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투분석]화려한 방송국의 그늘, 비정규직 노동자 실태

이안나 입력 : 2017.06.01 14:43 ㅣ 수정 : 2017.06.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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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방송국 뒤에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조연출들이 존재한다. 사진은 '원케이 글로벌 피스 마닐라 콘서트 2017' 공연에 오른 그룹 샤이니 ⓒ뉴스투데이



(뉴스투데이=이안나 기자)

인문계 청년들의 워너비(wannabe) 방송사PD 정규직 입사는 ‘낙타 바늘구멍 뚫기’

방송사 PD는 인문계를 졸업한 한국 청년들의 '워너비(wannabe.되고싶은 대상)'로 꼽히지만, '좁은 문'이 기다리고 있다. 매년 정규직 신입 공채를 진행하는 방송사 수가 적을뿐더러 예능PD, 드라마PD, 시사교양PD 등 직군에 따라 공부 방향도 달라지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직무를 찾아 넣으려면 지원 횟수는 더 줄어든다.

예능PD를 준비하고 있는 A씨(29)는 “1년 동안 매일 글쓰며 준비하고 있지만 정작 공채에 지원한 건 4번 정도다”라며 “서류 합격 후 다음 전형엔 랩을 작사하라거나 오디션을 보는 등 회사마다 요구하는 것이 달라 가끔은 운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방송사마다 PD를 뽑는 인원은 다르지만 평균 5명 내외다. 대략 천여 명의 PD지망생들이 공채에 지원한다고 생각하면 200대1 정도다. 가뭄에 콩 나듯 적은 기회이지만 지금도 수천 명의 PD지망생들이 방송사로 들어가기 위해 기약 없이 공부하고 있다.

때문에 이들이 눈을 돌리는 곳은 관련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파견직이다. 아르바이트나 계약직 형식으로 방송사에 입사해 프로그램 제작을 함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험생들 사이에선 지상파 AD(Assistant Directer)를 제외하고 외주업체를 통해 경험을 쌓는 것은 무의미 하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경력을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출퇴근시간이 불규칙해 오히려 공부할 시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외주 방송 제작 실태는 최악, tvN 뷰티 프로그램 제작인력 60명 중 97%가 비정규직? 

더욱이 주요 지상파 방송사들이 프로그램 제작을 외주화함에 따라, 노동환경은 급속도로 악화돼왔다. 직접 외주업체 조연출로 활동해 본 20대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방송국 조연출들은 고용조건이 불안정할 뿐 아니라 노동 강도 역시 매우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드라마 PD 지원자 B씨(26)는 “관련 경험 쌓고 싶어서 프로덕션 조연출에 지원했는데 8시쯤 출근해서 늦게 끝날 땐 새벽 2-3시에 퇴근했지만 식비나 택시비를 지급해주지 않았다. 월급은 100만원 겨우 넘었고 그나마 교양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근무 강도가 덜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tvN 뷰티 프로그램 조연출 C씨(25)는 "방송 제작하는데 60명 정도의 조연출이 참여하고, 그 중 정직원은 PD 1,2명이 전부”라고 설명했다. PD가 2명이라 해도 비정규직의 비율은 97%인 셈이다.


2000년대 후반 방송사 외주화가 확대되면서 방송 제작 환경엔 하청업체, 파견노동자, 프리랜서 등의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게 됐다.

외주 제작사에서 전체 팀원을 꾸려와 본사 PD와 함께 일하는 구조다. 방송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지만 사실상 방송사와는 아무 계약도 하지 않은 간접고용자들인 셈이다.

▲ 서울 마포구 CJ E&M 앞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신입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고 이한빛 PD의 모친 김혜영 씨(앞줄 가운데)가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투데이



‘이한빛 대책위’의 조연출 노동 실태조사 결과, 하루 평균 노동시간 19.18시

촬영 담당, 조연출FD, 조명 등 총 106명이 제보, "촬영 스케줄 자체가 폭력"

지난해 10월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 이한빛 PD가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채 스스로 세상을 떴다. 그의 죽음은 6개월이 지난 4월 18일에야 유가족들과 'tvn혼술남녀신입조연출 사망사건대책위(이하 이한빛 대책위)'가 공식 입장을 발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대책위는 알바 및 비정규직 청년노동자들의 노조 성격을 가진 청년유니온 측이 주도적으로 꾸렸다. 대책위는 CJ E&M의 공식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했다.

6개월 동안 tvN 측은 고인의 ‘근무태만’과 ‘개인의 사회성 부족’이 죽음의 원인이라며 책임을 돌리다가 대책위의 입장 발표 후 34일 만에 사과 성명을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논의가 재개됐다.

이한빛 대책위 측은 1일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제보센터를 개설해 받은 방송제작 현실에 관한 의견을 현재 CJ E&M 측에 전달했으며 협의 후 재발방지대책에 관한 구체적 방향 등을 6월 중순 쯤 다시 한 번 공식적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한빛 대책위는 그동안 ‘드라마현장제보’ 온라인 페이지를 통해 드라마 업계 노동 실태를 파악했다. 일주일 동안 촬영 담당, 조연출FD, 조명 등 총 106명이 제보를 보냈다. 제보를 받은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그간 청년 일터에서의 문제점을 많이 접했다고 생각했는데, 방송계 현실은 읽어 내려가기 힘들 정도로 충격적이었다”라고 말했다.

제보한 이들의 근무시간은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9.18시간이고 평균 휴일은 주 0.9일이었다.

제보자들의 증언은 아래와 같다.

“다른 나라처럼 8~10시간 이상 촬영 못하게 해야 하고 쪽대본도 못하게 해야 한다. 숙소는 제발
모텔이라도 잡아주면 좋겠다. 수도권에 있는 찜질방 그만 가고 싶다.” (10년 이상 조연출)
 
“촬영 스케쥴 자체가 신체적 정신적 폭력이다. 하루에 수면시간 많아봐야 2시간. 감독, 배우들이
대우 받는 거 인정하는데 스텝들도 사람이다. 어느 정도 대우는 해줘야 한다. (3년 이상 조연출)

“말로 행해지는 언어 폭력이 제일 빈번하다. 또 여자 스텝이나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어린 친구들을 향한 성희롱이 엄청나다. 이 바닥은 원래 그렇다는 말로 합리화 시키면서 그냥 물 흘러가듯이 견디고 버텼던 것 같다.”(5년 이상 조연출)

제보자 중 상당수는 욕설이나 ‘메인 스태프들과 겸상하지 못한다’는 등의 권위적 질서가 팽배함을 토로했고, 수면이 부족한 상태로 강행되는 촬영 현장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방송업계에 귄위적 질서, 갑질 문화가 팽배하고 촬영현장은 철야노동, 장시간 노동이 지속되면서도 적절한 휴게시간 및 장소가 제공되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동시에 불안정한 고용계약 조건이 일반화된 상태에서 임금체불 문제도 확인되었고, 경력과 근무시간에 비추어 턱없이 낮은 임금에 대한 문제의식도 다수 언급됐다.

▲ 4월 24일 신촌에서 '故 이한빛PD 김혜영 어머니와의 대화'에 70여 명의 일반 청년들이 참여했다. 사진은 입구에 붙어있던 청년들의 한마디 [사진=이안나 기자]


이한빛 대책위, "방송국의 제작비 절감은 외주사 조연출의 최저임금 미달로 귀결

지상파 등 유력 방송사들의 절대권력, 외주 제작사는 절대 복종

이한빛 대책위에 따르면, 방송국 조연출자들이 과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제작환경에 대한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제작비 절감을 위해 방송국이 개별 프로덕션에 프로그램을 외주화한다. 개별 프로덕션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작비를 절감한다.

외주사들은 제작 시간을 줄여야 제작비가 줄기 때문에 과도하게 스케줄을 편성한다.
조연출들의 월급을 실질임금으로 계산했을 때 최저임금 미만인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것도 인건비를 줄이려 했기 때문이다.

방송국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권력에 외주 제작사들은 그들의 논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 분위기다. 가령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는 경우가 많은데, 하루아침에 나오지 말라고 하면 일이 끊긴 것이다.

실제로 tvN드라마 ‘혼술남녀’ 제작팀은 작품의 완성도가 낮다는 이유로 첫 방송 직전 다수의 계약직 스태프 인력들을 일방적으로 해고했다. 고 이한빛 PD는 해고된 스태프들에게서 선지급된 임금 일부를 돌려받아오는 일까지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입사 후 1년 동안 자신의 월급 절반을 416연대, KTX 해고 승무원, 빈곤사회연대 등에 보내는 등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감수성이 살아있던 그에겐 더욱 고통이었다.

지난 4월 24일 고 이한빛PD 김혜영어머니와의 대화에는 일반 청년 70여명이, 시민추모문화제에는 400여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참가한 이유에 대해 “이PD가 겪었던 경험들을 나 역시도 직장에서 겪고 있었기 때문이고, 이번을 계기로 조금이나마 개선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나왔다”고 밝혔다.

방송업계 조연출 활동이 열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영상·편집 제작에 관심 있고, 대중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청년들이 희망을 가지고 그 일터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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