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제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불리는 AI(인공지능)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기판 시장에서 ‘FC-BGA(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가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FC-BGA는 반도체칩과 메인기판을 플립칩 범프로 연결하는 고집적 패키지 기판이다. ‘FC’는 기판과 반도체를 연결하는 방식이고 ‘BGA’는 원형 범프로 반도체와 기판을 고정한다. 이에 따라 FC-BGA는 기존 반도체보다 기판 크기가 훨씬 큰 고성능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주로 쓰인다.
반도체 유망 분야에 ‘HBM(고(高)대역폭메모리)’가 있다면 기판에는 FC-BGA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는 FC-BGA가 대표적인 AI 수혜주라는 얘기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자부품 전문업체 LG이노텍이 지난 1995년부터 갈고닦은 반도체 기판 기술력을 기반으로 차세대 FC-BGA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 업체는 오는 2030년까지 FC-BGA를 조(兆)단위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사업 청사진을 마련했다.
이처럼 야심찬 사업 계획 출발점이 될 FC-BGA 생산 허브인 경북 구미 '드림 팩토리(Dream Factory)’가 지난 17일 언론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LG이노텍은 2022년 고부가 반도체 기판 FC-BGA 사업에 새롭게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 업체는 AI·딥러닝·로봇·디지털 트윈 등 최신 IT(정보기술) 노하우를 접목한 스마트 팩토리인 드림 팩토리를 설립했다.
LG전자로부터 구미4공장을 인수해 설립한 드림 팩토리 규모는 총 2만6000㎡(약 7865평)로 축구장 크기 3배에 달한다.
드림 팩토리는 ‘자율형 공장’을 목표로 자동화·정보화·지능화 기능을 갖춰 △Man(작업자) △F-cost(실패비용) △BM Loss(사후보전 손실) △안전사고(Accident) 등 생산 경쟁력을 저해하는 4개 요소를 없앤 '노 포(No Four)’ 전략을 활용했다. 이에 따라 이 공장은 모든 작업 공정에 사람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100% 로봇을 활용한 물류 자동화로 제품 품질을 높였다.
최근 대다수 제조업이 생산 공정을 디지털화하면서 스마트팩토리 도입이 빨라지고 있으며 전자부품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이에 대해 LG이노텍은 드림 팩토리가 업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스마트 FC-BGA 생산 인프라'라고 강조한다.
LG이노텍 '드림 팩토리'의 라인 모니터링 시스템(LMS) [사진 = LG이노텍]
■ ‘고(高)품질은 LG이노텍 자존심’…자동화·정보화·지능화로 생산능력 확대 비용 절반으로 줄여
기자가 방문한 드림 팩토리 생산현장은 두 겹의 장갑·마스크·위생모·방진복·방진화 등을 착용하고 에어샤워를 활용한 이물질 관리 시스템 ‘클린룸’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다. 눈썹이나 머리카락, 심지어 침 등 작은 이물질이 생산공정에 노출되면 품질 불량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LG이노텍이 자랑하는 드림 팩토리 핵심 공정은 △라인 모니터링 시스템(LMS) △자동로봇(AMR, Autonomous Mobile Robot) △자동광학검사(AOI, Automatic Optical Inspection) 등이다.
LMS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을 기반으로 구축한 대형 리얼타임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일종의 관제실 역할을 한다. 이에 따라 LMS는 현재 공장에서 가동 중인 생산라인과 제품 이동, 재고 상황, 설비 이상유무, 제품 생산 실적 및 품질 현황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LG이노텍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사람이 각 공정을 돌아다니며 상태를 일일이 체크할 필요 없이 라인 매니저들이 LSM을 통해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제품 진행 상황을 모니터해 관리하는 노 포 전략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드림 팩토리가 지향하는 ‘자율형 공장’이 100% 반영된 공정이 바로 자율주행 물류로봇 ‘AMR’이다. 수십대의 AMR이 쉴 새 없이 드림 팩토리 내부를 오가며 입고·출고하고 중간 기착지에서 공정 설비까지 소재·자재를 운반한다.
예를 들어 실시간 데이터 수집·분석 및 장비 제어 시스템 'RTS(Real Time Schedule)'에 고객사가 요구하는 납기 기한에 따라 생산 오더가 내려지면 AMR이 원자재를 공정설비로 운반한다.
원자재에 찍힌 바코드를 공정설비가 자동 감지하면 제품 스펙에 맞는 공정 레시피(설정값)가 RMS(Recipe Management System)를 통해 자동으로 세팅된 후 제품 가공이 본격화한다. 공정이 끝난 제품을 일종의 물류창고 역할을 하는 스토커(Stocker)에 적재하는 일도 AMR가 담당한다.
LG이노텍 관계자는 “AMR 경로를 특별히 설정해 둔 것이 아니라 명령이 떨어지면 AMR이 상황에 따라 가장 빠른 길을 찾아가는 시스템을 갖춰 물류 이동 속도를 크게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라고 말했다.
LG이노텍 드림 팩토리의 자동 물류로봇 'AMR(Autonomous Mobile Robot)' [사진 = LG이노텍]
드림 팩토리는 물류 작업 외에 다양한 공정에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무인화 체제’가 갖춰져 있다.
패널에 붙어있는 보호 필름을 벗겨내는 ‘필름 디테치(Film Detach)’ 공정도 로봇을 투입해 미세 스크래치나 분진 등 이물 등으로 발생하는 불량요인을 예방한다.
제품의 양품(합격품)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인 AOI도 AI 딥러닝 비전 검사 시스템을 적용한 '논터치(Non-Touch)'식 공정이다.
생산이 끝난 FC-BGA 기판 제품을 로봇이 비전 스크리닝 검사대로 옮기면 FC-BGA 불량품 및 양품 데이터 수만 건을 학습한 AI가 제품 내 미세 불량영역을 불과 30초 안에 찾아낸다.
이러한 첨단 기술을 활용해 드림 팩토리는 FC-BGA 생산을 통해 하루 20만개가 넘는 파일인 100GB에 이르는 데이터를 생성·축적한다. 이를 지속적으로 학습한 AI 딥러닝 비전 검사 시스템은 불량 예측과 불량 발생에 따른 리드타임(주문부터 납품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게 LG 이노텍 측 설명이다.
LG이노텍 관계자는 “AI 비전검사를 통해 리드타임을 최대 90% 단축하고 샘플링 검사에 투입하는 인원도 90% 줄였다"라며 "또한 불량품만 자동 식별해 실패비용이 50% 이상 줄었다”라고 말했다.
AOI는 불량 예측 뿐만 아니라 고객사가 요구한 제품의 다양한 스펙이 제대로 구현됐는 지 여부를 자동 검사할 수 있도록 고도화되어 있다. 검사를 통해 얻은 데이터는 고객사에 즉시 전송되기 때문에 제품 품질에 대한 투명성이 보장되고 이는 신뢰 강화로 이어진다.
FC-BGA의 수율(합격품 비율) 개선의 관건은 아주 미세한 부분의 변수까지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양품 생산에 최적화된 설비를 비롯해 완벽한 값으로 설정한 공정 레시피, 생산 환경 등이 구비돼야 한다.
LG이노텍 드림 팩토리의 FC-BGA 공정 설비는 이같은 기본 조건이 최적으로 갖춰진 셈이다.
이와 함께 '‘1day 90%’라는 목표를 세우고 데이터 기반의 가상설계·가상검증·가상공정 및 측정 실험 데이터를 연결한 ‘디지털 트윈’은 실제 계측이 어려운 액체나 열, 공기 흐름 등을 최적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여기에는 막대한 초기 비용과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를 통해 램프업(Ramp-up, 양산 초기 수율 향상을 통한 생산능력 확대) 기간이 기존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효과를 거뒀다.
■ LG이노텍, 비교적 늦게 출발했지만 선진 '자동화 생산 인프라'로 극복…2030년 조 단위 매출 목표
LG이노텍은 FC-BGA 시장에서 후발주자에 속한다. FC-BGA는 현재 일본과 대만 기업 등이 7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LG이노텍은 지난 수십년간에 걸쳐 축적한 초미세회로, 고집적·고다층 기판 정합(여러 개 기판층을 정확하고 고르게 쌓음) 기술 등 고부가 반도체 기판 핵심 기술력은 어느 경쟁업체에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이 같은 노하우를 기반으로 LG이노텍은 지난해 12월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PC용 FC-BGA 양산을 시작하며 FC-BGA 시장에 단계별로 진입하고 있다.
문혁수 LG이노텍 대표이사 부사장은 지난 3월 서울 강서구 마곡에서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 가운데 2곳과 FC-BGA 양산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문혁수 부사장은 또 PC용 대비 난이도가 높은 서버용 제품에 대해서도 현재 인증 절차를 진행 중이며 올해 안에 인증이 끝날 수 있음을 내비쳤다.
LG이노텍은 2026년 서버용 FC-BGA 시장에 진출해 하이엔드(High-end)급 FC-BGA에서 시장점유율을 늘려 2030년까지 조 단위 사업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바로 드림 팩토리다. 이를 위해 LG이노텍은 올해 경북 구미시와 체결한 6000억원 규모 투자 비용의 일부는 FC-BGA 양산 라인 확대에 사용해 드림 팩토리 완성도를 높일 계획이다.
강민석 LG이노텍 기판소재사업부 부사장은 “FC-BGA 시장에 주력업체보다 시장에 뛰어든 시점이 늦기 때문에 성공하려면 LG이노텍만의 경쟁력이 필요하다"라며 "LG그룹의 모든 AI 기술 역량을 결집해 구축한 드림 팩토리가 기술 혁신과 차별화된 고객 가치를 제공해 세계 유력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