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시장 혼선 키우는 금융사 ‘담합’ 칼날

최병춘 기자 입력 : 2025.05.23 08:16 ㅣ 수정 : 2025.05.23 08:16

공정위, LTV·국고채 금리 경쟁 제한 제재 착수
'정보교환' 경쟁 제한·소비자 피해 연관성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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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춘 경제부장

 

[뉴스투데이=최병춘 경제부장]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중은행과 주요 증권사들을 상대로 ‘담합’ 의혹 관련 제재 절차에 착수하는 등 연달아 금융 업권에 칼날을 겨누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달 4대 은행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담합 의혹에 대한 재조사 절차를 마무리하고 과징금의 근거가 되는 매출액을 상향 조정하면서 과징금 수위가 1조원을 넘길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공정위에 행보에 금융사들이 긴장하는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제제 절차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쟁 또한 격화되고 있다.

 

공정위는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국내 4대 은행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LTV 자료를 공유하고 이를 비슷한 수준으로 낮췄다고 보고 이를 제재 대상으로 삼고 있다.

 

경쟁 기업 간 가격이나 물량을 합의해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인 담합은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담합을 적발하고 처벌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합의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하지만 은밀하게 이뤄지는 만큼 이를 찾기 쉽지 않다. 이에 합의에 대한 증거는 없고 담합에 필요한 정보교환에 대한 증거만 있더라도 이를 합의 증거로 간주하도록 2020년 공정거래법이 개정됐고 이번 제재가 확정되면 개정된 법 적용 첫 사례가 된다. 

 

이번 사건에서 은행들의 LTV 자료를 공유한 정보교환이 어떻게 경쟁을 제한했고 그 결과 소비자에게 피해를 줬는가를 따져보는 게 핵심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권은 반발하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단순 정보교환이 담합은 아니고,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진행된 것으로 부당이익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LTV를 낮추면 대출 한도가 줄면서 이자 이익도 감소하기 때문에 은행이 담합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금융사뿐 아니라 금융당국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LTV 규제가 가계부채 총량을 관리하는 금융당국의 정책 수단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이번 사안이 시중은행이 금융정책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정보교환으로 보고 있어 금융당국도 곤란해하고 있다.

 

자칫 금융당국 정책에 대한 ‘협조’의 흔적이, 이제는 담합의 정황으로 해석되어 제재의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당국 간 신호 불일치와 혼선을 드러내는 사례이자, 민간의 자발적 협력을 오히려 위축시킬 수 있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

 

국고채 담합 문제도 마찬가지다. 공정위는 국고채 금리를 특정 수준에 맞추기 위해 주요 은행과 증권사들이 담합했다고 보고 국고채 전문딜러(PD)로 지정된 금융회사들에 대한 제재 절차에도 착수한 상태다.

 

금융사들은 수익성이 낮은 국고채 딜러를 선호하지 않는다. 이에 기획재정부가 정기적으로 우수 딜러를 선정해 상을 주면서까지 참여를 유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3월 공정위로부터 심사보고서를 받기 전부터 이미 낙찰금리가 시장금리보다 낮았기 때문에 국고채 금리 담합으로 정부가 피해를 보았다는 주장도 힘을 잃고 있다. 낙찰금리가 낮을수록 정부는 국고채 이자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는데 담합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게 금융사들의 항변이다.

 

제재 적절성 논쟁이 격화되고 금융당국까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면서 공정당국과 금융당국 간 부처 갈등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제재 논의가 본질적 문제에서 시선을 빗나가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중은행 과정 구조는 우리 금융시장의 고질적 문제임을 부인할 수 없다. 주요 은행 몇 곳이 전체 금융시장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소비자 선택권은 갈수록 제한되고 있다. 금리 산정이나 수수료 책정에서도 경쟁보다는 동조적 움직임이 반복되고 있는 이 구조적 문제는 단발적인 제재보다 훨씬 깊은 통찰과 개혁이 필요한 분야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방식의 제재는 정작 이 구조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와 개혁의 동력을 희석시킬 우려가 있다.

 

정부가 기업들의 담합을 철저히 조사하고 규제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고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 또한 예외는 아니다. 다만 공정위가 쏘아 올린 금융사의 담합 화두는 본래 제재 취지에 어긋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금융시장은 신뢰로 작동하는 공간이다. 제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금융사의 행위가 우리 사회에 어떠한 부정적 영향을 끼쳤는지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책 간 정합성과 구조적 개혁을 위한 성찰이다. 우리 금융시장이 안고 있는 불합리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더 정밀한 진단과 정부 기관 내부 또는 시장과 긴 호흡의 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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