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사면초가에 빠진 ‘태권브이와 무대리’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저축은행과 대부업계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정부와 정치권이 최근의 금리인하 추세에 맞춰 최고금리를 또다시 인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중요한 밥줄이었던 TV(케이블)광고마저 강력하게 규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고금리 인하는 영업이익과 직결되는 문제이고, TV광고 규제는 영업방식과 직결되어 업계 전체에 후폭풍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저축은행은 지난해 5000억원 이상의 흑자를 기록했다. 2008년이후 7년만의 일이다. 하지만 이같은 규제가 현실화하면 좋은 시절을 계속 구가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거세지는 법정최고금리 인하 움직임
현재 국회에는 대부업 금리 상한(법정 최고금리)을 현행 연 34.9%에서 29.9%로 5%포인트 인하하는 법률개정안이 올라가 있다. 새누리당과 금융당국은 대부업체와 여신금융기관의 이자율 상한인 34.9%를 29.9%로 낮추는 신동우 의원 대표발의의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추진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한술 더떠 이자율 상한을 25%로 낮추는 전순옥 의원안과 대부업체의 경우 25%, 다른 여신금융기관은 20%로 차등해서 낮추는 김기식 의원안 등을 발의해 놓고 있다. 29.9%냐 25%냐를 놓고 여야가 의견대립을 하고 있지만, 어찌됐든 상한금리가 낮아지는 것은 피할 수 없게될 전망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 대부업과 저축은행의 상한금리를 낮추려는 명분은 서민에게 금리혜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잇딴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대부업은 그동안 연 34.9%의 상한금리를 고수해왔다. 저축은행은 상한금리가 연 29.9%로 대부업에 비해 5%포인트 낮지만, 거의 대부분 고객에게 최고금리 수준을 적용, 무늬만 저축은행이란 비판을 받았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수준(1.5%)까지 낮췄으니 조달금리가 낮아질 것이고, 그동안 고금리로 벌어들인 돈도 많으니 상한금리를 낮춰도 무방하다는 것이 정부와 정치권의 공통된 인식이다. 실제로 정부 조사에 따르면 대형 대부업체 36개사의 평균 대출 원가는 최근 2년간 4.35%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부는 법정 최고금리가 낮아지면 연 30% 이상의 고금리 대출을 받고 있는 약 270만명의 대출자가 혜택을 입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의 이자 경감 규모는 대부업 3700억원, 저축은행 900억원, 캐피탈사 15억원 등 총 46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게 정부추산이다.
대부업 법정 최고금리는 2010년 이후 거듭 인하되고 있다. 2010년 연 49%에서 44%로 낮아졌고, 2011년엔 44%에서 39%로, 2013년엔 39%에서 34.9%로 인하됐다. 이번을 포함하면 5년간 4차례에 걸쳐 19.1%포인트가 내려가는 것이다.
■ TV광고에 대해서도 칼 빼들어
정부가 대부업과 저축은행의 TV광고에 대해서도 강력히 규제에 나서기로 한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저축은행중앙회는 오는 20일 이사회를 열고 저축은행 TV 방송 광고와 관련해 대부업법 취지에 맞춘 자율 규제안을 최종 승인할 예정이다. 자율규제안에 따르면 어린이·청소년이 시청할 수 있는 시간대에 해당하는 평일 오전 7~9시, 오후 1~10시와 주말·공휴일의 오전 7시~오후 10시에는 대출 판촉 광고가 전면금지된다.
또 휴대전화·인터넷 등의 이미지를 통해 대출의 신속성·편리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행위, 후크송(짧은 후렴구가 반복되는 노래)과 돈다발을 대출 실행의 표현으로 사용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그동안 TV만 틀면 쉴새없이 나왔던 태권브이와 무대리 주연(?)의 광고를 쉽게 볼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저축은행중앙회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TV광고 규제에 나선 것은 정부의 압박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앞서 대부업계의 TV 방송 광고를 제한하는 대부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개정 법의 취지에 맞게 저축은행업계에도 규제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중앙회는 자율규제안을 준비해 왔다. 규제안이 이번 이사회에서 승인되면 저축은행에 대한 방송 광고 규제는 9월 1일부터 시행된다.


▲ 무대리를 앞세운 러시앤캐시의 대출광고(위)와 JT친애저축은행의 원더풀론 대출광고
광고규제는 대부업과 저축은행에는 핵폭탄이나 다름없다. 국회 정무위 소속 이학영(새정치민주연합)의원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성인 500명이 참여한 '금융광고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가 가장 많이 접하는 금융광고는 대출 광고(45.6%)이고, 광고를 통해 실제 상담까지 이루어진 경우는 31.5%에 달했다. 대부업체와 저축은행들의 주된 영업루트가 광고이고, 그중에서도 TV광고는 이들 업계에선 ‘밥줄’로 통하고 있다. 이런 밥줄이 거의 끊기게 되었으니 업계로선 비상이 아닐 수 없다.
■ 광고폭탄이 불러온 자업자득, 감성광고가 더 큰 문제
정부가 대부업과 저축은행의 TV광고를 규제하게 된 데는 이들 업계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현재 대부업체의 광고는 케이블과 종합편성채널에서만 방송되고 있다. 그러나 횟수에 제한이 없다보니 무차별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이학영 의원실의 조사 결과 업계 1위인 A&P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는 2013년 1~10월중 12만2188회의 광고를 내보냈다. 하루 평균 402회의 광고가 TV를 통해 나간 것이다. 업계 2위인 산와대부(산와머니)의 광고는 하루 평균 72번 TV 전파를 탔다.
이학영의원은 “케이블TV 시청이 가능한 모든 국민이 광고에 노출돼 있고, 대부업 이용자들의 절반이 TV광고를 보고 대출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여기에 저축은행 광고까지 합하면 그 수는 어마어마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야말로 광고폭탄이고, 광고홍수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이 의원은 "대부업으로 인한 금융소비자들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문구 규제, 광고노출 횟수 및 빈도의 적정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 큰 문제는 대부업과 저축은행이 최근 감성광고를 집중적으로 내보내며 친밀도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만을 위한 대출이라든가, 국내 토종자본이라는 점을 내세워 소비자들의 감성에 호소하고 있다. 이같은 감성광고는 아직 경제관념이나 대부업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지 않은 청년층이나 제도권에서 대출이 어렵게 된 금융 약자들을 쉽게 현혹할 수 있다. 특히 따라하기 쉬운 후크송을 반복해서 내보내 순진한 아이들까지 고금리의 대부업이나 저축은행에 친밀도를 느끼게 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부업의 경우 광고비 지출이 당기순이익의 25% 수준까지 치솟은 것도 우려할 대목이다. 고객유치를 위해 무차별적으로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는 얘기다, 국회 정무위 김기식(새정치민주연합)의원이 금융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방송광고를 집행하는 대부업체는 전체 8800개 업체 중 9개에 불과했다. 이들 9개사의 광고 선전비는 924억에 달하며 평균적으로 당기순이익의 25%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3년간 9개 업체의 광고비는 2012년 347억, 2013년 704억, 2014년 924억으로 약 577억원이 늘어났다. 당기순이익 대비 비중 역시 2012년 13.0%, 2013년 20.1%, 2014년 24.7%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일반적으로 금융회사의 당기순이익 대비 광고선전비가 10% 미만(2014년 기준 하나은행 7.7%, 삼성생명 0.9%, 신한카드 3.0% 등) 수준임을 고려하면 대부업체가 얼마나 광고에 집착하는 지를 알 수 있다.
특히 러시앤캐시의 경우 광고 선전비 지출 규모는 2014년 전체 업체 광고 선전비 약 923억 원 중 255억 원(38.4%)을, 2013년 전체 광고 선전비 706억 원 중 380억 원(54.1%)을 차지했다.
■ 샌드위치 신세가 된 저축은행, 대부업과 차별화 나서야
제도권 금융의 최상단에 은행이 자리하고 있다면 그 다음으로 캐피탈 등 여신전문업체와 저축은행이 있고, 그 아래에 대부업체가 위치해 있다. 등록하지 않은 대부업체는 불법 사금융영역으로 분류된다. 저축은행의 신용대출 평균금리가 26%임을 감안하면 저축은행이 대부업과 별 차이가 없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무분별한 고금리 대출을 해오다 대부업계와 한데 묶여 광고 규제를 받는 등 어려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신용등급 1~4등급은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60%, 5~6등급은 28%, 7등급이하인 저신용자는 12%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상위신용등급은 은행 등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 가능하고, 중신용등급이 주로 저축은행을 이용하는 계층이다. 하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저축은행은 거의 대부분 법정 최고금리 수준의 대출금리를 적용하고 있어 원성이 자자하다. 지역특성에 맞는 상품개발이나, 계층별로 세분화된 전략상품이 빈곤해 은행권과 대부업체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있다.
특히 시중은행과 P2P 대출업체들은 최근 중금리대출 상품을 잇달아 내놓아 저축은행을 위협하고 있다. 하루빨리 차별화에 나서지 않으면 저축은행은 설 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
<이진설>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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