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원 기자 입력 : 2025.04.25 01:04 ㅣ 수정 : 2025.04.25 09:16
국가별로 양자회의 선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다자회의 중심의 WTO 등 국제기구 위상 위축 불가피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의 위상이 위축되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투데이=정승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자유무역주의에 기반한 국제무역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특히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 체제를 '미국의 이익을 해치는 장애물'로 규정하며, 관세를 정치적 무기로 전면에 내세우며 글로벌 시장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그 결과,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간 유지돼 온 다자주의 기반 국제기구의 위상은 심각하게 흔들리며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WTO에 대해 공개적으로 독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WTO의 분쟁조정 절차를 “느리고, 무력하며, 미국에 불리하다”고 평가절하하며, 미국이 더 이상 그 규칙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WTO 상소기구 판사 임명을 거부하는 전략을 통해 해당 기구를 사실상 무력화시켰다는 지적이다.
시카고대 윌리엄 코헨 국제정치학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WTO와 같은 다자주의 체제를 신뢰하지 않는다”며 “그의 세계관은 ‘힘 있는 나라가 룰을 만든다’는 현실주의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때부터 다자협상보다는 미국이 보다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수 있는 양자협상을 선호해왔다. 이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폐기하고 새롭게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를 추진한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 무역 파트너와의 FTA 체제에 대해서도 강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기존 합의가 “미국에 불리하게 설계됐다”며 자의적으로 재협상을 요구하거나, 전면 철폐를 경고했다. 특히 사실상 교역이 불가능한 살인적인 관세를 때리며 시작한 미중 무역전쟁은 전 세계 공급망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며 세계경제에 불확실성을 확대시켰다.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의 국제경제 전문가 수잔 해리스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은 협상이라기보다는 경제적 강압의 일종”이라며, “이는 미국의 신뢰도를 약화시키고, 결과적으로 국제기구에 대한 회원국들의 회의감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은 경제 정책인 동시에 정치 전략이란 해석도 나온다. 특히 미국 내 진보와 보수 간 정치적 분열이 심화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외부의 적을 상정함으로써 국민 내부의 결속을 통해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려는 속셈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반중정서에 편승한 중국에 대한 무역 제재, 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위협 등은 지지층에게 ‘강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네이셔스는 “국내 정치에서 불리할 때, 지도자는 종종 외부 갈등을 통해 국민의 단결을 시도한다”며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이러한 고전적 정치공학의 재현”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관세정책 이면에는 국제기구의 규범이나 원칙보다 미국 내 정치 지형의 변화가 더 중요한 고려 요소라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련의 무역정책은 WTO뿐 아니라 유엔, 국제통화기금(IMF) 등 여타 국제기구에 대한 신뢰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이 자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기구를 일방적으로 활용하거나 배제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기구를 통한 경제 체제에 익숙했던 전세계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WTO는 판결 기능이 마비되며, 무역 분쟁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의 마샬펀드 소속 국제 전문가 토마스 베커 박사는 “WTO의 약화는 단지 한 조직의 문제에 그치지 않으며 그것은 세계무역의 예측 가능성과 법치주의가 함께 흔들리는 신호탄”이라며 “미국이 빠진 다자체제는 동력을 잃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렇게 본다면, 트럼프의 관세전쟁은 단순한 경제 보호주의 정책이 아니다. 그 안에는 내부 갈등 봉합, 국제질서 재편 의도, 국내 정치적 유불리 계산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것이다. 그는 단기적인 경제적 불확실성이나 글로벌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은 다시 강해지고 있다”는 정치적 수사를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행보는 결국 다자주의 국제기구의 위상을 약화시키고, 협력보다는 대립의 외교 구조를 확산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이제 막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예측불가능한 그의 행보가 향후 4년간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지, 세계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