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영 기자 입력 : 2025.05.06 07:00 ㅣ 수정 : 2025.05.06 07:00
시민단체·5·18기념재단, 노소영 관장 고발 국회 법사위, 노 관장 일가 국감 증인 명단에 올려 검찰, 노 전 대통령 일가 금융계좌 확보해 자금 흐름 추적 다음달 새 정부 출범에 발맞춰 '비자금 수사 가속화' 목소리 비자금 논란 확인되면 노 관장 재산형성 기여도 낮아질 수도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노소영(64·사진)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최태원(65·사진) SK그룹 회장과의 이혼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쏘아 올린 ‘고(故) 노태우 비자금’이 검찰 수사로 이어지는 등 사태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노소영 관장의 이와 같은 전략은 추징금 완납 이후 더 이상 비자금 관련 뇌물죄 수사·추징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소송과 관련한 부정 여론이 들끓고 부정축재 재산 환수 관련 법률 제·개정 목소리까지 나오자 일각에서는 노 관장의 결정이 본인을 곤란하게 하는 자승자박(自繩自縛) 형국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이번 비자금 논란은 노 관장과 최 회장 소송의 쟁점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고 있어 공소시효 등을 이유로 비자금 사실만을 인정하거나, 실제 환수까지 이어질 때 대법원 파기환송 여부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원순석 5·18 기념재단 이사장(왼쪽)과 차종수 부장이 지난해 10월 14일 서울 대검찰청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씨와 아들 노재헌·딸 노소영 씨 등을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 연이은 ‘노태우 비자금’ 고발…검찰, 진실규명 위한 ‘계좌추적’ 시작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노 관장 측은 최 회장과의 이혼소송 항소심 재판부에 아버지 노태우 전(前) 대통령이 최 회장 아버지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 등에게 300억원대 비자금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노 관장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약속어음과 김옥숙 여사 메모를 제출했다. 이 메모 에는 ‘선경 300억’, ‘최 서방 32억’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계, 법조, 시민사회 등에서 이른바 ‘노태우 비자금’에 대해 노 관장이 주장한 불법 비자금을 질타하며 비자금을 환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시민단체 ‘군사정권범죄수익국고환수추진위원회’는 노 관장을 ‘범죄수익은닉죄’와 ‘조세범처벌법위반죄’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바 있다.
같은 달 5·18기념재단(이하 재단)도 노 전 대통령 일가를 범죄수익은닉처벌법 위반 등으로 대검찰청에 고발 조치했다. 재단은 노 관장을 비롯해 김옥숙 여사와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 등도 고발 대상에 포함시켰다.
뿐만 아니라 재단은 지난달 8일 법률가 등으로 구성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비자금과 부정 축재 재산 환수위원회’를 조성했다. 재단은 ‘불법 자금이 후손에게 증여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취지로 부정축재 재산 환수 관련 법률 제·개정, 재산 추적 및 환수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의 2024년 국정감사에서도 이같은 논란이 불거졌다. 법사위는 비자금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노 관장을 포함한 노 전 대통령 일가를 법무부 국감 증인 명단에 올렸다.
김 여사는 건강상의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노소영·노재헌 남매는 우편으로 발송한 출석 요구서가 반송됐다. 이에 따라 국회 조사관이 요구서를 직접 전달하기 위해 자택과 회사를 방문했지만 닿지 못해 끝내 불출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사위는 노 관장에 대해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장을 냈다.
이처럼 검찰 고발이 연이어 이뤄졌지만 수사는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사태와 이후 탄핵 정국 등으로 정국이 혼란에 빠져 노태우 비자금 수사에 대한 관심이 흐려졌다.
그런데 최근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가 노 전 대통령 일가 금융계좌 자료를 확보해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노 전 대통령 일가가 비자금 형태를 바꿔 관리했을 것으로 여겨 검찰이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역추적해 자금 은닉과 승계 과정 등 행방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탄핵 정국이 마무리되고 다음달 3일이면 새 정부가 들어서는 만큼 수사가 가속화 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SK본사 서린빌딩 아트센터 나비 모습 [사진 = 연합뉴스]
■ “불법성 인정되면 재산분할 비율 영향 있을 수 있어”
노태우 비자금 진실 규명은 최 회장과 노 관장 이혼소송의 핵심 쟁점이기도 하다.
항소심 재판부에 따르면 이 메모는 노 전 대통령이 조성한 비자금을 기재한 것으로 노 전 대통령 비자금과 함께 김 여사가 보관해온 선경건설 명의 약속어음이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유입됐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이 메모를 증거로 인정해 비자금 300억원이 SK그룹 성장에 쓰였다고 보고 1조3808억원 상당의 재산분할을 선고했다.
그러나 최 회장 측 상고로 가게 된 대법원은 비자금과 관련해 300억원이 SK에 실제로 유입됐는 지 여부와 유입됐더라도 불법 비자금이 상속·증여세 없이 후손에게 넘어가는 것이 바람직한 지 등을 따질 것으로 예측된다.
만일 비자금 불법성이 인정돼 국고환수로 이어지면 이는 두 사람 공동생활에 기여한 재산으로 보기 어려워 재산분할 비율 계산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범죄수익은닉죄 혐의로 형사 재판에 연루되면 이혼소송에서 협상력이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공소시효 등을 이유로 국고환수가 어려워지더라도 자산의 불법적 기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라며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노 관장이 비자금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이유는 ‘노태우 전 대통령 자금이 SK그룹 성장에 기여했다’고 주장해 재산 기여도에 힘을 싣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비자금을 둘러싼 각종 논란과 관계 없이 최 회장 측은 비자금과 SK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자금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노 관장 측이 증거로 제시한 통상 약속어음은 말 그대로 발행인(선경그룹)의 소지인(노태우)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받았다는 증거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SK 성장과 비자금 상관관계를 인정한 항소심 재판부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아 최종 상고심에 이르게 됐다.
최 회장은 비자금과 무관성을 입증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다. 만일 비자금 불법성이 인정되면 SK그룹도 비자금 간 연관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불법성이 인정되더라도 재산분할 비율에 있어 노 관장보다는 최 회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데 무게가 실린다.
이환규 법무법인 '아인' 변호사는 <뉴스투데이>에 “검찰 수사를 통해 최태원·노소영 부부에게 흘러간 비자금 300억원의 불법성이 확인되더라도 최태원 부부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대상이 된다는 판단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비자금이 부부의 공동재산 토대가 됐고 최태원 회장의 사업활동을 통한 부부공동 재산의 형성,유지,관리에 기여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부부간 재산분할 비율을 정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라며 “비자금 불법성이 확인되면 불법 자금을 부부공동생활 영역으로 끌어온 노소영 관장에게 재산형성 기여도를 기존과 같은 수준으로 평가할 수 없다"라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