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물가는 50년만에 사상최저라는데 ‘체감물가’ 는 왜?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전세가 미쳤고, 월세는 날았고, 담배, 소주, 식료품값 등이 줄줄이 오르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반응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와 실제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물가간의 괴리가 커지면서 소비자물가지수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
■ 소비자물가지수 통계집계이래 가장 낮은 0.7% 기록
12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연간 소비자물가는 전년보다 0.7% 오르는데 그쳤다. 이는 물가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65년 이후 5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지금까지는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9년의 0.8%가 최저치였다. 1%도 오르지 않은 물가 덕분에 일부에선 디플레이션(물가하락 속 경기침체)까지 걱정할 정도다. 실제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올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이 나올지 모른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물가가 역대 최저상승률을 기록한 것은 기록적인 경기 부진과 국제유가 및 곡물 가격 급락 때문이다. 국제유가는 2014년 3분기까지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으나 지난해 30달러까지 떨어져 3분의 1 토막이 났다. 석유류 가격하락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98% 포인트나 떨어뜨리는 효과를 냈다. 여기에 수출부진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으면서 경제성장률이 2.7%까지 하락해 물가하락을 부채질했다.
그나마 물가가 오른 것은 담뱃값 상승에 힘입은 것이다. 담배세를 대폭 올리면서 한 갑에 2500원 하던 담배가 4500원으로 오르면서 물가상승률을 0.58%포인트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됐다. 담뱃값 상승이 아니었다면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계산이다.

■ 서민들이 많이 접하는 생활물가와 큰 괴리
역대 최저 물가상승률이라는 정부의 공식발표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떨어졌다거나 적어도 오르지 않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미친 전세값 폭등에, 월세물량을 잡느라 한 해를 보낸 사람들 입장에선 사상 최저 물가상승률이라는 말에 오히려 분노가 치밀지도 모른다.
실제로 KB국민은행의 주택가격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지역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매매가 상승분의 2배 가까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매매값은 3192만원 올랐고, 전셋값은 거의 2배 수준인 5665만원 뛴 셈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작년 1월말 3억1864만원에서 12월말 3억7800만원으로 무려 17.8%가 올랐다. 전셋값은 관련 통계를 알 수 있는 2011년 이후, 매매가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이래로 가장 많이 올랐다.

일반 소비자들이 물가를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장바구니 물가 역시 정부의 공식 소비자물가와는 괴리가 크다. 지난해 채소와 과일, 생선 등 생필품과 관련된 장바구니 물가는 오히려 2.1%나 올랐다. 다른 조사를 봐도 비슷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전국 3312가구를 설문 조사한 결과 국민이 체감하는 식품 물가의 수준은 2014년을 100으로 봤을 때 지난해 112.2로 나타났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지난 1년간의 물가상승률이 11.2%에 달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작년말 대부분의 소주 출고값이 5%이상 오르면서 음식점 등에서 파는 소주값은 기존 3000~4000원에서 지금은 4000~5000원대로 껑충 뛰었다. 출고가는 고작 5%가 올랐는데 소비자들이 음식점에서 마시는 소주값은 25~33%가 뛴 것이다.
소주에 이어 두부와 달걀, 일부 음료가격이 오르는 등 식음료품가격이 줄줄이 오르는 가운데 잠잠하던 맥주도 인상이 거론되고 있다. 국내 두부시장 점유율 1위(49%)인 풀무원은 지난 8일부터 36개 두부 제품 가격을 평균 5.3%, 5개 달걀 제품 가격을 평균 3.9% 인상했다.
코카콜라음료 역시 지난해 12월 스프라이트 5개 품목의 공급가를 평균 7% 인상했다. 코카콜라가 선착으로 가격을 올리면서 동아오츠카(포카리스웨트) 등 다른 업체들도 음료제품의 인상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공식물가와 체감물가는 왜 이렇게 다를까
통계청이 조사, 집계하는 소비자물가는 총 481개 품목을 대상으로 한다. 물가품목은 도시소비자들이 많이 소비지출하는 품목으로 품목별 월평균 소비지출비중이 0.01% 이상 되는 품목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식생활과 관련되는 품목으로는 쌀, 쇠고기, 달걀, 배추 등이 들어가있다.
주거생활과 관련해선 전세와 월세가 포함돼있고, 의생활과 관련되는 품목으로는 신사복, 숙녀복, 각종 내의, 구두 등이 있다. 이 밖에 일상생활에서 소비지출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생수, 이동전화료, 피자, CD음반, 노트북 컴퓨터 등도 두루 물가품목에 들어가 있다.

하지만 개별가구가 소비하는 부분은 이 중 일부 품목만 해당하기 때문에 지표와 체감 간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가령 평소 소주를 즐기는 애주가들은 소주값 인상이 피부로 크게 와 닿겠지만, 소주를 아예 마시지 않는 사람의 경우 소주값 인상은 강 건너 불구경식이다. 거의 2배가량 가격이 뛴 담배도 마찬가지다. 애연가들은 매일 담배를 살 때마다 속이 쓰리겠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 입장에선 다른 나라 얘기일 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공식통계와 체감지수간에 큰 괴리를 느끼는 것은 481개 물가품목에 대해 기계적으로 평균을 내기 때문이다. 숫자의 함정에 빠져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령 지난해 10월 소비자물가지수에서는 기름값과 여행 관련 품목 물가는 떨어졌지만, 식재료와 대중교통비 등 소비자들이 매일같이 접하는 품목의 물가 상승폭이 높았다. 일부 품목에 가중치를 두고 있지만 가중치가 가장 높은 20개 품목 중 밥상물가는 돼지고기 하나뿐이라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 실제 체감지수 반영할 수 있는 새 물가지수 개발 필요
통계청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통계청은 지난해 10월 공식 물가통계와 체감지수간에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일자 유경준 통계청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자청, 해명에 나섰다. 유청장은 정부 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소비자물가가 2014년 12월부터 10월 현재까지 0%대 상승률을 기록한 데 반해 일반국민은 체감물가가 높다고 인식하고 있어 소비자 물가통계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문제점을 인정했다.
그는 그러면서 그 이유가 “소비자물가가 체감물가와 차이가 나는 원인은 크게 측정상 차이와 심리적 요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 물가가 ‘가상의 평균가구’를 기준으로 한데 반해 체감물가는 ‘실제 개별가구’여서 불가피하게 괴리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역별 차이도 이런 괴리를 부추기고 있다. 소비자물가는 37개 도시 평균물가를 반영하기 때문에 거주지역별 체감물가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서울의 물가가 1.3% 상승했음에도 강원·전남, 경북 등 농가가 많은 지역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경우 전도시 평균은 0.6%상승으로 계산된다는 해명이다. 높은 물가상승률을 체험한 서울 거주자들은 이런 통계가 잘못됐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통계청은 이처럼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와 동떨어진 소비자물가지수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기존에 구입빈도와 지출비중이 높은 142개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를 발표해왔다. 하지만 이마저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일자 ‘체감물가시험추계'(임시물가지수)를 시험적으로 선보일 방침이다. 임시물가지수는 소비자물가지표 가운데 가격이 많이 오른 품목에 더 높은 가중치를 적용,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지수에 가장 근접한 통계를 만들어 내겠다는 구상이다.
<이진설>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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