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일 기자 입력 : 2025.05.02 07:00 ㅣ 수정 : 2025.05.03 07:39
5월부터 완성차 업계 임단협 본격화 성과보상·고용안정·투자확대 등 화두 관세 리스크에 보수적 기조 펼칠 듯 위기 돌파 위한 노사 간 결속력 강화 필요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현대차·기아 본사. [사진=현대차그룹]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국내 주요 완성자동차 기업 노사가 본격적인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준비에 돌입한 가운데 각자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치열한 기싸움이 벌어질 전망이다. 임금·성과급 인상과 고용 안정, 투자 확대 등 당면한 협상 과제가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근 ‘무분규 타결’ 흐름을 이어온 완성차 업체들도 올해 임단협을 앞두고 긴장감이 커지는 모습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쏘아 올린 '관세 전쟁' 으로 업황 악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임단협을 둘러싼 갈등이 위기를 더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노사는 이르면 이달 중 상견례를 갖고 올해 임단협에 본격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완성차 업계 임단협은 ‘맏형’격인 현대차가 신호탄을 쏜 뒤 기아와 한국GM, 르노코리아, KG모빌리티(옛 쌍용자동차) 등이 차례대로 돌입하는 일정으로 진행한다.
지난해 현대차는 6년 연속, 기아는 4년 연속으로 임단협을 무분규 타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GM와 KG모빌리티 역시 큰 진통 없이 임단협을 마무리 지었다. 르노코리아는 지난해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한 후 사측과 임단협 최종 합의안을 도출했다.
완성차 업계 노사는 올해 임단협에서도 초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기싸움을 벌일 것으로 점쳐진다. 전례에 비춰볼 때 △기본급 인상과 △성과급 규모 △정년 연장 △고용 안정 △협력사 상생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일단 임금과 성과급은 노조 측 초기 요구안이 여느 때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특히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나란히 사상 최대 실적을 일궈낸 만큼 성과 보상 요구가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라고 내다봤다.
실제 현대차 노사는 지난해 임단협에서 기본급 인상 규모를 역대 최대인 11만2000원으로 정했다. 또한 전년도 경영 실적에 대한 성과급 400%+1000만원에 더해 2년 연속 최대 경영 실적에 따른 별도 격려금 100%+280%도 합의했다.
또한 르노코리아 노조도 중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그랑클레오스’ 판매 호조에 따른 성과 보상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르노코리아의 내수 판매량 3만9816대 가운데 그랑클레오스(2만2034대)가 55.3%를 차지했다. 이는 이 모델이 지난해 7월 출시한 후 거둔 실적이다.
정년 연장과 통상임금 지급 등에 대해서는 다소 진통이 예상된다. 대표적으로 현대차·기아 노조는 만 60세인 정년을 국민연금 지급 시기인 만 64세까지 늘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퇴직 후 다시 일할 수 있는 숙련 재고용 제도(촉탁계약직)를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늘린 바 있다.
또한 지난해 12월 법원이 주휴수당, 유급휴일수당, 연차수당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게 올해 완성차 업계 임단협 화두로 등장할 수 있다. 기아 노조는 지난 2월 사측에 그동안 누락된 통상임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현대차 노조 역시 올해 임단협 테이블에 통상임금 지급건을 들고 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국GM 임단협은 ‘한국 철수설(說)’ 불식을 위한 투자 확대가 최대 화두로 떠오를 태세다. 한국GM 측은 최근 공장 정상 가동과 신차 출시 계획을 내세우며 철수설에 선을 그었지만 노조 차원에서 고용 안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명문화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수출용 차량이 경기도 평택항 내 자동차 전용부두에서 선적을 기다리며 세워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올해 완성차 업계 임단협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데에는 미국 관세 영향이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 4월 3일부터 수입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수출 실적 타격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자동차 관세 완화 가능성을 내비치기는 했지만 관세 영향에서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완성차 업계는 올해 모든 경영 역량을 미국 관세 대응에 결집하는 모습이다.
실제 현대차·기아는 올해 1분기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지만 통상 환경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올해 경영 환경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어 노조와의 임단협도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흘러나온다.
현대차그룹은 관세 리스크를 상쇄하기 위한 미국 현지화 전략의 하나로 오는 2028년까지 미국에 210억 달러(약 31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다만 노조 측은 해외 투자 쏠림이 국내 투자 및 고용 안정 약화로 이어지는 걸 경계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기아 노조는 미국 내 31조원 투자와 관련해 국내에 배터리 생산공장 건설을 요구하고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올해 국내에 24조3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할 계획인데 추가 투자 요구가 거세지면 재무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라며 "이에 따라 올해 경영 실적을 예단하기 어렵다는 점도 불확실성으로 꼽힌다"라고 풀이했다.
올해 완성차 업계를 둘러싼 대외 환경이 녹록지 않은 만큼 임단협 과정에서 노사가 결속력을 강화해 위기 극복에 뜻을 모을 지가 주목된다. 급변하는 통상 환경에 불확실성이 노조 등 조직 내부까지 번지면 대내외 리스크를 돌파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관세가 미치는 영향은 회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동차 산업을 전반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다는 위기감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라며 "그동안 쌓아온 경쟁력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한 대응 계획을 마련하는 데 노사가 손잡고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