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구 기자 입력 : 2025.05.02 10:01 ㅣ 수정 : 2025.05.02 10:01
美 제조업 쇠락, 강성노조 등장과 금융-서비스업 집중 육성 결과물 ‘트럼프 발(發) 제조업 블랙홀’로 한국판 ‘러스트 벨트’ 현실화 기업 투자 유인해 고용 창출 일궈내는 선순환 구조 만들어야 ‘해외 엑소더스’ 막는 효율적인 경제정책 적극적으로 펼쳐야
김민구 부국장/산업1부장
[뉴스투데이=김민구 부국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쏘아 올린 '관세전쟁'은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뉴노멀’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화려한 슬로건 뒤에는 한국 등 주요 교역국 경제를 거지로 만드는 '근린궁핍화정책(Beggar thy neighbour)'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취임 100일을 맞은 그는 미국 경제가 교역 대상국 때문에 망쳤다는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피아 구별 없이 관세 폭탄을 매몰차게 떨어뜨리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미국이 한때 세계 정치 경제 무대에서 뚜렷한 리더십과 1등 국가 면모를 보여준 시절은 지나가고 각자도생의 길로 가는 'G-제로'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지 않는가.
막말과 기행을 일삼는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의 달인'이라는 꼬리표에 걸맞게 협상전략도 모두의 입을 쩍 벌리게 만든다.
그는 교역국이 미국에 맞서는 공동 대응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미국 눈치를 보며 협상해야 하는 '죄수의 딜레마'를 연출하고 있다. 이는 협상국 운신의 폭을 좁혀 미국이 원하는 결과를 모두 얻으려는 고도의 술책이 아니고 무엇인가.
물론 중국처럼 예외도 있다. 미국과 함께 세계 2대 경제 대국 'G2'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중국은 미국과의 정면충돌이라는 치킨게임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세다.
미국과 중국 양측이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이면서 두 나라 가운데 누가 먼저 벼랑 끝에서 핸들을 돌릴지 모른다.
게임이론에서 파생된 치킨게임은 '해피엔딩'이 없다. '모 아니면 도'다. 치킨게임은 '신뢰의 비대칭성' 때문에 공생이 아닌 공멸이라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의 길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미-중 갈등은 '21세기판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자리 잡은 맹주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급부상에 두려움을 느꼈다. 결국 두 나라는 경제·정치 패권을 놓고 무려 30년에 걸친 지리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휩싸였다. 그 결과 두 나라는 모두 패망의 길을 걷게 됐다.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여긴 자가 어느 날 자신을 추월했을 때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의 전철을 미국과 중국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 근간 MAGA의 핵심은 결국 미국 제조업 경쟁력의 복원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제조업 부흥을 외치는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가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으름장을 놓은 행태는 미국 제조업의 근본적 문제점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베리 앨런 블루스톤(Barry Alan Bluestone)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와 베넷 해리슨(Bennett Harrison)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가 1982년 함께 발간한 저서 '미국 제조업 공동화(The Deindustrialization of America)'를 읽어보면 트럼프 분노가 대부분 왜곡됐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미국 제조업 공동화는 미국 강성노조 등장에 따른 제조업 임금 급등과 금융-서비스업 집중 육성이라는 미국 경제정책의 결과물이다.
1970~80년대 미국 기업은 강성노조의 출현과 높은 인건비, 노동생산성 저하에 미국 내 공장을 폐쇄하고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한때 미국 제조업 메카였던 오하이오주(州), 미시간주, 펜실베이니아주 등 미국 북동부 지역은 제조업 몰락으로 녹슬어 버린 공장을 묘사하는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상징물이 됐다.
미국의 예가 보여주듯 기업이 수익을 제대로 보존할 수 없는 과도한 임금 상승은 전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똑같은 해법이 나온다. 제조업 기반을 외국으로 옮기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제조업 부흥을 외치고 있지만 미국 근로자 임금이 크게 줄어들지 않는 한 국제무대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이와 함께 국제분업 장점도 트럼프가 간과한 대목이다.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주장한 '비교우위이론'은 한 국가에서 모든 상품을 생산하는 것보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상품을 상호 교역하면 상호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를 통해 세계 경제는 지난 30년간 세계화의 열매를 나눠 가졌다.
리카도 주장처럼 제조업체가 지속적인 투자와 고용을 하려면 수익 구조 개선이 절대적이며 이를 위해 저렴한 해외 생산국에서 만든 부품을 활용하는 게 기본이다. 미국 역시 세계화에 중국 등 해외 시장을 활용해 가장 혜택을 많이 누린 국가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트럼프는 이 모든 것을 바꾸려 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외치는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가 현실이 되면 미국산 제품 가격은 현재보다 최소 2배 이상 치솟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 소비자에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이러한 가격정책이 과연 미국을 위대하게 하고 미국에 경제적 편익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트럼프 관세 정책은 우리나라 제조업계 발등에도 불을 떨어뜨렸다.
이른바 '트럼프 발(發) 제조업 블랙홀' 현상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대기업을 비롯해 중견그룹이 앞다퉈 짐을 싸 미국행 비행기를 타면 국내 제조업 기반은 더욱 취약해지고 국내 고용을 그만큼 줄 수밖에 없다.
최근 10여 년간 국내 제조업 현황을 살펴보면 한숨만 나온다. 국내 제품이 중국산 저가 제품에 추격당하고 선진국 제품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샌드위치' 현상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의 10대 수출 품목 가운데 8개가 2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기업 경쟁력이 후퇴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국내 주력 제조업이 트럼프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면 한국판 러스트 벨트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제조업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28%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 상황에서 제조업 위기는 산업 공동화와 경제 위기로 치달을 수 있는 뇌관이다.
이에 따라 현 정부는 물론 오는 6월 3일 새롭게 탄생하는 새 정부는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국내 기업 흐름을 관리하고 국내 고용 창출을 더욱 늘리도록 하는 게 최대 경제 현안이 됐다.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가뜩이나 국내 제조업 기반이 어려운 상황에서 강성노조가 맹위를 떨치고 반(反)기업 정책이 춤을 추며 강자는 나쁘고 약자는 옳다는 '언더도그마', 공산주의 중국에도 찾아보기 힘든 기상천외한 반기업 정책이 속출하면 제조업의 탈(脫)한국은 줄기는커녕 오히려 급증할 것이다.
트럼프가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를 위협해 제조업 기반을 흔들고 있지만 한국은 트럼프 정책만이 제조업 뿌리를 송두리째 훼손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복합 위기 파도가 밀려오는데 기업이 투자를 늘려 제조업 기반을 유지하고 고용 창출에 적극 나서 경제발전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는 진보세력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분배정책을 펼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기반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