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가미카제식 쩐의 전쟁 2탄, 이번엔 ‘환율’ 이다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일본의 전격적인 마이너스 기준금리 도입으로 한중일3국간에 또 다시 ‘쩐의 전쟁’ 전운이 감돌고 있다. 지난해 6월에 터진 1차 ‘쩐의 전쟁’이 3국간 ‘돈 풀기’ 싸움이었다면 이번 2차 전쟁은 환율싸움으로 요약된다. 장기불황 탈출에 사활을 건 중국과 일본이 사실상 극약처방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강대국간 글로벌 통화 격랑에 낀 한국은 운신의 폭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 사상 첫 마이너스 금리정책 카드를 내건 일본
지난달 29일 오후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BOJ) 총재가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발표하자 세계경제는 경악했다. 구로다 총재 스스로 그동안 마이너스 금리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혀왔기 때문에 허를 찔린 것이다. 구로다 총재는 금융정책결정회의를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필요하다면 추가적인 부양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 마이너스 금리폭을 더 내리겠다는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일본증시는 1일 오전 250포인트 이상 폭등하고 있다. 장이 열리기 무섭게 니케이225 지수는 큰 폭으로 뛰어 오전 9시 40분 현재 전거래일 대비 262.22포인트(1.5%) 오른 1만7780.52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앞서 뉴욕 다수지수도 396.66포인트(2.47%) 오른 1만6466.30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엔ㆍ달러 환율은 지난달 29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1.89% 하락한 121.05엔에 마감했다. 장중에는 1달러에 121.7엔까지 떨어지며 최근 한 달반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1일에도 달러당 121.28엔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외환전문가들은 엔ㆍ달러환율이 3월중으로 125엔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빗대 일부 전문가들은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전쟁 막바지에 썼던 ‘가미카제’ 공격을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미국 CNBC에 출연한 린지그룹의 피타 부크바 수석연구원은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경제적 가미카제”에 비유했다.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공격에 나서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의미다.
일본 내부에서도 이번 마이너스 금리정책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이미 실질임금이 정체된 상황에서 효과가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마이너스 금리가 전체 은행 예금(300조엔)의 10% 가량에만 적용된다는 것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마이너스 금리 같은 극단적인 처방에도 불구하고 일본경제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역풍이 우려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 불붙은 환율전쟁
어찌됐든 이번 구로다 총재의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엔화가치를 떨어뜨려 환율전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금리를 낮추면 외국자본이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국가로 탈출할 수 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엔화를 팔고 달러로 갈아타기 때문이다.
더욱이 금리인하는 필연적으로 환율하락을 동반해 외국투자자들은 금리뿐 아니라 환율에서도 이중피해를 당하지 않으려고 서둘러 자금을 빼내려 할 것으로 보인다. 마이너스 금리 발표이후 일본엔화가 시장에서 급격하게 가치가 떨어진 것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일본 주요 기업들이 예측한 적정 엔화 가치는 1달러에 평균 118.7엔이다. 이 아래로 떨어지면 수출을 많이 하는 기업들은 이익이 증가한다. 도요타자동차는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1엔 떨어지면 영업이익이 400억엔가량 늘어나는 구조다. 지금보다 10엔이 더 떨어지면 무려 4000억엔을 추가로 벌어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 기업과 수출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 수출기업에는 악재일 수 밖에 없다.
이미 지난해부터 환율전쟁을 촉발한 중국은 최근 6개월간 위안화 가치를 6%나 절하했다. 올 들어서도 외국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시중에 막대한 유동성을 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환율하락을 유도하는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내놓았으니 중국정부로선 맞대응 카드를 만지작거릴 수 밖에 없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엔화 약세에 맞서 위안화를 추가로 절하할 경우, 환율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은 1일 달러당 위안화 환율을 1달러당 6.5539위안으로 고시했다. 이는 전 거래일의 고시환율인 6.5516위안에 비해 환율이 0.04% 오른 것이다. 환율 인상폭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일본 마이너스 금리 도입 이후 외환시장을 통한 중국의 첫 반응이 환율인상으로 나온 점은 향후 중국이 환율전쟁에서 밀리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어서 주목할 만하다. 한마디로 일본의 엔화 약세에 뒤지지 않고 중국도 위안화 약세 기조를 이어갈 수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시장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유럽도 추가적인 양적완화(시중에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는 것) 정책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유럽중앙은행(ECB)은 오는 3월 정례회의에서 추가적인 양적완화 가능성을 예고해 놓은 상태다. 미국 역시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동결을 결정했다. FOMC는 성명에서 “당분간 국제경제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뜻을 밝히며 인상속도 조절 가능성을 내비쳤다.
■ 극단적 선택에 운신의 폭 줄어든 한국의 선택은
수출에서 경쟁관계인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를 통해 환율가치 하락을 촉발하면서 한국의 선택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국정부로선 엔화와 위안화의 추가 절하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한국도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환율전쟁에서 밀릴 경우 가뜩이나 부진한 수출환경이 더 악화돼 올해 경제성장률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출이라는 변수 이외에 금리를 추가적으로 인하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다는 것이다. 당장 가계부채가 부담스럽다. 지금도 가계부채는 위험수준에 다다랐는데 여기서 금리를 더 내릴 경우 가계부채가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우리도 섣불리 금리인하 등으로 대응할 경우 오히려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금리인하 효과를 확신하기 어렵다는 것도 선뜻 대응에 나서지 못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금리인하는 가계소비와 기업투자를 촉진하는 등 자금의 유통으로 물가를 끌어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난 4차례 기준금리 인하에도 물가상승률은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고 경제성장률도 기대치를 밑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추가로 내리게 되면 기대했던 효과보다는 역효과가 더 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에선 위안화 평가절하에 힘입어 원ㆍ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있는 만큼 엔화대비 그간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원화환율에 숨통이 트이고 있는 등 긍정적 효과도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1일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11시 현재 전 거래일 대비 5.5원 오른 1204.60원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환율정책을 한 가지 목적만 갖고 움직일 수 없다”며 “환율은 시장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게 효율적이라는 생각이지만 미세조정은 앞으로도 계속 신경 쓸 계획”이라고 말해 당분간 외환시장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대응방안을 모색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진설>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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