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정부실패보다 더 뼈아픈 삼성의 실패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국민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정부의 엉성하고 허술한 대응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최고병원으로 알려진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확산의 진앙지였다는 것이 더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부야 원체 많은 정책실패로 사람들이 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삼성그룹에 속해있는 삼성서울병원은 얘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메르스 진원지가 된 삼성서울병원은 ‘관리의 삼성’ 이미지에 먹칠
삼성서울병원은 삼성생명공익재단(이사장 이재용)이 운영하는 국내 최대 병원이다. 의사와 간호사 3900명을 비롯해 8000명에 달하는 의료인력이 근무하는 곳이다. 외래환자와 입원환자만 각각 연간 190만명, 64만명에 달하는 매머드급 병원이다. 무엇보다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앞세운 병원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신뢰가 컸던 곳이다. 그런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확산의 진원지였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실망과 함께 또다른 공포를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관리의 삼성’이 실패했다면, 이것은 정말로 큰 문제가 아니냐는 인식이 빠르게 번진 것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정말로 삼성그룹이 삼성서울병원을 그동안 제대로 관리했는지 조차 의문이 들 정도로 삼성서울병원의 대응체계는 엉성하기 짝이 없다.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의 시작부터 확산까지의 전 과정에서 절반이상의 책임이 있는 핵심 진앙지로 지목됐다. 오죽하면 미국의 뉴욕 타임스가 17일(수) 서울발 기사로 "한국 최고의 병원으로 알려진 삼성서울병원이 35세 남성 환자를 폐렴으로 오진한 것이 한국의 메르스 사태를 가중시킨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 지적했을까. 실제 지금까지 확인된 확진환자 162명의 절반은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되었고 혼자서 78명을 감염시킨 ‘수퍼전파자’ 14번 환자는 3일간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안팎을 돌아다니며 병균을 확산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 하면 ‘관리’를 떠올릴 정도로 삼성그룹은 관리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나라 최고기업이다. 조직관리, 인사관리, 재무관리 등에서 보여준 톱니바퀴식 시스템 관리는 일부 대학 경영학과에서 연구사례로 꼽을 정도로 정평이 나있다. 이러한 치밀한 관리 노력 덕분에 삼성은 그동안 업계에서 ‘임원 사관학교’로 불려왔고, 실제로 많은 삼성출신들이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에 이르기까지 임원으로 스카웃되어 갔다. 이런 삼성이 왜 삼성서울병원 관리에는 실패했던 것일까.

바이오·헬스케어, 삼성의 미래전략사업과 밀접히 연관된 삼성서울병원
삼성그룹은 지난 2011년 삼성서울병원에 대해 대대적인 경영감사를 실시했다. 개원 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 당시 삼성그룹은 병원 경영과 신사업 육성에 상당한 문제점이 드러났다며, 윤순봉 전 삼성석유화학 사장을 삼성서울병원 지원총괄 사장 겸 의료사업 일류화 추진 단장으로 임명했다. 그룹 미래전략실 출신인 윤 사장은 '혁신전도사'로 불리며 경영혁신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아왔고, 이재용 부회장의 대표적 인맥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2011년 부임할 당시 비의료인이 삼성서울병원 사장에 올라서 화제가 됐는데, 그 이면에는 삼성의 미래사업 전략과 밀접히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윤 사장은 경제연구소에 있으면서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혁신을 이론으로 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삼성그룹 비서실 재무팀, 삼성 전략기획실 홍보팀장 등을 거쳐 삼성 석유화학 대표에 이어 삼성병원 사장이 됐고, 그동안 삼성의 신수종사업인 바이오와 헬스케어사업을 진두지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은 윤순봉사장 부임직후인 2012년 5대 신수종사업을 발표했다. 그 핵심은 바이오제약사업과 헬스케어사업인데, 삼성서울병원을 중심으로 두 핵심사업을 그룹 차원에서 집중 육성하겠다는 복안이었다. 실제로 윤 사장 부임이후 삼성서울병원은 바이오제약과 헬스케어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해 11월에는 개원 20주년을 맞아 디지털 헬스케어의 미래를 선도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메르스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지난달 15일 윤순봉사장이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초대 대표이사로 추대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5월30일자로 임기가 만료된 이건희 이사장의 후임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했고, 이사장을 보필할 중요한 자리에 윤 사장을 올린 것이다.
삼성, 이재용 이사장 책임론으로 번질까 촉각 곤두세워
이재용 부회장이 이사장을 맡게된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문화재단, 삼성복지재단, 호암재단과 함께 대표적인 삼성의 비영리재단 중 하나다. 저소득층 가정을 위한 보육사업과 삼성서울병원, 노인복지시설인 삼성노블카운티를 건립해 운영하고 있다. 1982년 사회복지법인 동방사회복지재단으로 설립돼 1991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삼성생명공익재단은 단순한 복지재단이 아니다.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이 관심을 쏟고있는 바이오와 헬스케어사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종의 ‘컨트롤타워’로 인식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인맥이면서도 그룹내 대표적 전략가로 알려진 윤 사장을 일찌감치 삼성서울병원 사장에 앉힌 것이나, 그를 다시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초대 대표로 만장일치로 추대한 것이 이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번 메르스 사태는 삼성의 기본전략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의 진원지로 지목된데다, 정치권을 비롯해 국민들까지 삼성서울병원의 책임론을 거론하며 비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은 17일 충북 오송시 보건의료행정타운 소재 국립보건연구원에서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삼성서울병원의 부실한 대응을 직접 질책하기도 했다.
삼성은 메르스 사태로 삼성서울병원의 지위가 흔들릴 경우 삼성그룹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꼽고 있는 바이오와 헬스케어사업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바이오와 헬스케어사업은 이재용 부회장이 각별히 관심을 쏟고 있는 사업이라서 이번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서 그룹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위기관리에 나서는 방안도 거론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17일 열린 수요 사장단회의에서 참석자들은 “병원에만 맡길 게 아니라 그룹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지원해야한다”며 “병원의 위기대응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삼성그룹이 초기의 어정쩡한 자세에서 벗어나 이처럼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자칫 이번 메르스 사태가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사업에 암초가 될 수 있는데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책임론으로 번질까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에 오른 것은 공식적으로 이 부회장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첫 직함이라는 상징성을 갖고있다.

대대적인 쇄신작업 예고한 삼성, 문제는 메르스 추가확산 여부가 관건
어찌됐든 일은 벌어졌고, 이제 삼성그룹이 본격적으로 수습에 나서야 할 때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확산이 진원지가 된 이면에는 수익과 효율을 우선으로 하는 삼성식 경영시스템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을 한다. 삼성그룹은 이 때문에 사태 수습이 끝나는 대로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쇄신작업에 착수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사람과 시스템, 위기대처 능력 등을 전반적으로 되돌아 보겠다는 복안이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최대한 이른 시일에 사태수습을 완벽하게 마친 다음 국민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하고 병원개선 방안과 새로운 비전 등을 함께 내놓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하지만 문제는 메르스 사태가 언제, 어떻게 끝이날 것인가이다. 지금처럼 메르스가 계속될 경우 삼성서울병원을 향한 정치권과 국민들의 비난은 그 강도가 더 세질 수 밖에 없다. 정치권이야 어차피 희생양을 찾을 수 밖에 없고, 현재로선 삼성서울병원이 구미에 딱맞는 먹잇감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망자수와 감염자수가 계속 늘어날 경우 삼성서울병원을 향한 비난의 화살은 자칫 삼성그룹 전체와 이재용 부회장에게까지 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제 처음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공식 직함을 물려받은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선 메르스 사태가 지도력의 첫 시험무대가 된 셈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룹경영권을 계승하려던 계획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두가지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두고볼 일이다.
<이진설>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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