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일 칼럼] 로비스트 양성화 위한 입법 추진 검토할 때다
로비란 일종의 ‘청원권’ 역할 하는 합법적 영역의 활동이나 한국은 부정적으로만 인식

[뉴스투데이=최기일 교수] 세계 최초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은 고대 사회에서도 엄격한 법과 제도가 국가 발전뿐만 아니라 번영을 지속할 수 있는 근간이 됐음을 보여준다. 우리 인류의 역사 속에서 통치와 사회 규범의 모든 기본은 ‘법(法)’에서 비롯됐다.
이처럼 인류는 법과 제도가 정립된 이래로 정교한 정치, 사회체제와 고유한 문명의 발전을 거듭해왔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를 거치면서 보다 복잡한 정치적, 사회적 구성원 간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개인이나 단체 활동에 있어 특이점이 발현되는데, 이는 오늘날의 ‘로비(Lobby)’로 이어졌다.
■ 역사적으로 정부 정책 결정이나 특정 입법에 영향력 행사가 목적
우리나라는 로비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선진국에서 로비는 합법적인 영역에서 활발히 이루어진다. 로비의 어원은 고대 독일어 ‘Lauba(낙엽을 모아 두는 곳)’에서 유래됐는데, 영어로 사용되면서 포장된 길, 넓은 복도, 찾아온 손님과 면담이나 휴식장소, 대기실, 원외단 등을 뜻하게 되었다.
원외단이란 영국에서 궁정의 넓은 방을 겸한 통로로 쓰였던 로비에서 많은 귀족과 상인들이 국왕이나 여왕을 알현하면서 자신들이 뜻한 바를 이루어내던 것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는데, 일종의 청원권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태종 재위시절 운영되었던 ‘신문고’가 전 세계에서 가장 투명하면서 직접적인 청원권 행사의 역사적 사례로 기록돼 있다.
로비는 법률적 또는 학문적 관점의 차이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협의의 로비와 광의의 로비로 구분하여 정의한다. 협의의 로비란 공공기관의 정책 결정에 대해 이해관계자가 정책결정자와 직접적인 만남이나 연락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행위로 규정할 수 있다.
반면, 광의의 로비는 정책입안자와의 직접적인 만남 외에도 이익단체 구성을 통한 압력행사와 서신 전달, 공공 캠페인 등을 포괄하며,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단체의 활동 이외에 공익을 추구하는 시민단체들의 활동도 정부 정책 결정이나 특정 입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로비 행위에 포함된다.

■ 미국·유럽 등, 정부에 대한 이익추구 활동으로 인식해 법령화 추진
아이다호 보이시 주립대학(Boise State University, Idaho)에서 ‘로비학’을 강의하는 마크 던햄(Mark Dunham)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로비란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정부(입법·행정부 등)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정치인이나 공무원들과 접촉하여 자신들의 견해를 전달하는 이익 추구의 활동”이라 말한다.
이러한 로비의 개념은 순수 우리말이 아니므로 우리가 잘못 사용할 개연성이 농후하다. 우리나라에서 로비는 그 본래 뜻과 달리 뇌물 공여나 어두운 뒷거래 등의 의미로 인식된다. 예를 들어, 옷 로비, 차떼기 로비, 심판 로비, 무기 로비 등이다. 또한, 로비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생소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섣불리 정의를 내리기도 어렵다.
로비 관련 외국의 법령들을 살펴보면, 1946년 제정된 미국의 ‘연방로비활동규제법(Federal Regulation of Lobbying Act)’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이 법으로 전 세계에서 로비 활동을 공식적으로 법제화하여 제도화한 최초의 국가이며, 1995년에 이 법을 보완하여 ‘연방로비공개법(Lobbying Disclosure Act)’을 제정했다.
이외에도 캐나다는 1989년 ‘로비법(Lobbying Act)’을, 호주는 2008년 로비 관련 ‘공무원행동규범(Lobbying Code of Conduct)’을, 독일은 연방의회에서 로비스트 등록에 대한 구체적인 규칙을 채택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1996년 로비스트에 대한 규제를 채택함으로써 로비스트의 의회 출입을 위한 출입허가증 부여와 행동강령 준수 서약을 적용 중이다. 이와 같이 국가들은 저마다 로비에 대한 법령을 운영 중이다.
■ 음성적·불법적 로비 관행을 법령 제정으로 근절 가능한지가 쟁점
국내에서는 과거 제17대 국회(2004∼2008)에서 로비 관련 법제화가 추진된 적이 있다. 당시 로비의 합법화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여론에 밀려서 결국 법제화는 되지 못했다. 사실, 로비는 한국 사회에서도 뿌리가 깊다. 다만, 한국의 로비가 은밀한 불법적 영역 안에서 움직인다면 미국의 로비는 합법적 무대 위에서 작동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국내에서 로비 제도를 도입하려는 최초의 노력은 2000년 5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로비스트의 공개 등록, 로비 활동내용의 공개, 로비 활동 규제 및 가이드라인 설정, 불법적 로비 활동의 처벌 등을 골자로 한 ‘로비 활동 공개법’을 입법 청원한 것으로부터 시작돼 제17대 국회에서 본격 논의되었다.
2004년 8월 26일에 정몽준 의원 등 29인은 ‘외국 대리인 로비활동 공개에 관한 법률안’, 2005년 7월 13일에 이승희 의원 등 10인은 ‘로비스트 등록 및 활동공개에 관한 법률안’, 2006년 10월 11일에 이은영 의원 등 33인은 ‘로비 활동 공개 및 로비스트 등록에 관한 법률안’을 입법 발의한 바 있다.
로비를 둘러싼 규제 문제는 법령을 통해 음성적이거나 불법적인 로비 관행을 근절할 수 있는지가 기본적 쟁점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로비와 로비스트, 로비 활동을 규정하는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로비와 로비스트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음성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로비 활동에 대한 관리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 불법으로 규정해 악순환 반복…비리 근절하려면 로비 양성화 필요
필자는 로비와 로비스트, 로비 활동에 있어 무기거래 시장 즉, 방위산업에 주목한다. 기본적으로 세계 무기거래 시장은 ‘정찰제’ 시장이 아니다. 또한, 방위산업의 특성상 관련 정보가 극도로 폐쇄적이므로 고도의 전문적인 영역에 속한다. 게다가 천문학적인 금액을 거래하는 대형계약 비중이 높아 실제로 로비스트, 브로커, 에이전트 등에 의해 주도된다는 특징이 있다.
즉, 무기거래 시장은 로비를 통한 협상과 중재과정이 필연적이라는 특수성을 지닌다. 이는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연구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 세계 교역에서 발생하는 부정부패, 비리사건의 40%가 무기거래에서 발생할 정도로 비리 등에 취약한 산업군 중 하나로 지적된다는 점에서 로비스트법 제정에 대한 필요성 검토는 의미가 크다.
로비 활동을 방위산업 환경에 대입해 보면, 로비스트는 막후에서 정부 상층부 또는 정치인 등과 접촉하며 판매하려는 무기체계를 군 소요에 반영시키는 등 정무적인 업무를 수행하면서 ‘방산비리’를 촉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방위산업에서 로비스트 양성화 입법 논의는 공론화 여지가 크며, 법적 범위 내에서 로비 활동을 허용 및 관리, 감독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특히, 미국을 위시한 주요 선진국들이 일찍이 방위산업 분야에서 로비스트 활동을 양성화하여 합법적으로 보장하고, 등록 절차와 활동방법에 대한 법규를 발전시켜온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로비 활동이 불법이다. 이로 인해 사업 관계자와 로비스트 간 유착이 더욱 음성화되면서 부정한 뒷거래가 지속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전 세계의 모든 무기거래 과정에는 로비스트에 의한 치열한 로비 활동이 펼쳐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방위산업 분야에서 로비 활동을 합법적으로 보장하되, 이들의 활동 영역을 투명하게 공개해 건전한 방위산업 생태계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국내 다른 산업분야는 물론 성숙한 시민사회 형성에도 긍정적 효과가 확산, 파급될 것이라 확신한다.
◀ 최기일 교수 프로필 ▶ 상지대 군사학과 학과장(방위사업학박사), 상지대 평화안보대학원 안보학과 교수, 前 국방대 국방관리대학원 교수, 前 건국대 산업대학원 겸임교수, 前 美 미드웨스트대 겸임교수, 국방획득혁신학회 / 국방경영학회 이사, 한국방위산업학회 감사
BEST 뉴스
댓글 (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