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Pick] 'K-배터리', 중국 공습·전기차 캐즘 맞서 'ESS'로 돌파구
중국,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과반 차지
한국 배터리 3사 내리막...전기차 캐즘도 겹쳐
미·중 통상 전쟁에 ‘ESS용 배터리’ 시장 격전지로
미국 생산력 갖춘 ‘K-배터리’ 반사이익 기대감 커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중국업체 공습과 전기자동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국내 배터리 업계가 ESS(에너지저장장치) 사업을 강화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배터리 업계는 국제 무대에서 중국의 파상공세와 전기차 캐즘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가뜩이나 중국 배터리 업체의 글로벌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전기차 판매량 둔화까지 겹쳐 국내 기업의 설 자리가 좁아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업계는 불확실성을 타개하기 위해 ESS 공략으로 해법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무역 전쟁을 펼치고 있는 중국의 빈자리를 국내 기업이 꿰차며 반사이익을 누리겠다는 얘기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K-배터리’가 미·중 갈등에 따른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 글로벌 배터리 점유율, 中 오름세·韓 하락세...전기차 캐즘도 악재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2월 세계 각국에서 판매된 전기차(EV·PHEV·HEV) 탑재 배터리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의 시장점유율은 17.7%로 지난해 같은 기간(23.2%) 대비 5.5%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이 기간에 LG에너지솔루션(12.6→9.8%)과 SK온(4.8→4.7%), 삼성SDI(5.8→3.2%)의 글로벌 점유율이 일제히 떨어진 데 따른 결과다.
눈에 띄는 건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괄목할 만한 성장세다.
중국 배터리 기업 닝더스다이(CATL)는 올 1~2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이 38.3%를 기록했다. CATL은 시장점유율이 전년동기(38.2%) 대비 0.1% 포인트 줄어들긴 했지만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중국 비야디(BYD)는 같은 기간 점유율이 13.1%에서 16.9%로 3.8% 포인트 증가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CATL과 BYD의 시장점유율이 55.1%에 이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약세를 보이는 것은 주요 고객에 대한 공급량 감소가 주된 이유로 꼽힌다.
미국을 포함한 북미와 유럽 등 글로벌 핵심 지역 완성차 업체들이 한국산 배터리 대신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최근 내수 공급 과잉으로 수출 확대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보급형 모델인 모델Y에 중국 CATL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한 점이 대표적인 사례다. LFP 배터리는 가격이 저렴하지만 주행거리 등 성능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최근 기술력이 개선되는 추세다. 국내 배터리 업체 주력 제품은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다. 이 제품은 성능이 LFP에 비해 좋지만 가격이 비싼 편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LFP 배터리에 대한 노하우를 갖춘 데다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라며 “전기차 캐즘 원인 중 하나가 비싼 가격인데 중국 정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배터리'를 만드는 중국기업을 독려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전기차 캐즘 현상이 세계로 확산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한국 배터리 업계에 악재로 작용한다. 전기차가 팔리지 않으면 이에 들어가는 배터리 수요도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배터리 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자동차 패러다임이 중장기적으로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바뀐다는 전망에 대한 이견은 거의 없지만 캐즘에 따른 단기적인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SNE리서치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지역별 정책 변화와 신규 모델 출시라는 변곡점을 맞았다”라며 “한국 배터리 기업은 공급망 안정화와 맞춤형 전략을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과제로 부상했다”라고 진단했다.
■ 미·중 통상 전쟁에 ‘한줄기 빛’...K-배터리, ESS 영토 확장 나서나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미국과 중국이 최근 벌이고 있는 통상 전쟁이 한국 배터리 기업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관측도 나온다.
특히 세계 최대 ESS 시장인 미국에서 국내 업체가 사업 영토를 넓힐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현재 미국 ESS 시장을 장악한 중국이 ‘관세 폭탄’으로 사실상 대미(對美)수출이 봉쇄될 처지에 놓인 만큼 한국 배터리 기업이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는 설명이다.
ESS는 생산된 에너지를 보관하고 필요할 때 공급하는 일종의 ‘댐’ 역할을 한다. 특히 최근 인공지능(AI) 열풍에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ESS 시장도 가파르게 커지고 있는 추세다.
이런 가운데 미국 ESS 시장은 향후 10년간 연평균 25%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블루오션’이다. 이에 따라 세계 주요 배터리업체들이 ESS용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국내 업체가 미국 ESS 시장에서 단기간 내 눈부신 성장세를 이뤄낼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미·중 관세 전쟁이 장기화하면 업계 판도가 바뀔 수 있다고 내다본다.
지난해 기준 미국 등 북미 ESS 배터리 수요 78기가와트시(GWh) 가운데 중국산 배터리(68GWh) 비중은 약 87%에 이른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더욱 첨예화하면 중국기업의 점유율은 수출 둔화로 줄어들게 되고 이 공백을 한국 배터리 기업이 차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등 국내 '배터리 빅3'가 미국 내 배터리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기대감을 높이는 대목이다.
특히 이들 3사 모두 ESS용 LFP 배터리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미국 내 수주전에서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또 최근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라인 중 일부를 ESS용 배터리로 바꿔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모습이다.
삼성SDI는 최근 미국 최대 전력기업 넥스트에라에너지에 ESS용 삼원계(NCA) 배터리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SK온은 지난해 말 조직을 개편해 ESS 사업실을 사장 직속으로 격상해 올해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LG에너지솔루션도 최근 일본 전자업체 옴론과 ESS용 LFP 배터리 공급 계약을 최종 조율하는 등 글로벌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시장에서도 이 같은 시나리오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다.
이현욱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현재 미국이 중국산 배터리 셀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어 한국 배터리 업체 및 소재기업에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라며 “단기적으로는 관세 영향에 따른 수혜가 예상되는 북미 지역에 집중하면서 중장기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분석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ESS는 배터리 시장의 유망 분야로 지목돼 업체들이 많은 노력을 펼쳐왔는데 미국과 중국이 관세 문제로 격돌하면서 중요도가 더욱 커지고 있다”면서 “미국 관세 정책이 유동적이고 불확실하다보니 올해 한국 배터리의 수주나 시장점유율이 어느 수준까지 올라갈 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글로벌 ESS 시장을 ‘K-배터리’ 업계의 신성장 동력으로 여기고 지원 방안 마련에 나섰다. 이를 위해 정부는 배터리 업계가 최근 건의한 정책금융 제공 등에 대해 유관기관과 함께 논의를 이어갈 방침이다.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정책실장은 “글로벌 ESS 시장이 계속 성장하고 있어 국내 ESS 산업 생태계를 재정비하는 ‘ESS 산업 발전 전략'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마련하겠다”라고 말했다.
BEST 뉴스
댓글 (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