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선포를 실록으로 엮어본다. 윤석열은 언제부터 쿠데타를 계획했을까? 윤석열은 무슨 일을 계기로 확신범이 되었을까? 12월3일은 우리나라가 처한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최고권력자 1인의 독단으로 나라가 형편없이 흔들렸는가 하면 국회와 시민들의 용기있는 대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위대한 서사시였다. 12월3일을 전후해서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이 역사적 순간에 무슨 역할을 했는지 초현실적 계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조현천(왼쪽) 전 기무사령관과 김용현 전 국방장관. [사진=연합뉴스/편집=뉴스투데이]
[뉴스투데이=민병두 회장] 김용현이 국방부 장관에 지명되자 쿠데타가 구체화된다는 의혹을 민주당에서 제기했다. 김용현은 인사청문회(2024년 9월 2일)에서 “지금 대한민국 상황에서 과연 계엄을 한다고 하면 어떤 국민이 이를 용납하겠나. 우리 군에서도 따르겠나”라고 반문하며 “저는 안 따를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계엄 문제는 시대적으로 안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연막작전이었을까? 아니면 이성적으로는 계엄의 성공이 불가능하다고 보았지만, 이것이 길이라고 생각하면 올인하는 그의 성격 때문에 이성과 반대되는 행동을 한 것일까?
김용현은 오랫동안 계엄을 검토했기에 이와 관련한 과거의 문서, 기록 등을 꼼꼼히 살펴봤을 것으로 보인다. 청문회에서 한 김용현의 진술은 월간중앙 2004년 9월호에 실린 현직 K소장의 발언과 비슷하다. 월간중앙은 ‘군은 청와대를 어떻게 보나’라는 기획 기사에서 여러 군인들을 인터뷰했는데 K소장은 "한국에선 영원히 쿠데타 불가능하다"며 "쿠데타 성공해도 인터넷-휴대폰 때문에 국민이 군을 응징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가 말하는 이유는 다섯 가지.
첫째, 휴대전화 때문에 보안 유지가 불가능하다. 당장 쿠데타를 모의하는 과정에서부터 보안 유지가 어렵다. 설사 '모의'에 성공했더라도 '거사'가 안 된다. 특정 부대, 특정 집단의 일거수 일투족이 사람들에 의해 순식간에 세상에 알려지기 때문이다. (이때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이다.)
셋째(둘째는 생략), 만난을 무릅쓰고 병력과 장비를 중앙무대에 진출시켰다 해도 국민을 설득할 방도가 없다. 과거처럼 몇 안 되는 신문사와 방송사를 접수하는 것으로 국민의 동의를 구할 수 없는 것이다. 국민은 휴대전화와 인터넷으로 서로 의견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쿠데타군을 응징할 것이 분명하다.
넷째, 군사 쿠데타는 다른 사회 부문보다 군이 가장 앞서 있는 곳에서나 가능하다. 그래야 군이 명분과 힘을 가지고 다른 부문을 압도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래전부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군 이외의 부문들이 앞서 나가 있다.
끝으로 다섯째, 너무도 명백한 앞의 네가지 사실을, 누구보다 군이 먼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쿠데타는 더 이상 없다.”(월간중앙 2004년 9월호)
그런데 2017년 박근혜 탄핵 판결이 나기 직전에 기무사가 위수령 계엄령을 준비하는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K소장의 논리적 판단과 달리 정치군인은 군의 정치 개입을 당연시했다.
계엄령 문건은 2017년 2월 18일부터 2주간 조현천 기무사령관의 지침을 받아 작성됐다. 이 문건은 박근혜 탄핵 심판을 앞두고 헌법재판소가 기각 혹은 각하를 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전시 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방안’(2017.3. )이라는 제하의 문건이다.
그 중에 <탄핵 결정 선고 이후 전망>에서는 “탄핵 심판 결과에 불복한 대규모 시위대가 서울을 중심으로 집결하여 청와대 헌법재판소 진입 점거를 시도” 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사이버 공간상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진보(종북) 또는 보수 특정인사의 선동으로 인해 집회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어 방화 무기 탈출을 시도”하는 등 “심각한 치안불안이 야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시기에 새누리당의 대표최고위원이었던 김무성은 “하야를 선언하면 그 순간 끝이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을 택했는데, 당시엔 헌재에서 기각될 걸로 기대했던 것 같다. 김기춘 비서실장 등 청와대에 있는 모두가 100% 기각이라고 봤다”며 “기각되면 광화문광장 등이 폭발할 것 아닌가. 그래서 기무사령관한테까지 계엄령 검토를 지시한 것”이라고 밝혔다.(‘김무성 전 대표가 밝힌 ’박근혜 탄핵‘ 비화’ 시사저널 2025. 2. 22)
문건에서는 비상조치의 유형으로 위수령과 계엄을 거론한 뒤 “국민들의 계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고려, 초기에는 위수령을 발령하여 대응하고 상황악화 시 계엄(경비계엄-비상계엄) 시행을 검토”한다고 적시했다. 국회가 위수령 무효법안을 제정할 경우에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이를 국회가 재의하는데 일정기간(2개월 이상)이 소요되어 위수령이 유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문건은 아래 별첨 사진 참조) 정부에 반대하는 국회의원을 현행범으로 사법처리하여 의결정족수 미달을 유도할 계획을 세웠다.
2017년 박근혜 탄핵 판결이 나기 직전에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령 준비 문건.
계엄령을 검토할 수 있는 군 조직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이지, 국군기무사령부가 아니다. 기무사는 과거 전두환의 보안사 시절부터 정치에 개입한 흑역사를 갖고 있다. 기무사가 이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보아 박근혜 정권에 충성하는 정치군인들이 은밀하게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위수령을 요구하는 주체가 지방자치단체장(서울의 경우 박원순 시장)이어서 실현 불가능하다는 지적을 한다. 여러 상황에 대비한 검토계획에 불과하다고 한다. 실제로 문건은 그 경우 위수령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이 문건이 드러나자 기무사는 해체 수준으로 개편되었다. 군사안보지원사령부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범했다. 그리고 위수령을 폐지했다. 법령에서 삭제했다. 2018년 9월 11일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했다. 68년만에 폐지된 것인데, 문재인 대통령은 “감회가 깊다”고 했다.
위수령이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윤석열이 위수령을 먼저 발령했을 수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요청을 해야하는데, 12.3 비상계엄 직전의 국무위원 간담회처럼 밀어붙였을 수 있다. 그랬다면 국회가 이를 즉각 무효로 돌릴 수 없다. 계엄령과 달리 해제를 요구할 법적 근거가 없다. 계엄령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해제를 요구(헌법 77조 5항)할 수 있다. 위수령은 기무사 문건대로 2개월은 유지될 수 있다. 기무사 문건을 2018년에 폭로한 이철희 민주당 의원의 공로가 크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서 군사안보지원사령부(구 기무사령부)는 방첩대로 명칭을 변경하고 이전의 권한을 회복했다. 12.3 비상계엄의 주역이 되었다.
추미애 민주당 의원은 2024년 12월 8일 여인형 방첩사령관의 지시로 비서실에서 그해 11월 작성한 ‘계엄사-합수본부 운영 참고자료’를 공개했다. 이 문건은 앞서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 대비 문건과 아주 흡사하다. 계엄선포 계엄사령부직제령 합동수사기구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2017년 조현천 기무사령관의 지시로 작성한 계엄문건을 그대로 가져다 쓴 흔적이 많이 있다.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계엄전문가들이 근무했다”며 김용현 국방장관이 대통령실 경호처장으로 근무할 당시부터 절친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 등과 함께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2024년 12월 4일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