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트럼프 위협에도 중국시장 포기 못하는 엔비디아의 딜레마

정승원 기자 입력 : 2025.04.18 01:33 ㅣ 수정 : 2025.04.18 01:33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AI 반도체 칩 대중국 수출규제 명령 와중에 엔비디아 젠슨 황 CEO 전격 중국 방문해 "지속적 서비스" 확약, 중국시장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 노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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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젠슨 황 CEO(가운데)가 17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 중국관계자들의 환대를받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투데이=정승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중국 AI 칩 수출규제 명령이 떨어진 가운데 미국의 AI 반도체 선두 기업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돌연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고객들과의 협력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는 미국 정부가 엔비디아의 H20 AI 반도체 칩에 대해 수출 제한을 강화한 직후의 일이다. 젠슨 황의 전격적인 방중과 중국 측과의 고위급 면담은 단순한 고객 응대 차원을 넘어, 글로벌 기술패권의 중대한 전환점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해석되고 있다.

 

엔비디아는 AI 기술 진보의 중심에 선 기업이다. 이 회사의 고성능 GPU는 챗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모델(LLM)의 학습과 추론에 핵심 역할을 한다. 미국 정부는 2022년 바이든 행정부 시절부터 AI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규제해왔다. 이에 엔비디아는 규제를 피해 성능을 낮춘 H20 칩을 개발해 중국 시장에 공급해왔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 정부의 규제 강화는 이 H20 칩까지 수출 제한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미 정부는 H20 칩이 연산 성능은 다소 낮지만 고속 메모리와 칩 간 연결성이 뛰어나 슈퍼컴퓨터나 첨단 AI 개발에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칼을 빼든 것이다. 젠슨 황 CEO는 이 조치가 "엔비디아 사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며, 수출이 제한될 경우 1분기에만 55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 경고했다.

 

젠슨 황 CEO의 이번 중국 방문은 단순히 중국이라는 거대 고객 응대나 영업 활동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 및 국무원 부총리 허리펑을 포함한 고위 당국자와 회동했다. 이는 방문 일정이 엔비디아와 중국 정부 간의 사전 조율 하에 이루어졌다는 해석에 무게를 실어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젠슨 황의 방중은 엔비디아가 미 정부 규제에도 불구하고 중국 시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반영한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엔비디아의 전체 매출 중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13%(약 171억 달러)에 달하며, AI 칩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중국은 엔비디아에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시장이다. 동시에 젠슨 황 CEO의 방중은 중국 정부와 기업에 미국산 칩을 계속 공급하겠다는 일종의 ‘신뢰 회복 제스처’로도 풀이된다.

 

미국 조지타운대 안보 및 신흥기술센터의 그렉 앨런 연구원은 "엔비디아는 미국 정부의 대중국 전략에 있어 핵심 접점에 놓인 기업"이라며 "미국 정부는 자국 안보를 위해 기술 수출을 규제하지만, 동시에 자국 기업의 글로벌 수익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젠슨 황은 일종의 균형 외교를 시도하고 있다“며 ”워싱턴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베이징과의 사업을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첨단기술정책연구소의 샬럿 리 박사는 “중국의 AI 스타트업들은 여전히 엔비디아 칩에 높은 의존성을 보이고 있다”며 “중국이 자체 반도체 기업을 육성하고 있지만, 화웨이의 아센드 칩이 아직 H100이나 H20과 같은 미국 제품의 생태계나 개발 도구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엔비디아의 H20 칩 수출이 중단된다면, 가장 큰 수혜자는 중국 반도체 기업, 특히 화웨이가 될 것이란 해석도 내놓고 있다. 화웨이는 이미 자체 AI 칩인 아센드 시리즈를 통해 중국 내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그러나 화웨이 역시 미국의 기술 제재를 받고 있으며, 반도체 공급망에 있어 여전히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어 엔비디아 칩 수출 중지가 곧바로 화웨이의 반사이익으로 연결될 지는 미지수다.

 

중국 정부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를 통해 에너지 효율을 기준으로 데이터센터용 칩을 규제하고 있으며, 이는 H20 칩이 새로운 규정을 충족하지 못하도록 설계된 비공식 규제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FT는 “중국 규제 당국이 자국 IT 기업들에 H20 칩 구매를 암암리에 제한해 왔다”고 보도했으며, 이로 인해 화웨이 등 중국산 칩의 채택이 점차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젠슨 황의 베이징 방문은 단지 한 글로벌 기업의 CEO가 주요 시장 고객을 만난 사건이 아니다. 이는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전쟁, 특히 AI 반도체를 둘러싼 주도권 경쟁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층적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미국은 기술패권을 지키기 위해 규제를 확대하고 있고, 중국은 자국 기술의 자립을 위해 정책적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엔비디아는 규제와 수익, 기술과 정치 사이의 좁은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엔비디아의 전략적 선택이 앞으로 AI 산업의 국제 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그리고 이 선택이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내 AI 반도체 산업에 어떤 기회 또는 도전을 줄지도, 향후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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