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영 기자 입력 : 2025.05.18 06:05 ㅣ 수정 : 2025.05.18 06:05
삼성·LG전자, 환경보호·에너지 절감 수요 큰 유럽시장에 주목 플랙트, 데이터센터·제약사·식음료·플랜트 등 60곳 넘는 고객사 확보 삼성전자, 개별공조 이어 중앙공조 사업 강화...유럽 등 글로벌 영토 넓혀 LG전자, HVAC 역량 강화해 2030년까지 B2B 사업 비중 45% 늘리기로 LG ES사업본부, 올해 1분기 두 자릿수 성장...AI 데이터센터 부문 수주 목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지난 3월 17일(현지시간)부터 21일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 냉난방공조 전시회 ‘ISH 2025’에 참가해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 삼성전자/LG전자]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국내 양대 가전·전자업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최근 신성장 동력 확보와 포트폴리오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통적으로 맞붙어온 생활가전과 TV에 이어 최근 오디오 사업 강화 행보에 나선 두 회사는 HVAC(냉난방공조) 시장에서 본격적인 경쟁에 나섰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유럽 최대 공조기기 업체인 독일 플랙트그룹(Flakt Group, 이하 플랙트)을 품었고 LG전자는 ES사업본부 산하의 전기차 충전기 사업을 끝내고 HVAC 사업에 주력한다고 선언했다.
두 회사는 환경 보호와 에너지 절감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효율성이 높은 HVAC 제품 수요가 큰 유럽 시장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기존 유럽 현지 업체를 인수하는 경영전략을 펼친 삼성전자와 내부 조직 개편 및 강화를 통한 전략으로 가닥을 잡은 LG전자가 유럽 시장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점쳐진다.
삼성전자가 지난 3월 17일(현지시간)부터 21일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 냉난방공조 전시회인 ‘ISH 2025’에 참가해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 삼성전자]
■삼성전자, 독일 HVAC 기업 ‘플랙트’ 인수…LG전자, ES사업부 역량 강화 집중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영국계 사모펀드 트라이튼(Triton)이 보유한 플랙트 지분 100%를 15억 유로(약 2조3787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플랙트는 100년 이상 축적된 기술력을 갖춘 독일의 공조기기 업체다. 이 기업은 고객사 수요에 적합한 제품과 솔루션을 공급할 수 있는 라인업(제품군)과 설계 역량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플랙트는 다양한 시설에 고품질·고효율 공조 설비를 공급해왔다. 이를 보여주듯 이 업체는 최근 글로벌 대형 데이터센터 공조 시장에서 우수한 제품 성능과 안정성, 신뢰도 있는 서비스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플랙트는 데이터센터 외에 글로벌 톱 제약사, 헬스케어, 식음료, 플랜트 등 60곳이 넘는 대형 고객사와 손을 잡았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가정과 상업용 시스템에어컨 시장 중심의 개별공조(덕트리스, Ductless) 제품으로 공조사업을 추진해 왔다. 이런 가운데 이번 플랙트 인수를 통해 대형 시설 중심의 중앙공조 사업을 강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유럽으로 사업영토를 넓혀 글로벌 공조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태문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 직무대행(사장)은 “삼성전자는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등에 수요가 큰 중앙공조 전문업체 플랙트를 인수해 글로벌 종합공조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라며 “향후 고성장이 예상되는 공조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계속 육성하겠다”라고 말했다.
LG전자가 지난 3월 17일(현지시간)부터 21일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 냉난방공조 전시회 ‘ISH 2025’에 참가해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 LG전자]
LG전자는 사업 포트폴리오 혁신을 위한 4대 전략으로 기업 간 거래(B2B) 사업 가속화를 채택했다. 그리고 오는 2030년까지 B2B 사업 비중을 45%까지 늘리겠다는 청사진을 마련해 HVAC 역량 강화 의지를 꾸준히 드러내 왔다.
이를 위해 LG전자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등 북미, 유럽, 인도 등에 5개 에어솔루션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해외 현지에서 HVAC 사업의 연구개발(R&D)부터 판매, 유지·보수 등 모든 과정을 담당하는 ‘현지 완결형 체제’를 확보하고 있다.
이와 함께 LG전자는 북미, 유럽, 아시아 등에 구축한 히트펌프 연구 컨소시엄을 한데 모아 HVAC 사업 기술협력을 강화하는 ‘글로벌 히트펌프 컨소시엄’을 출범했다.
LG전자는 이를 위해 2024년 연간 조직개편을 통해 ES사업본부를 새롭게 구축했다. 이는 회사 전체 B2B 성장의 한 축으로 성장해 온 HVAC 사업을 기존 H&A사업본부에서 분리해 글로벌 탑티어(Top-tier) 종합 공조업체로 더 크고 빠르게 육성하기 위한 '큰 그림'을 담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ES사업본부는 LG전자가 그려온 경영실적을 현실화하고 있다. ES사업본부는 독립 후 첫 경영 실적인 올해 1분기 매출액이 3조544억원, 영업이익이 406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은 18.0%, 영업이익은 21.2%, 영업이익률은 13.3%에 이른다.
LG전자 역시 데이터센터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올해 데이터센터에서 수주할 사업 규모가 지난해에 비해 19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가정용 신제품 판매를 늘리고 신흥시장의 상업용 에어컨 수주 확보에 주력할 계획”이라며 “초대형 냉동기 칠러(Chiller)를 앞세워 AI 데이터센터 등 산업·발전용 부문에서 대규모 수주를 거머쥘 기회를 노리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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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이어 중요한 유럽 HVAC 시장…亞 기업 입지 강화
시장조사기관 ‘IBIS 월드’에 따르면 2023년 글로벌 HVAC 시장 규모는 약 584억달러(약 82조원)로 추정되며 2028년에는 610억 달러(약 85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내 공기질과 환기 시스템 중요성이 커지면서 HVAC 수요는 B2B,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를 막론하고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수년전 전 세계를 뒤덮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실내 생활이 길어지면서 공기 청정 시스템과 환기 시스템 개선 필요성이 커졌다.
기후 변화도 시장 성장에 한몫했다. 여름철에는 무더위, 겨울철에는 한파가 심화되는 이상 기후가 두드러지면서 온도 조절과 환기 시스템이 어느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다만 전 세계적인 기후 변화는 ‘지속가능성’이라는 과제를 안겼으며 에너지 효율과 탄소 배출 절감이 필수 과제로 여겨지고 있다. 이와 함께 애초 에너지 소비가 많은 시스템으로 알려진 HVAC도 열 펌프와 재생가능 에너지 기반으로 발전하면서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러한 다양한 요인과 변화에 힘입어 HVAC 수요가 최근 가장 두드러지고 있는 시장이 바로 유럽이다. 광범위한 지역과 높은 생활 수준, 기후 변화로 HVAC 수요가 가장 큰 미국 등 북미에 이어 유럽이 두 번째로 중요한 시장이 된 셈이다.
시장 조사업체 모르도르 인텔리전스(Mordor Intelligence)가 발간한 ‘유럽의 HVAC : 시장 점유율 분석, 산업 동향, 통계, 성장 예측’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HVAC 시장 규모는 2025년에 304억5000만 달러(약 42조3285억원)에서 2030년 411억3000만 달러(약 57조1748억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유럽 HVAC 시장은 지역별 특징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이를 기반으로 한 현지화 서비스에 특화된 현지 유력 기업이 많은 곳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스마트 기술과 친환경 솔루션을 앞세운 아시아 기업 입지가 점점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고효율, 친환경 기술을 중심으로 유럽 내 규제에 부합하는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갖췄다"라며 "이에 따라 대형 빌딩이나 데이터센터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서 통합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이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역 특성화된 R&D 기반의 제품 경쟁력뿐만 아니라 생산, 판매, 유지보수 등 현지 완결형 사업 구조를 갖춰 맞춤형 서비스로 고객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라고 부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보면 현지 제품에 비해 아시아 기업 제품이 앞섰으며 특히 한국의 삼성전자나 LG전자보다 중국 하이얼이 더 가격이 저렴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라며 “다만 제품 품질이나 서비스에서 현지 이해도가 높은 로컬 기업이 유리하고 한국, 중국 제품이 그 뒤를 잇는다”라고 말했다.
[사진 = 연합뉴스]
■ 같은 사업·다른 전략…합병 시너지 vs 내부 조직 강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HVAC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했다는 점은 공통점이지만 최근 보인 사업전략의 방향성은 사뭇 다르다.
삼성전자는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확보한 기업을 인수해 자사와의 시너지를 고려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자사 빌딩 통합 제어솔루션(b.IoT, 스마트싱스)과 플랙트의 공조 제어솔루션(플랙트에지(FläktEdge))를 결합해 안정적이고 수익성이 좋은 서비스와 유지보수 사업으로 보폭을 넓힐 계획이다.
이에 비해 LG전자는 HVAC 역량 강화를 위한 ES사업부를 신설하고 수요가 부진한 전기차 충전 사업을 접고 HVAC 사업에 주력하기로 하는 등 내부 조직 개편 및 강화 전략을 선택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뉴스투데이>에 “삼성전자가 유럽 현지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은 시장 진입 장벽을 빠르게 뛰어넘고 현지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형적인 외부 성장 전략”이라며 “특히 유럽처럼 기존 네트워크와 브랜드 충성도가 강한 시장에서 내부 기업 인수 방식이 초기 진입 속도를 높이고 현지 고객 기반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대종 교수는 이어 “자체 조직 개편과 역량 집중을 통해 ‘내부 성장’을 택한 LG전자는 기존 경쟁력을 보다 정교화해 새로운 영역에서 시너지를 확보하려는 안정적 성장전략을 추구한다”라며 “특히 HVAC과 같은 기술집약적 사업은 내부 노하우의 축적과 최적화가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에 유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두 접근이 병행할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에서 두 회사는 장기적인 전략으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접근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삼성전자는 최근 연이은 기업 인수합병(M&A)로 공격적인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한 위험을 분산하고 LG전자는 수익성과 역량이 검증된 분야에 집중해 사업 포기 결정 또한 빠른 ‘선택과 집중’을 실천하고 있다”라며 “결과적으로 양사 모두 불확실성 시대에 걸맞은 방향성을 취하고 있으며 리스크 관리와 수익성 확보를 동시에 고려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