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이슈 진단 (132)] 미국이 무역장벽으로 제기한 한국의 ‘수입절충교역’ 문제 이대로 놔두어선 안 된다
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5.05.26 09:52 ㅣ 수정 : 2025.05.26 09:52
방사청이 전문가들과 공개적으로 그동안 성과 냉정히 짚어보고 다양한 선택지 엄밀 검토해야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으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방위사업청 또한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지난 21일 한국방위산업진흥회 후원으로 열린 ‘방산 전문가 포럼’에서 수입절충교역을 주제로 방산 전문가들의 열띤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한국방위산업진흥회]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 3월 31일(현지시간)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25년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ational Trade Estimate Report on Foreign Trade Barriers)’에서 사상 최초로 한국의 절충교역 제도를 양국 간 무역장벽 사례로 제기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1000만 달러 이상 무기계약 시 외국 기업에 절충교역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불명확한 기준과 과도한 처벌 규정이 외국 기업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절충교역은 외국에서 무기를 구매하거나 외국에 무기를 판매할 때 일정한 반대급부(기술이전, 부품제작 수출 등)를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조건부 교역을 말한다. 무기를 구매할 때 수입국이 수출국에 요구하는 것은 ‘수입절충교역’이고, 무기를 판매할 때 수출국이 수입국에 부담해야 하는 것은 ‘수출절충교역’이라고 말한다. 미국이 제기한 것은 수입절충교역에 해당하는데, 반대급부로 요구된 절충교역 이행안의 기준과 미이행에 따른 페널티에 관한 부분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1000만 달러 이상의 무기를 구매할 때 판매국에 30∼50%에 해당하는 절충교역 가치를 이행하도록 요구한다. 그런데 이행 기간 내에 이행하지 못했을 경우 미이행한 가치의 10%를 페널티로 징수해오다가, 2021년부터 이행 기간 종료 후에도 1년간 계속 이행하게 하고 그럼에도 미이행되면 미이행한 가치의 50%를 징수하는 것으로 페널티를 강화했다.
■ 관련 쟁점 살펴보고 미래지향적 산업협력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방안 필요
미국 기업들은 그동안 비공식 채널을 통해 “어떤 절충교역 이행안을 제시해야 한국 정부 기준에 부합하는지 불투명하고, 이행 지연이나 미달 시 부과되는 페널티가 지나치게 엄격하며, 대체 이행의 유연성이 부족하다”며 한국 절충교역 제도의 경직성 문제를 거론해 왔다. 그러다가 이번에 미국 정부가 USTR 보고서에 공식적으로 명시함으로써 한미 방산협력 관계에서 개선이 필요한 전략적 이슈를 제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지난 21일 한국방위산업진흥회(이하 방진회)는 수입절충교역의 문제를 진단하고 필요한 정책대안을 도출할 목적으로 방산 전문가들과 몇몇 국내외 주요업체가 참여한 소규모 ‘방산 전문가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은 장원준 전북대 방위산업융합과정 교수와 유형곤 한국국방기술학회 정책연구센터장의 발표에 이어 참석한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과 지방에서 화상회의(Zoom)로 연결해 참여했다.
이날 발표에서 장원준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의 절충교역 방식이 앞으로도 경직되고 비효율적으로 운용될 경우 양국 간 방산 파트너십 확대에 상당한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는데 유념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절충교역 관련 쟁점을 살펴보고, 산업경쟁력 강화와 국익 극대화를 위한 미래지향적 산업협력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절충교역 조건이 사전에 명확히 공개되지 않고 협상마다 임기응변적으로 결정되는 경향이 있어 해외업체가 양질의 제안을 준비하기 어렵고 그 결과 실효성 있는 산업협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데다, 단순한 이행 지연이나 일부 성과 미달에 대해서도 대체 이행이나 보완 기회 부여 없이 과도한 페널티를 부과해 탄력적 운용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23-27 방위산업발전 기본계획에 포함된 절충교역 통합협상방안 마련과 사전가치축적제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 “이행에 대한 성과분석·추적조사 체계 마련하되, 외부기관 위탁 시행 타당”
이어 발표한 유형곤 센터장은 “현 제도는 너무 경직돼 있어서 해외업체가 이행하는데 쉽지 않기 때문에 해외업체가 원활하게 이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국내기관·업체가 희망하는 품목·기술과 해외업체가 선호하는 품목·기술을 매칭해 상호 윈윈할 수 있는 종합적·장기적 협력 아이템을 기획해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절충교역은 정부 예산이 투입되지 않아 이행에 대한 성과분석·추적조사 근거가 부재하다”면서 “업무 효율성 제고와 성과 확대를 위해선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 준하는 성과분석·추적조사 체계를 마련하고 정기적인 성과분석 및 쟁점 사항 진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행관리와 성과분석·추적조사는 굳이 방사청 인력이 수행할 당위성이 낮아 외부기관에 맡기는 것이 타당하며, 방진회가 위탁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후 자유토론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다. 특히 기본계약과 절충교역 협상안을 분리해 계약을 추진하는 것과 최근 수년간 해외군사판매(FMS) 방식의 대형 사업에 적용하지 않은 것이 절충교역을 무너뜨린 주범이란 지적이 제기됐다. 또 페널티가 과도한 측면은 있지만 이행하지 않았을 때 실제로 미국 업체에 페널티를 적용한 적은 없었다며 미국 업체는 봐주고 유럽업체에는 강화하는 모양새로 보인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해외업체 관계자는 “한국의 방산수출이 급증하면서 대기업은 수출절충교역 대응에 급급해 수입절충교역은 관심도 떨어지고 담당자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중견·중소기업만 관심이 있는 상태인데, 해외업체 입장에서는 절충교역 이행을 위해 여러 가지 제안을 내놓지만, 이것을 받아서 수행할 국내업체를 찾기 어려우며 제도상 어떻게 적용되는지도 확실한 답변을 들을 수 없어 애로가 많다”고 토로했다.
■ “FMS 방식엔 적용하지 말고, 산업협력 차원에서 기본계약에 포함 협상 추진”
미국에서 참여한 FMS 전문가는 “FMS 방식의 특성상 절충교역으로 발생하는 비용이 고스란히 무기체계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에 적용하지 않는 것이 국익 차원에서 합당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전문가는 “FMS 방식은 협상력이 생길 수 없으며, 10% 내외의 비용 증가가 수반된다”며 “FMS 방식의 사업과 국제 공동개발에는 절충교역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한국이 글로벌 수준의 방위산업으로 도약하고 있어 이제는 후진국형 제도인 수입절충교역보다 수출절충교역에 대비하는 것이 국익 차원에서 바람직하다”면서 “수입절충교역은 성과를 면밀하게 분석한 후 실효성이 없으면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향으로 나가되, 정말 외국으로부터 얻어낼 것이 있다면 산업협력 차원에서 기본계약에 포함해 협상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설득력 있게 제기됐다.
이처럼 이번 미국의 USTR 보고서로 인해 드러난 우리의 수입절충교역 문제는 ‘속빈 강정’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방위사업청이 그동안 성과를 전문가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냉정히 짚어보고, 상호 윈윈할 수 있는 매칭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미래지향적 산업협력 플랫폼으로 전환할지, FMS 방식 적용을 제한할지,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수순을 밟되 필요할 경우 기본계약에 포함해 협상할지 다양한 선택지를 엄밀히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