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 칼럼니스트 입력 : 2025.05.05 11:07 ㅣ 수정 : 2025.05.05 11:07
육군의 작전(530) 주특기 장교는 필수보직인 사단 작전참모 보직을 반드시 마쳐야 대령 진급이 유리해 고(故) 최귀동 할아버지,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며 이웃에 봉사해...
필자의 대대를 방문했던 전임 사단장 조영호 장군과 당시 사단 참모 보직을 검토한 인사참모 김기영 중령 [사진=김희철]
[뉴스투데이=김희철 컬럼니스트] 하늘을 제패하는 공군은 조정, 정비, 방공, 기상, 헌병 등으로, 바다를 호령하는 해군은 항해, 기관, 통신, 해병대 등으로, 지상의 육군은 보병, 포병, 기갑, 공병, 정보, 정훈 등의 병과로 구성되어 제 병과가 협동작전을 수행한다.
각 병과에서 다시 인사, 작전, 군수, 동원, 기획 등의 주특기로 분류하여 기능별로 전문화된 보직에서 인사 관리를 한다. 진급은 각 병과와 보직에서 정상적이고 효율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주특기별로 공석을 할당하고 각군 본부에서 삼심제 심사를 통해 우수자원을 선발한다.
필자는 육군의 보병 병과에 작전(530) 주특기이었다. 당시에 중령이었던 필자는 작전(530) 주특기의 필수보직인 사단 작전참모 보직을 반드시 마쳐야 대령 진급이 유리해진다. 따라서 대대장 근무를 마친 작전 주특기의 장교들은 어떻게 해서든 사단 작전참모 보직으로 들어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돌이켜보면 전임 사단장 조영호 장군이 대대를 방문할 때마다 “대대장 근무가 언제 끝나냐...? 빨리 대대장 마치고 사단에 들어와 정보참모로 사단장을 보좌해야지..”라고 차후보직을 선발해주어 일단은 안심하고 있었다. 왜냐면 정보참모를 마쳐야 바로 이어서 작전참모로 근무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당시 사단 인사참모 김기영 중령이 사단 참모 보직을 검토하면서 필자에게 연락하여 다른 부대로 가는 것이 어떠냐고 타진을 해왔었다. 아마도 그가 개인적으로 인연이 닿은 다른 장교를 염두에 두었기에 필자에게 스스로 사단 참모 보직을 거절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길 종용했던 것 같다.
필자는 인사참모에게 단호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사단장은 필자에게 사단 참모로 들어오라고 몇 번을 이야기 했는데 인사참모의 의견이 사단장 뜻이냐며 필자가 사단장에게 직접 확인하겠다고 하자, 그는 당황하며 “아니, 필자가 유능하니 더 좋은 곳으로 보직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제시했다”며 뱉은 말을 급하게 정정했었다.
치열한 경쟁 사회속에서 진급을 위한 살벌한 보직 쟁탈전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꽃동네의 시작이된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고 말한 고(故) 최귀동 할아버지와 오웅진 신부 [사진=꽃동네/김희철]
■ 사단 정보참모로 보직된 후 계속된 타참모들의 견제와 회자정리라는 말처럼 다음 만남을 위한 이별
사단 정보참모로 보직된 후에도 타참모들의 견제는 계속되었다. 이 역시 우수한 평정을 받기위해서 본인이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참모들이 실수하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특공여단에서 충주대대장 근무를 마치고 사단 작전참모 근무중인 구인회 중령(삼사14기) 만이 후배인 필자를 아끼며 감싸줘 감사했다.
한편 신임 사단장 김선필 장군은 절실한 크리스찬으로 본인은 술을 한잔도 못했지만 회식이 있을 때에는 본인은 청량음료를 마시면서도 참모들에게는 술을 권했다. 그래서인지 모임에서 과도한 음주를 지양하면서 가벼운 회식을 지속적으로 열게 되었다.
어느날에는 사단장의 지시도 없었는데 참모들만의 회식도 추어탕 한그릇으로 1시간만에 종료되며 점점 지휘관을 닮아가는 참모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역시 군대는 지휘관 중심의 중앙집권적인 집단이라 참모 보직의 절대적인 결정권은 사단장에게 있었다.
정보참모를 시작하면서 어느덧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고 12월이 되자 많은 외부 기관 및 주요인사들의 격려 위문이 계속되었다.
마침 전 국방부 차관이었던 이정린 장군이 부대를 방문했다. 그는 천주교 신자로 인근 꽃동네 방문을 요청하여 참모장은 사단사령부에서의 환영행사를 마치고 천주교 신자인 필자에게 사단장을 수행하여 이 국방차관을 안내하도록 조치했다.
오웅진 신부는 이미 이 차관과 안면이 있는 상태라 매우 반갑게 맞이하면서 꽃동네를 안내했다. 고(故) 최귀동 할아버지는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고 말하며 일반 민가에서 얻어온 밥을 데리고 있던 장애자와 고아들에게 나누어주었다는 오 신부님의 이야기는 감동이었다.
감동을 받은 이 차관이 복귀하자,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별로 한일이 없이 수행했던 필자에게 사단장은 수고했다고 격려를 보냈고, 이런 결과도 타참모들에게는 질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연말이 되자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처럼 그동안 함께 근무했던 많은 전우들이 보직을 옮겼다.
조영호 사단장을 비롯하여 김현석, 우종문, 김유봉 참모장과 대대장 시절에 각별하게 챙겨주었던 권재모 감찰참모도 타부대 전출과 전역을 위해 모두 출발했다.
그리고 ‘국군의 날’ 행사와 동계를 대비해 연병장 복토 및 정비 공사를 앞두고 모래가 많이 필요한데 미호천 모래를 채취하기 위해 청원군수에게 직접 협조를 해달라는 부탁했던 당시에는 공병대대장이었고([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35)] ‘민관군통합작전체계를 빛낸 변종석 청원군수의 애군심(愛軍心)(하)’ 참조) 이어서 사단 군수참모 보직을 마친 권태환 중령도 떠났다.
하지만 치열한 보직 및 진급 전쟁 속에서도 동기생인 권 중령은 필자에게 “너는 장군될 사람들만 모셨고, 네가 모신 사람들은 대부분 장군이 되었다. 아마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라며 희망을 심어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다음편 계속)
◀김희철 프로필▶ 방위산업공제조합 부이사장(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2024년), 군인공제회 부이사장(~2017년), 청와대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제복은 영원한 애국이다(오색필통,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