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선포를 실록으로 엮어본다. 윤석열은 언제부터 쿠데타를 계획했을까? 윤석열은 무슨 일을 계기로 확신범이 되었을까? 12월3일은 우리나라가 처한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고권력자 1인의 독단으로 나라가 형편없이 흔들렸는가 하면 국회와 시민들의 용기있는 대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위대한 서사시였다. 12월3일을 전후해서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 역사적 순간에 무슨 역할을 했는지 초현실적 계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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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극우화된 국민의힘과 극우단체들은 헌법재판소 흔들기에 나섰다. 진보적 성향으로 알려진 재판관들의 신상털기, 재판관 기피신청과 회피 등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 헌법의 권능을 위협하는 행위, 헌법을 마지막으로 수호하는 헌법재판관에 대한 위해는 제2의 내란행위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내란에 동조한 국민의힘을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해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기 시작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선봉에 서 있다. 그는 1월에 두 차례 헌법재판소를 찾아갔다. 첫 번째 방문에서는 “내란죄 철회는 국회 재의결 사항”이라는 윤석열 변호인단 주장을 반복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헌법재판소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적용 법조문을 철회·변경하는 것은 소추 사유의 철회·변경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특별한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허용된다”라고 판단했다.
두 번째는 윤석열 탄핵심판 진행이 빠르다는 불만을 제기하려고 찾았다. 역시 사실과 다르다. 박근혜 탄핵심판에 비해서 더 속도감있게 진행되었다. 재판이 진행중인 사안에 대하여 어느 재판부도 면담 신청에 응한 일이 없다. 아니 어느 정치인도 면담을 요청한 일이 없다. 그 자체가 재판부에 대한 압박이다. 이런 압박이 일상적으로 허용되면 법관은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할 수가 없다. 국민의힘이 사법부의 양심과 독립을 흔드는 행위를 자행한 것이다.
헌재가 면담을 거부하자 권성동은 기자들을 만나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모친상때 조문했다”고 허위사실을 말했다. 문형배가 사법고시 동기인 이재명 대표와 친하므로 제척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조문한 사실이 없다. 사실 관계 자체가 틀렸다. 엉터리 주장을 모아서 헌법재판의 객관성 중립성 전제 자체를 무너트리려는 것으로, 지지자를 모아서 압박을 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헌재는 문형배 권한대행이 3년 전 이재명 대표가 경기지사로 있을 당시 경기도와 남양주시의 권한쟁의심판 청구 사건에서 남양주 측 손을 들어준 결정을 거론했다. 친분과 관계없이 재판은 독립적으로 이루어 진다는 반박의 한 예이다.
탄핵심판의 쟁점은 비상계엄이 헌법에 반하냐, 아니냐에 있지 진보 보수의 가치를 따지는 이념에 있지 않다. 그럼에도 여당을 주축으로 재판관 이념 등을 문제 삼으며 ‘헌재 흔들기’에 주력했다. 이는 국민의힘이 낡은 색깔론에 여전히 안주하고 있으며. 할 수 있는 것이 그것 밖에 없다는 것의 반증이다. 진화하지 못한 정치세력의 진면목을 보게 한다. 국민의힘이 잎장 서는 ‘헌재 흔들기’는 극우지지층에게 서부지원 난동같은 잘못된 메시지를 줄 위험이 있다.
헌재는 1월 31일 국민의힘 및 보수언론의 공격에 관해 “탄핵심판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며 유감을 나타냈다. 천재현 공보관은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 대상은 피청구인의 행위가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되는지와 그 위반 정도가 중대한지인데 정치권과 언론에서 재판관의 개인 성향을 획일적으로 단정 짓고 탄핵심판의 본질을 왜곡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한 사법부의 권한침해 가능성에 대해 헌재는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탄핵심판이 막바지에 가까워지면서 극우 유튜브에선 또 한번 큰 장이 섰다. 2월 11일 디시인사이드 중도보수 마이너 갤러리에 문형배 권한대행이 졸업한 고등학교 동문 온라인 카페에서 수년간 음란 사진이 공유되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문형배 대행을 겨냥해 이 카페를 '행번방'(N번방에 빗댄 말)이라고 힐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한겨레 취재 결과, 문형배 대행의 음란물 공유·댓글 작성 등 논란은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게시물이 고성국TV, 가로세로연구소 등 ‘극우 유튜브’를 거쳐 급격히 확산되고, 그중 일부가 극우·보수 매체를 통해 기사화되는 등 전형적인 ‘가짜뉴스의 뉴스화’ 경로를 거쳐 확대 재생산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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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박민영 대변인과 배현진 박성훈 나경원 의원 등은 사실 확인에 나서긴 커녕 가짜 뉴스를 확대했다. 박민영은 "문형배 재판관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변론 중에 해당 글을 삭제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는 의혹까지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다"라며 가짜뉴스 생산 대열에 합류했다. 나경원은 페이스북에 "만약 언론 보도와 의혹 제기가 사실이라면 수사 처벌의 대상"이라고 했다. 자칫하면 나경원이 이 글로 처벌받을 수도 있는 논평이었다. 문형배 대행은 "경찰에서 적극적으로 수사해주기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 탄핵 반대 단체인 부정선거·부패방지대는 2월 17일과 24일, 문형배 대행 자택 추정장소에서 "빨갱이 포르노 판사 때려잡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부패방지대 회원은 문형배 대행의 관용 차량 종류와 차 번호를 공개하면서 "경호 차량과 함께 다니는 저 차를 발견하면 모두 야유를 퍼붓고, 체포하라고 구호를 외치길 바란다"고 독려했다. 이들은 2월 16일부터 3월 12일까지 약 한 달 동안 해당 장소 집회 신고를 했다.
노무현 박근혜 탄핵 심판 때는 재판관 성향 분류는 했지만 이번처럼 인신공격, 가짜뉴스 퍼나르기는 없었다. 그만큼 극우가 조직화되었다는 반증이다. 국민의힘은 여기에 가세했을 뿐만 아니라 윤석열 측과 함께 문형배 이미선 정계선 등 진보 성향 재판관 3인에 대한 회피 신청을 했다. 재판관 개인의 이념적인 성향을 문제 삼아서 헌법 재판의 결과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려는 것이다. 헌법기관에 대한 신뢰 저하는 사회적 자산을 갉어먹고 통합을 저해하는 행위이다
국민의힘은 문형배 대행에 대해서는 10여년 전 페이스북과 블로그 게시 글을 뒤져, 문제를 삼았다. 2010년 9월 문형배가 UN 기념공원 참배뒤에 올린 글이다.
“17세의 나이로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호주 출신 병사 도은트를 비롯한 16개국 출신 유엔군 참전용사들은 무엇을 위하여 이 땅에 왔을까?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좋은 전쟁이란 낭만적 생각에 불과하다는, 인류의 보편적인 깨달음을 몰랐을까?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룬다면 완전한 통일이 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을까? 묘역을 떠나면서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단어는 ‘평화’였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이 글이 ‘북침론’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며 재판관 사퇴를 촉구했다. 문형배는 “원문을 읽어보시죠”라고 하면서,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자들’은 “북한을 가리킨다. 그들의 침략을 규탄한다는 뜻”이라고 반박했다.
문형배가 재판부 내 진보적 공부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이라는 것도 문제삼았다. 2010년 5월 문형배는 트위터에 “굳이 분류하자면 우리법연구회 내부에서 제가 제일 왼쪽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를 두고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문형배 대행의 편향성 우려가 한계를 넘었다고 주장했다. 문형배의 트위터 글은 이렇게 이어졌다 “그런데 친구들과 이야기 해보면 제가 참 보수적이거든요. 문제는 좌, 우를 나누는 잣대조차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판사들이 사회적 흐름에 비해 보수적인 경향성이 높다는 점을 경계하는 차원에서 쓴 글인데 거두절미하고 회피의 사유로 만들었다.
이미선 재판관의 친동생인 이상희 변호사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윤석열 퇴진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도 문제 삼았다. ‘윤석열 퇴진 특별위원회’는 12.3 비상계엄 직후 설립되었다. 이상희 변호사는 민변 사무차장,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소장을 역임하고 부회장으로서 당연직 부위원장이 되었다.
정계선 재판관 남편 황필규 변호사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법인의 이사장이 국회 쪽 탄핵소추대리인단 공동대표인 김이수 변호사이다. 이것이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고 국민의힘이 물고 늘어졌다. 황필규 변호사는 난민,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등 사회적 사안에 대해 적극 나서고 있다. 황필규 변호사가 소속된 공감은 2004년 설립된 공익변호사 단체로다. 시민들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수임료를 받지 않고 사회적 약자의 인권 개선을 목표로 공익소송을 지원하고 있다.국민의힘이 재판관들의 동생 남편까지 뒤져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윤석열 측과 국민의힘이 기피 회피 신청을 하는 것은, 문형배와 이미선의 임기가 종료되는 4월까지 결정 선고를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헌재를 다시 6인 체제로 만들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이건태 민주당 대변인은 "국민의힘이 헌법재판소 흔들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윤석열에 대한 탄핵 인용을 대비해 불복할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런 식이면 윤석열과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인 헌법재판소 재판관 7명도 재판에서 손을 떼야 마땅하다, 한마디로 헌재의 결정을 부정하기 위한 생트집 잡기에 불과하다. 공당의 주장이라기엔 비루하기 짝이 없다, 극우 유튜버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한심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이영림 춘천 지검장은 검찰 내부게시판인 이프로스에 ‘일제 치하 일본인 재판관보다 못한 헌재를 보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느닷없이 헌법재판소의 심리에 뛰어든 것이다. 이영림 지검장은 “헌법재판소 문형배 재판관은 지난 6차 변론에서 증인신문 이후 3분의 발언 기회를 요청한 대통령 요구를 ‘아닙니다. 돌아가십시오’라며 묵살했다”며 “(일제) 재판부는 안중근 의사가 스스로 ‘할 말을 다 하였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할 때까지 주장을 경청했다”고 적었다.
국회측 김진한 변호사는 기자들을 만나 “헌재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동영상을 보기를 권한다. 동영상을 보면 본인 생각보다 피청구인(윤 대통령) 방어권이 과도하게 보호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우리 헌재를 일제 식민지 시대의 총독부 재판소랑 비교하는 잘못된 표현으로 국민을 혼란시키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공직자의 도리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시간 배분 규칙에 따라 발언기회를 공평하게 배분했고, 윤석열에 대해서는 최후진술을 1시간 10분에 걸쳐 하게 하는 등 상당한 배려를 했다.
헌법재판소를 이렇게 흔드는 와중에도 변론은 계속됐다. 김진한 변호사는 국회에서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는 걸 보면서 생각했다. "이번 탄핵심판은 나라를 구하는 재판이 되겠다."(시사IN 이터뷰) 그 마음으로 국회 대리인단에 합류했고 탄핵심판에 뛰어든 다른 변호사 16명(김이수·송두환·이광범 공동대표, 권영빈·김남준·김선휴·김정민·김현권·박혁·서상범·성관정·이금규·이원재·장순욱·전형호·황영민 변호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했다.
김진한 변호사는 윤석열이 출석을 할 것이라고 강하게 예상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사과하러 나오는 게 아니라면, 부끄러워서 나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심판정에 떡하니 나타나서 ‘실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등 국민을 계속 선동했다. 어떤 말보다도 그의 제스처가 참 부끄러웠다. 본인한테 불리한 이야기가 증인이나 대리인 입에서 나오면, 그 상황을 어떻게든 모면해보려고 부지런히 움직여 상의하는데, 그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결국 자기가 한 일을 진술하는 것에 불과한데, 그걸 막아보겠다고 머리를 굴리는 모습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 부끄러웠다.”(시사IN)
장순욱 변호사도 윤석열의 인간됨에 의문을 표했다. “이런 부분은 아랫사람한테 책임을 떠넘기는 거죠. 정직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국군 통수권자로서 최고 국정운영 책임자로서 비겁하다고 해야 할까요? 비열하다고 해야 할까요?...설사 그랬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전 국민들이 다 보는 탄핵 재판에 임해서는 그래도 아 이 사람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장면을 하나쯤은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를 했는데 그런 기대는 충족이 안 됐던 것 같아요.”라고 기억했다.(한겨레 신문 썰전)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심판 마지막 변론이 2월 25일 마무리됐다. 윤석열이 2024년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84일 만, 지난해 12월 14일 국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73일 만이다. 이날은 늦은 밤까지 양측의 최후 진술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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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정청래 국회측 탄핵소추위원의 최후 진술 발췌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헌법을 사랑한다. 헌법은 생각과 주장, 의견이 다를 때 대한민국은 이 방향으로 가자고 결정해놓은 대국민 합의문서다. 국민 전체의 약속이자 국민이 지켜야 할 국가의 이정표다. 헌법은 나침반이다. 헌법은 국민이고, 애국가이고, 태극기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헌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 이것이 헌법 제1조 민주공화국의 헌법정신이다...
그런데 나라와 헌법을 사랑하는 국민을 총칼로 죽이려했고, 피로써 지켜온 민주주의를 짓밟고 피를 잉크 삼아 한 자 한 자 찍어 쓴 헌법 을 파괴하려는 사람 있다. 지금 이 탄핵심판정에 있는 피청구인 윤석열이다...이제 공상에 빠져 있던 권력자가 무너뜨리려고 한 평화로운 일상을 회복해야 한다.
그를 파면함으로써 하루빨리 대한민국을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 피청구인을 파면하는 것은 대통령이라는 최고권력자에게 헌법을 준수할 의무를 다시금 상기시키고, 헌법의 적으로부터 헌법을 수호하는 일이다. 헌법을 파괴한 행위에는 예외 없이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것이 헌법의 준엄한 명령이다. 민주주의의 적은 민주주의로 물리치고, 헌법의 적은 헌법으로 물리쳐야 한다...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절대권력자도 잘못하면 벌받는다'는 일반 상식이다.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은 사적 감정의 정치 보복이나 정치적 공격이 아니라 오직 헌법과 법치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헌법 수호자의 결단이다. 피청구인 윤석열에 대한 파면 결정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대한민국 헌법이 살아있고 현실에서 작동하는 실질 규범임을 보여주는 역사 기록될 것이다...
피청구인은 이에 대한민국 대통령직을 유지할 자격이 없다. 국민들 마음속의 대통령이 아니다. 우리 국민은 헌법의 적을 헌법으로 막았다. 민주주의 적도 민주주의로 지켜냈다.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함으로써 헌법 수호의 의지를 보여주기 바란다. 피청구인에 대한 파면으로 얻을 국가적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 필연은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했다. 비상계엄이 몽상가의 우연한 돌출행동이었다면 내란극복은 국민들이 이뤄낸 필연이다. 그 필연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저력이다.”
국회 측에서 10명의 변호사가 나서 최후진술을 했다. 그 중에 장순욱, 김진욱 변호사의 최후 변론을 일부 옮겼다
장순욱 변호사 (국회 탄핵소추위원단 측 대리인) 최후 진술 발췌
“말은 말을 사용하는 언어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소통하는 수단이자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사용하는 말이 그 말하고자 하는 대상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엉뚱한 의미로 심지어 정반대 의미로 쓰인다면 더 이상 소통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만일 그 누군가가 권력자라면 개인과 개인의 소통 단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언어공동체 전체가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피청구인은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언동을 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말했습니다. 헌법을 파괴하는 순간에도 헌법 수호를 말했습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헌법의 말, 헌법의 풍경을 오염시킨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포크가수 '시인과 촌장' 1986) 이 노랫말처럼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우리도 하루 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그 첫 단추가 권력자가 오염시킨 헌법의 말들을 그 말들이 가지는 원래의 숭고한 의미로 돌려놓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변론하면서 울컥) 국민과 함께한 이 사건 탄핵 결정문에서 피청구인이 오염시킨 헌법의 말과 헌법의 풍경이 제자리를 찾는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김진한 변호사(국회 탄핵소추위원단 측 대리인) 최후 진술 발췌
“헌법 재판소는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하지만 권력자나 다른 국가기관을 압도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헌법 재판소가 갖는 재판의 권한도 사실 다른 권력기관이 갖는 힘과 비교할 때 그 힘이 미미합니다. 판단하는 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질문하는 힘에 가깝습니다. 헌재가 갖는 유일한 힘은 바로 그 질문하는 힘, 그리고 그 질문이 갖는 설득력입니다. 헌법 재판소는 그동안 이런 질문의 힘을 공정하고 정의롭게 사용해 왔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민주주의가 성숙하게 된 데에 기여한 수많은 요인 중 헌법 재판소의 업적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정치인들에게, 정치세력들에게 헌법재판소를 흔드는 행위를 중단할 것을 호소드립니다. 헌법재판소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에 공감하지 않더라도, 그래서 질문의 내용을 비판하더라도, 질문하는 재판관들이 편향된 사람이라고 선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편견 가득한 이념 틀로 재판관들의 생각과 양심을 함부로 규정짓는 행위며, 헌법재판소의 질문하는 입을 폭력의 손으로 틀어막는 행위입니다...
만일 헌법 재판소에 대한 신뢰마저도 무너뜨린다면 우리 사회는 헌법 이전의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미움과 혐오, 그리고 중단 없고 한계 없는 최악의 갈등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는다면 그 어떤 권력도 우리의 자유를 대신 지켜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 맞서며 행동할 때 민주주의는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이번 헌법적 위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지켜보아야 했던 가장 안타까운 장면은 경찰과 사법기관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일부 젊은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들 젊은이들을 비난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 현실과 관행이 우리 젊은이들의 꿈을 좌절하도록 만들지는 않았는지,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합당하고 공정한 희망을 나누어 주었던 것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법과 절차로 유지될 수는 없습니다. 구성원 모두가 그 공동체 속에서 희망과 신뢰를 찾을 수 있을 때 지속될 수 있습니다.
2025년 민주주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영화의 제목 ‘한국이 싫어서’(장강명 작가 소설이 원작인 영화)처럼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떠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과연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에 관하여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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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이날 밤 늦게 마지막으로 최종 의견 진술에 나섰다. 국민의힘 지도부와 보수언론들조차 '진솔한 대국민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묵살했다. 그는 진술 앞부분에서 12‧3 비상계엄 선포 사태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다"고 두루뭉술하게 '죄송'이라는 말을 꺼냈다. 여기서 죄송이라는 표현은 쿠데타를 성공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죄송으로 들렸다. 1시간 10분에 걸친 최후 진술은 “2시간 짜리 계엄이 어디 있느냐”는 종전의 주장을 반복했다. 경고성 계엄이었다는 변명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다음은 발췌본.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84일이 지났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힘든 날들이었지만, 감사와 성찰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저 자신을 다시 돌아보면서, 그동안 우리 국민들께 참 과분한 사랑을 받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국민께서 일하라고 맡겨주신 시간에 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송구스럽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한편으로, 많은 국민들께서 여전히 저를 믿어주고 계신 모습에 무거운 책임감도 느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몇 시간 후 해제했을 때는 많은 분들께서 이해를 못하셨습니다. 지금도 어리둥절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계엄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과거의 부정적 기억도 있을 것입니다. 거대 야당과 내란 공작 세력들은 이런 트라우마를 악용하여 국민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은 과거의 계엄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무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계엄이 아니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입니다. 12·3 비상계엄 선포는 이 나라가 지금 망국적 위기 상황에 처해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고, 주권자인 국민들께서 상황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는 데 함께 나서 달라는 절박한 호소입니다. 무엇보다, 저 자신, 윤석열 개인을 위한 선택은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거대 야당은 이것을 내란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병력 투입 시간이 불과 2시간도 안 되는데,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방송으로 전 세계, 전 국민에게 시작한다고 알리고, 국회가 그만두라고 한다고 바로 병력을 철수하고 그만두는 내란을 보셨습니까? 대통령이 국회를 장악하고 내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거대 야당의 주장은 어떻게든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한 정략적인 선동 공작일 뿐입니다...
거대 야당은 야당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을 탓하기 전에, 공당으로서 국가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와 신뢰를 보여주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유민주주의 헌법 원칙, 국가안보, 핵심 국익 수호만 함께 한다면, 어떤 정치세력과도 기꺼이 대화하고 타협할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일에 좌파, 우파가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자유를 부정하는 공산주의, 공산당 1당 독재, 유물론에 입각한 전체주의가 다양한 속임수로 우리 대한민국에 스며드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이런 세력과 타협하고 흥정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먼저 87체제를 우리 몸에 맞추고 미래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개헌과 정치개혁의 추진에, 임기 후반부를 집중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미 대통령직을 시작할 때부터, 임기 중반 이후에는 개헌과 선거제 등 정치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희생과 결단 없이는 헌법 개정과 정치개혁을 할 수 없으니, 내가 이를 해내자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저는 여러 전직 대통령들이 후보 시절 공약하고도 이행하지 못한 청와대 국민 반환도 당선 직후 바로 추진하고 이행한 바 있습니다. 잔여 임기에 연연해하지 않고, 개헌과 정치개혁을 마지막 사명으로 생각하여, 87체제 개선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국민의 뜻을 모아 조속히 개헌을 추진하여, 우리 사회 변화에 잘 맞는 헌법과 정치구조를 탄생시키는 데 신명을 다하겠습니다. 개헌과 정치개혁 과정에서 국민통합을 이루는 데도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결국 국민통합은 헌법과 헌법 가치를 통해 이루어지는 만큼, 개헌과 정치개혁이 올바르게 추진되면 그 과정에서 갈라지고 분열된 국민들이 통합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되면 현행 헌법상 잔여 임기에 연연해 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제게는 크나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국정업무에 대해서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글로벌 복합위기 상황을 감안하여, 대통령은 대외관계에 치중하고 국내 문제는 총리에게 권한을 대폭 넘길 생각입니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윤석열의 진술까지 들은 뒤 밤 10시 14분쯤 "이것으로 변론을 종결하겠다"고 선언했다. 평결이 이뤄지면 주심 재판관(정형식)이 다수의견을 토대로 결정문 초안을 작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