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영 기자 입력 : 2025.05.22 05:00 ㅣ 수정 : 2025.05.22 08:41
하만, 美 마시모 오디오사업부 3억5000만달러에 품에 안아 삼성전자, 獨 HVAC 기업 '플랙트그룹' 2조4000억원에 인수 AI시장 급성장 따른 열처리 수요 급증 힘입어 플랙트 성장가도 애플·지멘스·퀄컴·GM 등 글로벌 기업 출신 인재 대거 영입 이재용 회장, '뉴삼성' 시대 본궤도에 올리기 위한 초석 다지기 나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삼성 서초사옥 [사진편집=뉴스투데이]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삼성전자의 경영 시계가 빠르게 돌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일주일 간격으로 기업 M&A(인수합병) 소식을 연이어 발표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17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주도한 80억달러(약 11조1368억원) 규모의 미국 전장(자동차 전자·전기 장비) 전문기업 하만(Harman)을 인수한 후 8년 만에 조(兆) 단위 M&A가 이뤄져 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리고 이재용 회장은 ‘경영진보다 더 훌륭한 특급 인재를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양성하고 모셔 와야 한다’라고 평소 강조한 인재경영 철학에 따라 주요 글로벌 기업 출신 임원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는 '국내 1위 그룹'이라는 명성을 뒤로한 채 최근 몇 년간 ‘위기론(論)’에 흔들리고 있는 삼성전자가 재도약을 향한 내실 다지기에 주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디지털콕핏 패키지 제품 '하만 레디 업그레이드(Ready Upgrade)' [사진 = 하만 홈페이지]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자회사 하만은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마시모 오디오사업부를 3억5000만달러(약 5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에 따라 △바워스앤윌킨스(Bowers & Wilkins, B&W) △데논(Denon) △마란츠(Marantz) △폴크(Polk) △데피니티브 테크놀로지(Definitive Technology) 등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가 하만 산하에 포함됐다.
하만은 애초 미국 오디오 전문기업이었지만 2017년 삼성전자에 편입된 이후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커넥티드카(인터넷 접속 기능을 갖춘 차량) 솔루션 △텔레매틱스(차량용 통신 모듈)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등 전장 중심의 사업을 빠르게 키워왔다.
이번 M&A를 통해 전장과 오디오가 만난 ‘카오디오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자동차 업체 및 고객에게 브랜드별로 차별화된 오디오 경험과 음향 서비스를 제공해 사업 위상을 공고히 하겠다는 게 삼성전자의 '큰 그림'이다.
마시모 오디오사업부 인수 소식이 알려진 이후 삼성전자가 오랜만에 의미있는 대형 M&A를 성사시켰다는 평가가 잇따라지만 진짜는 따로 있었다.
약 1주일후인 13일 삼성전자는 유럽 최대 공조기기(HVAC) 업체인 독일 플랙트그룹(Flakt Group, 이하 플랙트)와 M&A를 했다고 밝혔다. 영국계 사모펀드 트라이튼(Triton)이 가지고 있는 플랙트 지분 100%를 삼성전자가 15억 유로(약 2조3787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플랙트는 100년 이상 축적된 기술력을 갖춘 독일의 유력 공조기기 업체다. 이 기업은 고객사 수요에 적합한 제품과 솔루션을 공급할 수 있는 라인업(제품군)과 설계 역량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업체는 최근 AI(인공지능)와 함께 성장하는 대형 데이터센터 공조기기 시장에서 우수한 제품 성능과 안정성, 신뢰도 있는 서비스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플랙트는 △글로벌 톱 제약사 △헬스케어 △식음료 △플랜트 등 60곳이 넘는 대형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공조기기 사업 포트폴리오가 가정과 상업용 시스템에어컨 시장 중심의 개별공조(덕트리스, Ductless) 제품에 맞춰졌다. 그러나 이번 플랙트 인수를 계기로 대형 시설 중심의 중앙공조 사업을 강화해 종합공조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삼성전자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냉난방공조전시회 ‘ISH 2025’에서 상업용 공간을 위한 B2B 전용 통합 연결 플랫폼 ‘스마트싱스 프로’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뿐만 아니라 조직 역량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재 확보에도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2025년 1분기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애플·지멘스·퀄컴·제너럴모터스(GM) 등 글로벌 기업 출신 인재를 대거 영입했다.
주목할 만한 인사로는 최재인 삼성전자 모바일경험(MX)사업부 개발실 부사장을 꼽을 수 있다. 최재인 부사장은 미국 조지아 공대 박사 과정을 거쳐 애플에서 디렉터로 활약한 인물이다.
삼성전자 기획팀 담당 임원으로 영입된 문성만 상무는 미(美) 유타대 박사를 수료하고 지멘스에서 근무했다. 미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박사 출신이자 GM 산하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 기업 '크루즈'에서 스태프 소프트웨어(SW) 엔지니어로 몸 담은 이력이 있는 윤승국 상무는 삼성 리서치 로봇센터로 둥지를 옮겼다.
이 밖에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에서 가정용 로봇 '아스트로(Astro)'와 완전 자율 주행 모바일 로봇 '프로테우스(Proteus)' 개발에 참여하는 등 로봇 응용 과학자로 근무한 박종진 상무와 아마존 수석 과학자(Principal Scientist ) 출신 이성진 상무 등도 있다.
이처럼 삼성전자가 유망 인재 확보에 가속페달을 밟는 것은 이 회장이 평소 강조해온 기술혁신을 삼성의 생존과 성장 핵심 동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가 기술 리더십 확보를 위해 끊임없이 강조해 온 ‘기술경영’ 철학과 ‘사람이 미래다’, ‘기술은 사람이 만든다’라는 ‘인재경영’ 철학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듯 이 회장은 올해 초 임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삼성다움 복원 및 가치 교육’에서 영상을 통해 △특급인재를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양성하고 모셔와야 한다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 나가자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다 등을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 M&A와 유능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선 것은 이 회장이 강조한 미래 성장 산업에 대한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 = 연합뉴스]
이는 이 회장이 추진하는 ‘뉴삼성’ 구축에 본격적으로 추진력을 불어넣기 위한 경영전략으로 풀이된다. 경영 전면에 나선 이 회장은 체질 개선, 조직문화 변화, 미래 투자 확대 등을 중요한 경영 가치로 강조해 그의 '뉴삼성' 개막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 무렵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석방과 복역을 오갔고 2022년 8월 특별사면 이전까지 사실상 경영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리고 현재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에 관해 대법원 판결을 남겨둔 상태다.
이 회장은 특별사면 이후 국내외를 넘나들며 미래 산업 투자를 챙겼지만 아직 남아있는 재판 영향으로 공개적인 경영 메시지나 사업 진두지휘가 제한적인 상황이다.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은 1심과 2심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아 대법원 역시 원심을 유지할 것이라는데 무게가 실린다. 판결은 이르면 올해 안에 마무리되고 길면 1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장에 대한 재판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러 최근 그의 행보는 그동안 준비해 온 뉴삼성 시대를 빠르게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초석 다지기라는 해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와 통화에서 “삼성전자의 최근 행보는 글로벌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기존 경쟁력, 특히 AI와 자동차 전장 등 미래 성장동력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다각화하려는 것"이라며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위험을 분산하고 새로운 성장산업을 선점하기 위한 경영전략의 하나”라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