)를 유보해 두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폴크스바겐에 대해 리콜 명령과 함께 향후 최대 180억달러(약 21조2400억원)의 벌금을 폴크스바겐측에 부과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는 도요타자동차가 2009년 8월 미국에서 불거진 리콜 사태로 인해 1000만 대가 넘는 차량을 리콜 또는 수리 조치하고 40억 달러(약 4조8000억원) 의 벌금을 냈던 것에 비해 4배이상 되는 금액이다. 폴크스바겐은 또 잇따를 리콜과 소비자들의 각종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 향후 물어야할 돈이 수십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30년만에 재연된 폴크스바겐의 재앙?-86년에도 미국에서 퇴출위기 겪어

폴크스바겐과 미국의 악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6년 미국 CBS방송사의 시사프로그램인 ‘60분(60 Minutes)’에서 폴크스바겐의 자회사인 아우디 승용차의 주행 성능과 안전에 의문을 제기하자 이미지 추락과 소비자 외면을 겪으며 폴크스바겐은 한때 미국 시장에서 퇴출 위기까지 몰렸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폴크스바겐은 도요타에 이어 전세계 2위(올해 판매량은 세계1위) 자동차그룹임에도 미국내 점유율은 2014년 기준 3.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1위인 GM(17.8%)이나 2위 포드(14.9%)의 5분의1에 불과하며, 현대·기아차(7.9%)에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없는 수준이다.

폴크스바겐은 세계 최대자동차 시장인 미국의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그동안 디젤차를 앞세워 공략해왔고, 높은 연비와 친환경을 집중 홍보하면서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이번 ‘사기극’으로 폴크스바겐의 미국시장 공략은 물거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그룹 내 다른 브랜드 차량으로도 불똥이 튀지 않을까 폴크스바겐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폴크스바겐 그룹은 폴크스바겐 외에 아우디, 람보르기니, 벤틀리, 포르셰 등 12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폴크스바겐은 경영상 치명타를 피하기 힘들게 됐다. 일각에서는 빈터코른 CEO의 퇴진까지 거론되고 있다. 독일 슈피겔은 오는 25일 빈터코른 CEO가 사퇴하고 후임에 마티아스 뮐러 포르셰 스포츠카 사업부문 대표가 임명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25일 빈터코른 CEO의 운명을 결정할 이사회가 소집될 것"이라고 보도하며 그의 사퇴가능성을 점쳤다.

빈터코른 CEO는 올해 초 페르디난트 피에히 이사회 회장과의 권력 경쟁에서 승리했고 이달 초 폴크스바겐으로부터 2018년까지 CEO 임기 보장 약속을 받은 상태다. 빈터코른 CEO는 올해 폴크스바겐을 세계 자동차 판매 1위 자리에 올려놓은 공로를 인정 받고 있다. 폴크스바겐의 폴크스바겐, 아우디, 포르셰,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 12개 브랜드는 상반기 504만대가 팔려 도요타를 제치고 4년만에 1위 자리에 올랐다.


국내 수입차시장 판도에도 큰 영향 미칠 듯 - 독일차 이미지 추락

폴크스바겐의 ‘사기극’은 국내 수입차 시장에도 큰 파장을 몰고올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미국에서 리콜 명령을 받은 폴크스바겐 차들 중 국내에서 유로6 환경인증을 받은 골프 제타 비틀, 같은 그룹인 아우디의 A3를 대상으로 곧 정밀 검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성명을 통해 “폴크스바겐의 불법행위가 입증되면 집단 소송도 불사하겠다”며 “정부는 한ㆍEU 자유무역협정(FTA)을 의식해 소극적 조사를 하면 안 된다”고 촉구했다.

▲ 신뢰를 컨셉으로 홍보해온 폴크스바겐 골프차 광고


폴크스바겐이 소프트웨어를 조작한 차량과 동일한 차종은 2009년부터 현재까지 국내에 6만745대가 판매됐다. 차종별로는 폴크스바겐 골프가 2만6518대, 파사트 1만7919대, 제타 1만393대, 비틀 2841대, 아우디의 A3 3074대다.

폴크스바겐의 디젤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이 국내에서도 확인되면 정부는 리콜과 판매중지 명령을 내릴 방침이다.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최대 40억원의 과징금도 부과할 수 있다. 이 경우 국내에서 골프, 티구안, 파사트 등을 판매하며 10위권에 들어있는 폴크스바겐코리아의 신뢰도는 치명상을 입을 수 밖에 없다. 높은 연비와 세련된 디자인으로 해마다 놀라운 성장률을 보여온 폴크스바겐 자동차가 1937년 창사이래 78년만에 최대위기에 놓여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폴크스바겐의 파문이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 같은 다른 독일 자동차 판매에도 어느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독일차=신뢰’라는 공식이 깨졌기 때문에 다른 독일차 판매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추측이다.

<이진설>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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