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국민차’에서 ‘공공의 적’이 된 폴크스바겐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폴크스바겐(Volkswagen)은 독일말로 ‘국민차’를 뜻한다. 폴크스바겐의 탄생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 아돌프 히틀러가 깊숙이 개입돼 있다. 히틀러는 모든 독일국민들이 값싸게 탈 수 있는 대중차를 원했고, 체코계 독일인 엔지니어 페르디난트 포르쉐박사가 히틀러의 지시를 받들어 만든 차가 바로 폴크스바겐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휘말리면서 폴크스바겐은 존폐의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단일차종으론 세계최다판매 기록을 갖고 있는 이른바 ‘비틀’(딱정벌레)시리즈 신화를 통해 세계 1위(2015년 상반기 기준) 자동차판매 그룹으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이번 사기극을 계기로 졸지에 ‘공공의적’(public enemy)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 사기극 책임지고 CEO 전격사퇴-수백 조원대 벌금과 소송에 휘말릴 듯
폴크스바겐은 23일(현시시간) 마틴 빈터코른 최고경영자(CEO)의 사퇴를 공식화했다. 형식은 자신사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기극에 따른 문책성 사퇴에 가깝다. 빈터코른 CEO는 이날 성명을 내고 "폴크스바겐은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면서 자신의 사임이 이를 위한 것임을 밝혔다.
그는 올해 초 창업주의 손자인 페르디난트 피에히 이사회 회장과의 권력 경쟁에서 승리했고 이달 초 폴크스바겐으로부터 2018년까지 CEO 임기 보장 약속을 받은 상태였다. 사기극이 공개된이후 5일사이 이례적으로 2차례에 걸쳐 사과성명을 내고 사태수습에 안간힘을 썼던 그였지만 결국 창사이래 최악의 위기를 자초한 책임론을 막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1981년 엔지니어로 입사해 CEO 자리까지 오른 빈터코른은 올해 폴크스바겐을 세계 자동차 판매량 1위 자리에 올려놓은 인물이다. 그는 그룹내 폴크스바겐, 아우디, 포르셰,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 12개 브랜드를 상반기 504만대나 팔아 도요타를 2만대 차이로 제치고 4년만에 1위 자리를 탈환한 공로 덕분에 회사내 신망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미국 수출차량의 디젤엔진 배출가스 저감장치 사기극이 밝혀지면서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사기극에 대한 책임으로 과징금과 벌금, 손해배상액이 적게는 수십 조원에서 많게는 수백 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사퇴압력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미국 환경보호청은 폴크스바겐에 대해 리콜 명령과 함께 향후 최대 180억달러(약 21조2400억원)의 벌금을 부과할 방침임을 밝혔다. 리콜명령을 받은 자동차(48만2000대) 1대당 3만7500달러의 벌금을 물리는 셈이다. 이는 지난해 폴크스바겐그룹이 거둔 전체 세후순익 111억유로(약 14조6500억원)를 크게 웃도는 규모다.
소비자들의 집단소송도 줄을 잇고 있다. 23일 현재 미국과 캐나다에서만 폴크스바겐을 상대로 37건의 집단소송이 제기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집단소송을 대리한 캐나다의 한 로펌은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물어내라는 소송을 내기도 했다. 징벌적 배상제도가 있는 미국에서 집단소송에 휘말릴 경우 자칫 천문학적인 손해배상금이 나올 수도 있다. 일각에선 벌금과 소송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경우 폴크스바겐은 향후 수년간 이익의 전부를 쏟아 부어도 모자랄 것이란 경고도 나오고 있다.
■ 폴크스바겐의 성장동력인 디젤엔진 치명타 초래할까 촉각

대규모 소송이 예고된 가운데 미국과 독일에 이어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폴크스바겐 자동차를 비롯한 디젤엔진차 전반에 대한 조사에 착수키로 한 것도 폴크스바겐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폴크스바겐이 지난해 생산한 자동차 가운데 디젤차량은 25.6%로 4대중 1대꼴이다. 디젤차 비중이 48.7%에 달하는 르노자동차 보다는 낮지만, 디젤차를 향후 주력차종으로 밀기위해 엔진개발 등에 이미 수십억달러를 투입해온 폴크스바겐 입장에서 디젤차 규제강화는 성장동력의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른 유럽자동차 메이커들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디젤차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며 각국 정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폴크스바겐 사태 때문에 디젤 차량에 대한 규제 강화와 비용 증가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지난해 전세계서 팔린 디젤차량 4대중 3대는 유럽에서 팔렸을 정도로 디젤차량의 유럽시장 의존도는 높다.
실제로 프랑스 파리는 대기오염이 심각해지자 오는 2020년까지 디젤 차량의 운행을 금지하는 것을 검토 중이며 영국 런던도 시내에 진입하는 디젤차의 통행료를 10파운드에서 2배인 20파운드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무엇보다 ‘디젤엔진=청정엔진’이라는 그동안의 폴크스바겐 홍보문구가 이번 사태로 거짓임이 밝혀진 것이 더 큰 문제다. 그동안 유럽 정부들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휘발유 차랑에 비해 연료 소비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디젤차량을 권장하면서 세금 감면과 주차비 할인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해왔지만 폴크스바겐의 사기극으로 기존정책을 전면수정해야 할 판이다.
벌써부터 유럽내 각국 정부가 신규 디젤 차량의 판매 허가와 차량 시험을 더 까다롭게 그리고 비싸게 할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이것이 현실화할 경우 폴크스바겐은 물론이고 디젤엔진 개발에 수백조원을 투입해온 유럽자동차 메이커 대부분이 심각한 경영위기에 놓이게 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한국정부도 문제 자동차에 대한 정밀검사 채비 - 올해 6400대 팔려
우리정부도 10월초에 국립환경과학원 산하 교통환경연구소에서 폴크스바겐 디젤차 4종에 대해 정밀검사를 할 방침이다. 검사 대상은 이번에 미국에서 문제가 된 폴크스바겐 골프와 제타, 비틀, 아우디 A3 등 4종이다. 결과에 따라 폴크스바겐코리아에 대해서는 리콜 명령, 인증 취소, 과징금 부과 등의 제재가 내려질 가능성이 있다.
폴크스바겐그룹은 문제가 터진후 빈터코른 CEO가 디젤차량의 미국시장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는데, 한국시장에서는 어떤 조치를 내놓을지 미지수다. 미국내 리콜 차량은 모두 유로6 환경기준에 맞춰 제작된 차량이며 국내에서는 골프, 제타, A3등 3개 차종이 판매되고 있다. 해당차량의 판매량은 지난달까지 골프 789대, 제타 2524대, A3 3074대 등 모두 6387대가 판매됐다.

환경부는 폴크스바겐의 디젤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이 국내에서도 확인되면 리콜 및 판매중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최대 40억원의 과징금도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폴크스바겐=신뢰’라는 이미지를 꾸준히 홍보해온 상황에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집단소송이나 불매운동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는 조속하고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기업윤리를 저버린 소비자 기만 사기 행위"라며 "신차뿐만 아니라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차량에 대해서도 즉각 조사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경실련은 "폴크스바겐은 국내에서도 조작 행위가 밝혀지면 국내 소비자에게 사과하고 정부 조사·제재와 상관없이 자체적으로 리콜을 해야 한다"며 "아니면 피해 소비자를 모집해 집단소송도 불사하겠다"고 강조했다.
◆ 숫자로 보는 폴크스바겐그룹
① 13 = 전세계 시장점유율(2015년 상반기)
② 12 = 그룹내 자동차 브랜드 개수
③ 41,000 = 일 생산대수(주말 제외)
④ 10,100,000 = 2014년 전세계 판매대수
⑤ 2,020억유로 = 2014년 매출총액
⑥ 111억유로 = 2014년 세후순익
⑦ 119 = 전세계 공장수
⑧ 592,586 = 전세계 종업원 수
⑨ 51 = 폴크스바겐에 대한 포르쉐 오토모빌 홀딩스 지분율
⑩ 21,529,464 = 비틀시리즈 총 판매대수(단일차종 기네스기록)
<이진설>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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