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영 기자 입력 : 2025.05.21 05:00 ㅣ 수정 : 2025.05.21 07:07
전영현 부회장, 지난해 5월 21일 반도체 경쟁력 강화 위해 등판 올해 HBM 공급 확대와 파운드리 사업 개선 등 숙제 해결해야 총 투자액 가운데 DS부문에 91.2% 투입해 '반도체 기술 초격차' 다짐 반도체 조직 통합해 경쟁력 강화...새로운 반도체 문화 'C.O.R.E' 조성 HBM 기술 초격차 수립 시급...미국 마이크론 HBM 사업에 도전장 TSMC 파운드리 세계 최강...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 확보 시급
전영현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부문장 겸 부회장 [사진 = 뉴스투데이 편집]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반도체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팬데믹(대유행) 이후 글로벌 경기 둔화와 수요 위축, 과잉 재고 등으로 밑바닥을 찍었다.
다행히 2023년 하반기 AI(인공지능) 붐에 힘입어 HBM(고(高)대역폭 메모리), 고부가 D램 제품으로 주목받는 DDR(더블데이터레이트)5 등 첨단 메모리 제품 수요 증가와 공급망 회복 노력 등이 맞물려 다시 활기를 되찾았고 2024년에 본격적인 회복 궤도에 올랐다.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사업부는 반도체 업황 회복에도 크게 웃지 못했다.
AI 반도체 초기 대응에 한 발 늦은 삼성전자는 시장을 이끄는 HBM 분야의 핵심 고객사 미국 엔비디아와의 거래 주도권을 놓쳤다. 기대가 컸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시스템LSI(대규모집적회로) 사업부 등 시스템반도체는 잇따른 사업적자로 시장 1위 대만 TSMC와의 격차가 더욱 멀어졌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삼성전자가 꺼내든 '회심의 카드'는 전영현(65·사진) DS 부문장 겸 부회장이다.
지난해 5월 21일 구원투수로 등판한 전영현 부회장은 지난 한해 연구개발(R&D)과 시설투자(CAPEX), 조직 재정비 등 근원 경쟁력 회복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데 주력했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 부회장 등판 이후 꼬박 1년이 흐른 삼성전자는 올해 HBM 공급 확대와 파운드리 개선 등 성과를 구체화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에 놓여 있다.
자료=분기별 사업보고서 [그래프 = 뉴스투데이]
전 부회장은 조직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려는 면모가 돋보였다.
그가 부임한 후 첫 성적표였던 지난해 2분기 DS사업부는 실적호조를 일궈냈다. 지난해 2분기 DS사업부 매출액이 직전 분기 대비 3%, 영업이익은 58%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2분기 성적표는 2023년과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은 23%, 영업이익은 무려 1462.29% 증가하는 등 두드러진 실적 개선을 일궈냈다.
그러나 전 부회장은 회사 임직원에게 “(지난해) 2분기 실적 개선은 근본적인 경쟁력 회복이 아닌 시황이 좋아진 데 따른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며 근원적 경쟁력 회복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또 지난해 3분기 삼성전자가 장 기대치를 밑도는 성적을 거두는 데 대해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과 회사 앞날까지 걱정을 끼쳐 송구하다”라며 이례적인 반성문과 함께 근원적 기술 경쟁력 복원과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도전정신’, 조직문화 재건 등을 약속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적절한 처방도 잇따랐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R&D(연구개발) 비용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특히 DS부문 시설투자액도 역대급으로 커졌다.
삼성전자 2025년 1분기 분기보고서를 살펴보면 R&D비용이 9조348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5% 증가한 것이다. 특히 분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의 R&D 투자다.
이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 확보와 AI 디바이스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를 집중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투자의 상당 부분을 반도체 분야인 DS부문에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보여주듯 DS부문 시설투자액이 대폭 늘었다. 총 시설투자액 11조9983억원 가운데 DS부문에만 91.2%인 10조 9480억원이 투입됐다. DS부문이 총 시설투자액의 90% 이상 차지한 것은 삼성전자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전 부회장은 회사 내부조직도 대대적으로 수술했다.
그동안 태스크포스(TF) 방식으로 흩어져 있던 HBM 전문 인력을 메모리사업부로 모아 ‘HBM 개발팀’을 구축했다.
또한 반도체 공정 설비 개발을 담당하는 CTO(최고기술책임자) 산하 설비기술연구소는 반도체연구소로 통합해 반도체 공정 효율성 개선에 나섰다.
이와 함께 반도체 패키징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부문장 직속에 있던 AVP(첨단패키징)개발팀을 해체하고 관련 인력을 TSP(전통적 반도체 패키징)총괄로 편입했다.
또한 임직원 간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소통 문제를 간파한 그는 새로운 반도체 조직 문화(C.O.R.E) 조성에 앞장섰다.
이는 문제 해결·조직 간 시너지를 내기 위해 소통하고(Communicate) △직급·직책과 무관한 치열한 토론으로 결론을 도출하며(Openly Discuss) △문제를 솔직하게 드러내며(Reveal) △데이터를 토대로 의사를 결정하고 철저하게 실행(Execute)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사진 = 삼성전자 홈페이지]
그러나 ‘전영현 매직’은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고 있다.
DS부문의 올해 1분기 실적은 매출 25조1000억원과 영업이익 1조1000억원이다.
이는 직전 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16.61%, 영업이익은 62.07% 감소했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8.47%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42.41% 줄었다.
영업이익만 놓고 보면 2024년 2분기 6조5000억원 이후 3분기 3조9000억원, 4분기 2조9000억원으로 3개분기 연속 하락곡선을 그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실적 반등의 열쇠를 쥐고 있는 HBM이 현재 주력 제품 HBM3E 8단·12단 제품 모두 엔비디아에 납품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게다가 올해 하반기부터 주력 제품이 HBM4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HBM3E 개선품 샘플 공급을 끝내 오는 2분기부터 HBM3E가 전체 매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HBM4는 고객사 과제 일정에 발맞춰 오는 하반기 양산 목표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HBM3E 출시가 지연된 점을 감안하면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 향후 사업전망을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HBM 시장 후발주자인 미국 마이크론이 삼성전자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이종환 상명대학교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뉴스투데이>에 “삼성전자가 HBM3E와 HBM4에서 나름 준비를 하고 있어 올해 하반기에는 두드러진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라며 "다만 점진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종환 교수는 "그러나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의미로도 보인다"라며 "지금 반도체 시장은 범용 D램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마이크론은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정책 방향이 자국 기업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 마이크론에 유리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그러나 마이크론 기술 수준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의 HBM3E나 이후 HBM4 제품을 따라잡을 정도는 아니여서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라고 전했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의 GAA 기반 3나노 양산 출하식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도 메모리 반도체 만큼 시급한 과제다.
삼성전자는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고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1위라는 사업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대규모 투자 계획까지 마련해 파운드리 사업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는 적자 늪에 빠졌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와 시스템LSI사업부에서 지난해 약 5조원대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파운드리에서 약 4조원의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보인다.
파운드리는 대만 TSMC의 독점 시장이다. 이에 맞서 삼성전자가 TSMC보다 먼저 3나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을 도입해 시장 판도를 뒤흔들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두 회사간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TSMC가 67.1%, 삼성전자 8.1%로 집계됐다.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3분기 대비 TSMC는 2.4%포인트 상승했지만 삼성전자는 1%포인트 감소해 양사간 차이는 더욱 커졌다.
이 교수는 “기대가 컸지만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은 분명하다”라며 “하지만 포기할 수도 없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만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데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급하게 격차를 줄이는 것은 어렵다. 우선 흑자전환을 목표로 점진적으로 격차를 줄여 고객사를 확보해야 한다”라며 “현재 양산 능력이 있는 2나노 공정에서 기술경쟁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전 부회장 취임 1년이 준비기간이었다면 올해 하반기에는 반드시 삼성전자 반도체에 희망을 볼 수 있는 유의미한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라며 “특히 HBM에서 경쟁력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은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