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에선(797)] 황금연휴에 일본인들이 집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정승원 기자 입력 : 2025.05.08 02:48 ㅣ 수정 : 2025.05.08 02:48

전례없는 숙박비 대란에 관광수요 폭발하던 일본 골든 위크 기간 중 많은 일본인들 여행포기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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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진 숙박비 부담 등으로 일본인들의 국내 여행수요가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일러스트야]

 

 

 

[뉴스투데이/도쿄=김효진 통신원] “골든 위크라고 하지만, 마음 놓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줄었을 겁니다.”

 

골든 위크 기간 이었던 지난 5일, 도쿄 시부야역 인근의 한 커피숍. 여행 가방 대신 장바구니를 든 이케다 유코 씨(44)는 가족과 함께 떠나려던 홋카이도 여행을 예약 직전 취소했다. 가장 큰 이유는 “말도 안 되는 숙박비” 때문이었다. 이케다 씨는 “비행기 값도 문제지만, 숙소가 1박에 3만 엔에 달하고 있다”며 “예전엔 전체 여행비가 그 정도였다”고 하소연했다.

 

일본 최대 연휴인 ‘골든 위크’(4월29일~5월6일)는 그간 일본인들에게 ‘여행의 절정기’로 통했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일본여행업협회(JATA)가 골든 위크가 시작되기 전 지난달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47.3%가 이번 연휴 기간 ‘집에서 휴식하겠다’고 응답했다.

 

과거 같은 조사에서 집에 머물겠다는 응답 비율이 30%대였던 것에 비하면 상당한 변화다.

 

“작년만 해도 골든 위크엔 방 하나 남기기도 어려웠죠. 올해는 예약률이 기대보다 낮아요.” 기후현의 한 료칸(일본 전통 숙소)을 운영하는 야마모토 다카시는 손님 예약표를 보여주며 말했다.

 

그가 운영하는 숙소의 가격은 2022년까지만 해도 1박에 8000엔 선이었으나, 현재는 1만 6000엔 선으로, 2년 만에 2배로 뛰었다. 그는 “전기요금, 식자재, 인건비, 안 오른 게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가격을 안 올릴 수도 없다”고 말했다.

 

골든 위크 기간 도쿄 중심가의 호텔들은 여전히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미국 뉴욕에서 왔다는 리사 벨린저(29) 씨는 “여기 호텔 가격이 뉴욕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된다”며 “도쿄에서 이 정도면 싸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일본 관광청 집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외국인 관광객 수는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들은 엔화 약세를 등에 업고 일본 숙박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반면 일본 내수 관광은 위축일로다.

 

도쿄 시내에 위치한 여행 기획사 대표 하라다 나오키는 “전통적으로 일본 여행을 이끌던 30~50대 중산층 고객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들이 빠지면 소도시 관광, 가족여행 수요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반전의 기회를 엿보는 업체들도 있다. 규슈와 도쿄를 오가는 ‘야간 침대 버스’는 주말마다 만석 행진이다. 이 버스는 전 좌석이 침대형으로 되어 있어, 밤에 출발해 아침 도착하는 방식. 한 탑승객은 “교통비와 숙박비를 동시에 아낄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했다.

 

한편,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오사카 인근에서는 정박 중인 여객선을 숙소로 개조한 ‘수상 호텔’도 등장했다. 이 상품은 1박 7000엔대부터 가능해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인들의 숙박비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도쿄 고급호텔 15곳을 대상으로 담합 의혹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과정에서 일부 호텔 간 ‘요금 조율 정황’이 포착되었고, 현재는 감시 대상을 비즈니스호텔까지 확대한 상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근본적 문제는 고정비 상승과 외국인 관광객 증가”라고 말한다. 일본 경제지 ‘다이아몬드’는 최근 호에서 “엔저와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는 한 숙박비 상승세는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골든 위크가 여행의 계절이 아닌 ‘집콕의 계절’이 되고 있는 일본. 비싸진 숙소에, 포기한 여행 계획 속에서 도쿄 신주쿠의 한 광고판 문구가 눈에 띄었다.

 

“진짜 쉼은 멀리 있지 않다. 소파와 찻잔 옆에서 시작된다.”

 

높아진 숙박비 때문에 여행을 쉽게 갈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을 묘하게 비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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