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폭염이 불러올 나비효과 - 날씨의 경제학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2011년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쓴 재스민 혁명은 민주화에 대한 갈증 보다는 사실 기후변화가 촉발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재스민혁명이 민주화혁명이 아닌 식량부족 때문이었다고 진단했다. 재스민혁명이 일어나기 한 해전 세계는 엘리뇨 현상으로 인해 급격한 식량생산 감소를 겪었다. 식량가격이 폭등하자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진 이 지역 사람들이 더 이상 못견디고 길거리로 뛰쳐나오면서 혁명이 시작됐다. 알제리에서 시작한 재스민 혁명은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덮쳤다. 혁명의 여파로 리비아, 튀니지, 이집트, 시리아, 예멘 등 많은 국가의 독재정권이 연쇄적으로 무너졌다. 기후변화가 인류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온 좋은 예다.
■ 펄펄 끓는 한반도, 124년만에 찾아온 극대 가뭄 향후 20년 지속될 수도
우리나라가 연일 폭염에 신음하고 있다. 절기상 입추(8월8일)가 지났는데도 더위가 꺾일 줄 모른다. 입추인 지난 8일 서초구의 최고기온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37.1도까지 올라갔고 용산구는 36.2도를 기록하는 등 대부분 지역이 35도를 넘어섰다. 수은주가 치솟으면서 서울과 경기지방 곳곳에 올 들어 처음으로 폭염경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한반도는 실제로 해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기상청 일별자료에 따르면 1993년 서울의 8월중 평균기온은 23.2도로 나타났다. 2013년 8월 평균기온은 27.9도였다. 20년새 평균기온이 4.7도 상승한 셈이다. 10년 전인 2003년 8월 평균기온인 24.3도와 비교해도 3.6도 올랐다. 1993년과 2013년의 경우 날짜별로 평균기온이 최고 9.3도 차이 나기도 했다.
열대야(밤 최저기운이 25도 이상)의 경우 1973년부터 1993년까지 20년간 평균 6.6일이었던 것이 1994년부터 2014년 사이에는 평균 13.4일로 2배이상 증가했다. 폭염(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 일수 역시 같은 기간 평균 7.9일에서 11.5일로 46%(3.6일) 증가했다.

특히 올해의 경우 봄부터 시작된 극심한 가뭄으로 댐과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낼 정도가 됐다. 소양강댐 수위는 역대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계속되는 가뭄과 폭염은 식탁물가를 자극, 일부 채소류를 중심으로 2~3배이상 가격이 오른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변희룡교수는 “우리나라 역사상 제일 큰 가뭄 주기가 124년인데 이를 극대 가뭄기라고 하고, 그 다음 주기가 대 가뭄기인데 38년 주기가 있다”면서 “올해는 38년 주기에 딱 들어가 있고 124년마다 오는 극대 가뭄이 시작하는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극대 가뭄이 시작되면 그 기간은 20년간 지속될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 한반도 가뭄피해액 1조원 육박할 것으로 추산
그렇다면 가뭄의 피해는 얼마나 될까. 역대 최악의 가뭄으로 꼽히는 것은 1967~68년에 영호남 지역에서 발생한 가뭄이다. 영산강과 섬진강 유역, 낙동강 유역에 큰 피해를 입히며 가뭄 피해액만 약 1조3000억원에 달했던 것으로 집계됐다. 2000년대 들어서도 2001년과 2008~09년 겨울 가뭄, 2011년 제주·전남 가뭄이 이어졌으며, 2012년과 2014년에도 전국적으로 가뭄이 찾아왔다. 올해의 경우 작년부터 가뭄이 이어져왔다는 점에서 그 피해액이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더욱이 북한지역의 가뭄피해가 극심해 유엔에 긴급구호를 요청했고, 유엔에서는 대략 1억 1100만 달러(약 1300억원)의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 가뭄피해는 비단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은 1200년만의 최악의 가뭄이 이어지고 있으며, 아프리카도 만성적인 가뭄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적인 메가(mega) 가뭄의 전조라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메가 가뭄이란 가뭄이 적어도 11년 이상에서 수 십 년 까지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미국 지질연구소(USGS)는 역사적인 가뭄 기록과 최신 기후예측 모형을 이용해 기후변화가 지속될 경우 21세기에 미국 남서부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메가 가뭄이 일어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미국, 중남미와 동남 아시아, 호주, 인도, 아프리카, 남부 유럽까지 광범위하게 위험 지역에 포함시켰다. 가뭄은 태풍이나 해일등 다른 어떤 자연재해보다 그 피해가 더 크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 국립가뭄경감센터(NDMC)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재해 유형별 피해액 중 가뭄피해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손실이 홍수에 비해 2~3배 정도 크다는 분석이다.
■ 극심한 기상이변,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들어 자주 목격되는 기상이변도 걱정거리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들어 8월10일 현재까지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은 평년 수준(11.2개)보다 많은 14개에 달했다. 이미 5월까지 평년(2.3개)보다 3배 많은 7개가 발생했는데, 이는 1971년(9개) 이후 1~5월 발생 태풍수로는 가장 많다. 기상청은 앞서 “올 여름철에는 엘니뇨 등으로 태풍의 활동기간이 길어지면서 평년보다 강한 태풍이 많을 것”으로 예고했었다.
실제로 7월에는 제9호 태풍 ‘찬홈’의 뒤를 이어 10호 태풍 ‘린파’, 11호 태풍 ‘낭카’까지 태풍 3개가 한꺼번에 발생하는 기현상도 있었다. 물론 여러 개 태풍이 한꺼번에 발생하는 것은 처음은 아니지만, 올해처럼 한꺼번에 3개 태풍이 생긴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올들어 7월까지 매월 1~2개 태풍이 발생했는데, 매월 태풍이 발생한 것은 1965년 이후 50년 만이다. 그 피해도 커지고 있다. 13호 태풍 ‘사우델로르’는 타이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중국 본토에 상륙,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저장성 핑양현은 하루 600㎜가 넘는 비가 내려 기상관측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고, 9명이 숨지고 3명이 실종됐다. 앞서 타이완은 사우델로르로 인해 12명이 숨지고 5명이 실종된 것으로 집계됐다.

■ 18년만의 슈퍼 엘니뇨, 슈퍼태풍 등 잇딴 예고에 지구촌 공포
호주 기상청은 지난 7월 2010년 이후 5년만에 엘니뇨 현상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호주의 엘니뇨는 1997년 이후 18년만에 가장 강력한 슈퍼엘니뇨(super el nino)가 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 가운데 발생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20세기 최악의 자연재앙으로 기록된 1997~1998년 슈퍼엘니뇨 때는 전세계적으로 약 2만 2000명이 사망했고, 38조원의 피해를 입혔다. 이미 지구촌 곳곳의 가뭄으로 곡물시장엔 비상이 걸렸다. 농산물수입국인 한국도 그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상이변이 지속되면서 농산물가격 변동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국립호주은행(NAB)은 최근 세계 밀 생산량의 14%를 차지하는 호주가 엘니뇨 영향권에 들면서 호주의 밀 생산이 반토막 날 것으로 예측했다. 이미 국제 밀가격은 지난 6월에만 28% 급등했고 옥수수는 17% 올랐다. 한국은 옥수수와 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타격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기상이변이 단순히 농산물가격에만 영향을 주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소가 먹을 목초 공급이 줄면 유제품과 육류 생산도 타격을 입는다. 세계 최대 니켈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의 가뭄은 니켈가격 폭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기상이변이 전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연평균 200조원으로 불어난 자연재해 피해액, 한국의 대책은
세계은행(WB)에 따르면 각종 자연재해로 인한 연간 경제적 손실은 지난 30년간 4배로 증가했다. 2년전 세계은행이 세계 최대 재해 보험사인 독일의 '뮌헨재보험'(Munich Re)의 자료를 인용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대 연평균 500억달러였던 자연재해 피해 규모는 2003년이후 평균 2000억달러로 4배로 불었다.
이를 토대로 1980년부터 2014년까지 총 피해액을 계산해보면 4조달러(4700조원)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05년 8월 미국 남동부를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경우 피해규모는 14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저소득층의 피해가 집중되어 정신적, 경제적으로 피폐해진 이들 계층의 자살률이 크게 증가하기도 했다.
한국 역시 해마다 자연재해로 적게는 수 천억원 많게는 수 조원의 피해를 기록하고 있다. 2002년 8월 태풍 ‘루사’는 5조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남겼고, 2003년 태풍 ‘'매미’는 전국에서 130여 명의 인명 피해와 4조 7800억 원의 재산 피해를 안겼다. 그해 국내총생산(GDP)의 1%에 해당하는 손실이다. 올해 역시 슈퍼엘니뇨 현상과 함께 한반도에 강력한 ‘슈퍼태풍’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태풍을 일반적으로 5등급으로 나눌 때 4등급 이상을 슈퍼태풍이라고 하는데, 이는 초속 65미터 이상의 강풍과 하루 1000㎖ 이상의 폭우를 동반한다. 태풍의 강도를 결정하는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해수면 온도인데, 지구온난화 때문에 한반도 연안 온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슈퍼태풍 발생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기상이변에 따른 자연재해는 아직 우리에게 먼 나라, 먼 미래의 얘기일까. 온도 변화에 둔감해 결국 화를 맞게 되는 ‘삶아진 개구리 증후군’이 우리의 미래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진설>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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