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과 언론 사이 ④] 군과 언론 관계 시금석인 ‘국가안보 위기 시 군 취재보도 기준’ 제정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계기로 2012년 군과 언론이 합의해 만든 최초의 보도준칙
윤원식 박사는 육사 42기로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당시 국방부 대변인실 공보과장 겸 부대변인을 지내면서 군과 언론의 다양한 갈등 현장을 경험해왔다. 상극이라고도 볼 수 있는 두 직업의 중간지대에서 관찰한 흥미로운 현대사를 관련 사례와 함께 풀어본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윤원식 북극성안보연구소 미디어전략센터장] 우리나라의 군과 언론 사이에는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한 오랜 사회 갈등의 문제가 내재돼 있다. 광복 전후의 시기에 소련이나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와 미국식 자유 민주주의 체제 가운데 어떤 정치체제를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체제 선택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은 결국 좌우의 이념적 대립과 남북한으로의 영토 분단 상황 등이 이어지면서 더욱 표면화됐다. 남북 분단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고착화돼 군사적 대치 상태가 지속됐고, 이는 또다시 남북한 간 이념 대립과 남남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됐다.
결국 이념 대립은 진보와 보수의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갈등 요소로 작용해 왔다.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이념적 양극화 현상은 점점 약화되면서 중도 성향이 늘었지만 대북문제와 안보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갈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사회의 진보와 보수를 구분 짓는 두 개의 축은 ‘반공 이데올로기 수용과 거부’라는 하나의 축과 ‘권위주의와 자유주의’라는 또 하나의 축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이념 대립은 광복 후 언론 영역에서도 좌파신문과 우파신문으로 재현돼 정파지(partisan press) 성격을 지니게 됐다. 기자들은 자의든 타의든 이념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그가 돼 공적 문제를 사회적 시각에서 보도하지 않고 계급적·당파적 시각에서 보도해 왔다고 비판받고 있다.
한편 한국 언론은 일제 강점기와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정치권력의 통제를 받거나 정치권력과 갈등구조를 빚어왔다.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가 권위주의 체제에서 자유주의 체제로 점차 변동되면서 언론 자율화가 진행됨에 따라 정치권력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강화됐고 이것이 정부와 언론 간 또 다른 갈등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바탕에서 한국 언론은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으로 대별돼 햇볕정책이나 대북정책 등 특정 사안과 관련해서는 극심한 갈등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인들의 이념적 성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조사와 연구에도 불구하고 언론보도에서 여전히 이념 갈등이 주요한 사회갈등으로 다뤄지는 이유는 언론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념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분석도 여럿 있다.
이처럼 남북 간 정치체제와 분단에 따른 이념적 대립이 광복 후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반공 이데올로기와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대립으로 이어지고, 그 연장선에서 진보와 보수로 구분되는 언론의 정파적 이념 성향이 노출됨으로써 정부의 대북정책이나 남북관계, 국가안보에 관한 의제에서 군과 언론의 갈등은 물론, 언론 상호 간에도 갈등이 존재한다는 점은 한국적 특수성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동안 남북의 군사적 대치와 군사통치 시대를 거치면서 국가안보를 각별히 강조해 왔기 때문에, 국가기밀의 보호로 말미암아 언론의 군에 관한 보도는 통제를 받아 왔으며 그로인해 언론의 자유가 위축됐다는 인식이 많이 남아 있다. 지금도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과 마찰이 발생할 경우에는 언제든지 팩트 위에 덧칠된 이념의 색깔이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군과 언론 관계의 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프로그램 마련이 절실히 요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2010년 3월과 11월에 발생한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이다. 이 두 사건에서 군과 언론의 갈등과 마찰은 일상이었다. 1997년 강릉무장간첩 침투사건 때 상황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군과 언론 간에는 유사한 상황의 재발을 방지하는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 즉 상호 간 어떻게 협력·협조해야 하는지 실천적 방침이나 규칙이 없었다.
이에 대한 성찰과 논의가 2010년 후반기에 들어 군과 언론계,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됐다. 이후 약 2년간의 노력 끝에 2012년 9월 ‘국가안보 위기 시 군 취재보도 기준’이라는 보도준칙이 제정될 수 있었다. 이것은 군과 언론이 합의하여 만든 최초의 준칙으로서 군과 언론 관계 발전을 위한 중요한 획을 긋게 됐다.
‘국가안보 위기 시 군 취재보도 기준’은 총 4장 17개 조항과 7개의 실천수칙으로 구성돼 있다. 제1장 총칙, 제2장 군의 취재보도 지원 및 정보공개, 제3장 언론의 취재보도 준수사항, 제4장 전·사상자 보도 및 행정사항, 그리고 실천수칙 7개 조항이다.
이 취재보도 기준을 제정하기 위해 국방부는 한국기자협회와 함께 ‘준칙제정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는 국방부 출입기자 대표 3명, 국방부에서 추천한 예비역, 국방연구원 전문연구위원, 국방부 대변인실 공보과장, 기자협회 대표 등 총 7명으로 구성됐고, 약 5개월 동안 군과 언론이 지닌 특성과 요망사항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논의를 거듭하면서 세부 문구를 검토하고 조율했다.
이렇게 마련된 세부 문구에 대해서는 공개적인 검증과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는 차원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 주관 하에 학계, 언론계, 군 관계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공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추가적인 의견 수렴과 조율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군 취재보도 기준의 세부 문구가 완성됐다.
‘군 취재보도 기준’ 제정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군사적 위기사태 발생 시 언론이 사실에 입각한 취재와 보도를 정확히 할 수 있도록 군이 브리핑과 취재 지원을 원활히 보장해 국민의 알권리 충족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둘째, 상황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작전보안이나 군사보안 사항에 대한 취재와 보도는 국민의 알 권리를 넘어서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법과 규정을 준수하자는 것이다.
군 취재보도 기준 서문에는 이러한 목적과 취지가 잘 명시돼 있다. ‘보도’와 관련해서는 “군은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신속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언론은 국가안보와 작전에 임하는 장병들의 안전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보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취재’와 관련해서는 “각 언론사는 군 작전지역 등 위험지역 취재 시 군 당국과 사전에 협의하고, 군은 취재진의 안전한 취재활동 보장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보도기준이 어느 일방을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이와 같은 보도준칙 제정으로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이나 마찰 등 중대 사태 발생 시 군과 언론이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군사기밀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 윤원식 프로필 ▶ 연세대 대학원(신문방송학과)과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외교안보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 국방부 대변인실 공보과장으로 근무하며 군과 언론 간 최초의 보도준칙인 ‘국가안보 위기 시 군 취재보도 기준’을 제정했다. 국방부와 합참을 비롯한 정책부서와 전·후방 각급 부대에서 언론 홍보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참모로 33년 복무 후 육군 대령으로 전역했으며, 현재 북극성안보연구소 미디어전략센터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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